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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한 병자? 선한 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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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1-09-21 조회수1,862 추천수3 반대(0) 신고

 

9월 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말씀(에페 4,1-13; 마태 9,9-13)

 

약과 병원에 전적으로 의존하시는 아버님의 습관에 진저리가 나셔서 웬만한 것은 참고 견디시는 것을 늘 자랑으로 여기시던 어머니는 대장암 말기까지 진행된 연후에야 병원을 찾으셨으나 결국 돌아가셨다. 평소에도 의사들의 정보와 동향에 환하신 아버님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연고만 발라도 될 것까지 모두 병원에서 해결하시려는 집착 증세를 보이신다.  유달리 건강하시던 어머니의 급작스러운 죽음에서 받은 충격이 더욱 건강에 대한 염려증을 부채질하기도 했지만,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자식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어서도 그러시는 것같다.   

 

이렇게 병원에 꼭 가야할 것도 두렵고 귀찮아 시기를 놓치고 중병이 들어서야 입원하는 사람도 있고, 너무나 병원을 자주 찾는 사람도 있다. 어느 땐 마치 아퍼야만 될 것같은 의무감으로 병을 찾기에 골몰하고 모든 병을 자가 진단하여 의사의 소견이 같지 않을 때는 다른 병원을 찾아 떠도는 모습을 보며 ’어디까지 병자로 불러야하나’ 생각해보게 된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하느님 앞에서 ’성한 사람’, ’선한 사람’은 물론 없을 것이다.  주님 앞에서 우리는 어느 면으로든 다 병자이고 죄인임이 분명하기에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오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해진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병자이며 죄인이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왔다." 하시지 않고 (모든 병자들 중의) ’성한 사람’, (모든 죄인들 중의) ’선한 사람’을 선별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너무나 <손쉽게> <적당히> 병자들(죄인들)이라고 자가진단(自家診斷)하는 것은 아닌가.  말은 ’죄인’이라면서도 실은 어떤 구체적인 죄를 짓고 있는지 그 정도나 결과의 심각성까지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 반대로 인간 본성의 유약함 때문에 일어나는 유혹과 갈등들까지도 죄라고 단죄해버리는 실수도 많다.  게다가 자신이 <스스로 만든 하느님과 법률>에 얽매여 교회에 나온 이후로 더 죄의식에 사로잡혀 고통받는 불행한 자가진단 ’죄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사는 게 몽땅 죄지유!"는 촌로의 할머니에게는 더할 수 없는 참회가 되겠지만, 어차피 그런 처지가 아니라면 얼렁뚱땅 그렇게 넘어가서는 안될 것같다.  자신의 죄상을 <잘> 들여다 보는 것은 고통이다. 안토니 불룸은 "마귀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자기 자신을 명상하는 허무일 것이다" 라고 했다.  그만큼 처참하고 힘들지만 진상을 자알 들여다보고 그 고통 안에 일정 기간 머물 결심만 있다면 그것은 은총이다.

 

하느님이 마치 떠나버린 것같은 두려움과 좌절 속에서 머물러 "구해달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때,  주님의 치유는 마침내 효과를 발휘하고 그분의 현존은 죄인의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바로 그 때 주님은 명의가 되는 것이고 우리는 구체적인 그 병에서 성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세리 마태오 역시 자신의 참상을 잘 들여다보고 있었던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신을 구해줄 어떤 분을 늘 갈망했기에 그의 앞에 오셔서 그를 부르시는 음성을 놓치지않고 즉시 따라 나섰던 것이 아닐까?  자신을 정말로 치유해줄 수 있는 분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 자신의 병이 정말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은 모든 병자들 가운데서도 조금은  성한 사람이 아닐까?

 

하느님의 부르심을 이미 받고 그분을 따라나섰으면서도 자꾸 부르셨는지 아닌지 의심을 갖는 것은 마치 이 의사는 아닌 것같고, 이 병원은 엉터리같아서 자꾸 다른 병원을 생각해보는 염려증 환자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예수님을 뵈옵지 못했으면서도 부르셨다는 확신 하나 가지고 감옥에 갇혀도 몰매를 맞아도 자신의 일생을 전교에 바친 바울로 사도의 열정이 독서 구절구절에서 배어난다.

 

이미 우리도 모두 마태오 처럼 바울로처럼 부르심을 받고 따라 나선 사람들이다.  확신을 가지고 앞으로 향하되 때로는 감기도 걸리고 중병도 걸린다. 그 때마다 우리의 주치의이신 예수께 나아가 치료를 받고, 다시 성한 사람으로 주어진 임무를 다하는 것이 제자됨이 아닌가.

 

자신에 대한 확신도, 의사에 대한 확신도 없는 중병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무조건 죄인이라는 식의 안이한 태도를 가지고 진짜 큰 죄를 배속에다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살펴보라는 말씀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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