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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름다운 나인성의 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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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1-09-18 조회수3,001 추천수17 반대(0) 신고

과부란 단어 속에는 참으로 깊은 슬픔과 외로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랑했던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도 큰 것이지만, 남편과의 사별로 인해 이제  험난한 세월을 홀로 헤쳐나가야 된다는 부담감 또한 큰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과부들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고달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나인성의 과부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뿐만 아니라 하나 남아있던 아들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과부의 슬픔은 가슴을 갈래갈래 찢는 슬픔이었습니다. 과부가 느낀 절망감은 세상이 무너지는 절망감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 외아들은 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런 아들이 죽었으니 이제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없어지고 만 것입니다. 나인성의 많은 사람이 아들의 상여를 따라 위로의 발걸음을 옮겼으나 그 누구도 과부의 슬픔을 위로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부의 애절한 곡성을 예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상여의 행렬을 멈추게 하시고, 과부에게 다가가십니다. 그리고 그 과부의 크나큰 슬픔을 안쓰러워하시며 과부를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이미 죽은 지 오래되어 관에 넣어진 채 무덤으로 향해 가는 과부의 아들을 살리십니다.

 

참으로 주님의 손길은 생명의 손길이요 축복의 손길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이제 죽음의 행렬이 생명의 행렬로, 슬픔의 행렬이 기쁨의 행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나인의 과부와도 같은 처지의 사람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떵떵거리며 자신 있게 살아가지만, 순식간에 우리의 처지는 나인의 과부처럼 되고 맙니다.

 

하느님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참으로 필요한 우리의 자세는 바로 나인의 과부와 같은 간절한 심정을 지니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이 우리를 향해서 오실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가시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우리를 향해 다가오실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슬픔을 아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오셔서 우리를 향해 "울지 말라."고 다정하게 우리의 등을 두드리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노력입니다.

 

"나인"이란 말은 "아름다움"이란 뜻입니다. 나인성은 나자렛에서 남동쪽으로 9.6km 정도에 위치한 지점입니다.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자렛에서 생활하셨던 예수님은 자주 나인성을 지나다니셨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아름다운 나인성이 한 어머니의 통곡소리로 인해 죽음의 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성에 입성하시면서 죽음은 생명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슬픔은 환희로 바뀌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이긴 부활의 희망이 성안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하느님은 위로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가련한 처지를 살피십니다.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 가십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을 받는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 드리며, 또 그분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그분의 얼굴을 간절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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