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낡고 찌그러진 장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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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 작성일2001-10-10 | 조회수1,915 | 추천수11 | 반대(0) 신고 |
연중 제 27주간 화요일 복음(루가 10,38-42)
아침에 일어나 조용한 거실에 앉아 아침기도를 드리고 나니 갑자기 처량한 생각이 들어서 잠시 우울해졌습니다. 목에서부터 등으로 담이 들어 아프고, 눈도 개운 칠 않는데, 엊저녁부터 이까지 부어올랐거든요. 이런 지경인데도 오늘은 강의까지 있고, 수업도 네 시간이나 있으니....
강의 전에 성체 앞에서 말씀드렸죠. "주님, 제 꼴이 꼭 비가 줄줄 새는 찢어진 우산 같습니다. 오늘은 진짜 기운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죠?" 추석 연휴 때문에 두 주만에 만난 사람들이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도 밝은 얼굴로 하나 둘 강당이 가득 차게 들어오는 것을 보며 갑자기 겁이 덜컥 났기 때문입니다.
그 때, 브리지 매케나 수녀의 ’기적은 일어난다’라는 책에서 감명깊게 읽었던 대목이 생각이 났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모습이 낡고 찌그러진 장막임을 느끼고 있었는데 주님이 자신의 거처에 오심을 보고 당황하여 수선을 하려고 버둥대자, 주님은 "네가 그 많은 구멍을 메우는데 몰두하다보면 너는 나를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만일 네가 내게 열중하게 되면 내가 네 장막을 고쳐주마."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녀님은 이제껏 자신에게 밀려오는 유혹들과 죄들에 대해 그리고 세상 일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에 대해, 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생각할지에 대해서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걱정하며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주님의 손을 마주잡고 있는 동안 깨닫게 되었답니다. 마치 오늘 복음의 마르타처럼 말입니다.
수녀님은 치유의 은사를 받은 분이었는데, 자신에게 오는 많은 사람들을 치유해주려고 주님과 함께 있는 기도 시간을 줄이려할 때마다 "그들이 너를 보고 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네게로 오는 것은 내가 네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네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내가 그 일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면 너는 치유자가 바로 나이고 사람들에게 평화를 얻게 해주는 것도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내가 네게 바라는 것은 네가 나의 도구가 되어주는 것뿐이다. 그러니 너는 지금 여기에 앉아 있거라. 그러면 문에는 내가 나가마."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다고 하십니다.
주님께 열중하고 말 그대로 回頭하게 될 때, 자동적으로 죄와 유혹들도 외면하게 되고 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필요한 한가지, 참 좋은 몫’이라는 것은 아무런 활동도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활동을 하는 중에도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심을 언제나 잊지 않고 다만 도구가 되어드리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내가 일을 나 스스로 해보려고 시작하는 날은 내가 좌절을 느끼고 실수를 저지르는 날이다. 그 날은 주님의 왕국 대신에 브리지가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기 시작하는 날이다." 누구보다 왕성한 활동가였던 브리지 수녀의 고백입니다. 이것이 활동을 하는 마르타들이 언제나 있지 말아야 할 마리아의 자세가 아닐까요?
오늘 복음의 앞선 대목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선행’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는 길에서 제자들의 교육에 관해 연속적인 가르침을 주는 대목들을 고려할 때, 앞서의 <모범적인 선행>과 <말씀의 들음>은 참된 제자의 요건을 가르치려는 의도적인 배치로써 어느 한 쪽을 우선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균형 있게 보아야합니다.
어떻든, 제 낡고 꾸질한 거처에 주님을 모시고 말씀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쓸데없는 걱정이 사라졌음은 물론이지요. 강의시간 내내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 마리아도 저였고 그 말씀을 다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마르타도 저였습니다. 동시통역을 하는 셈이 되겠지요. 주님께 낡은 장막을 빌려드리고 사람들과 일체가 되어감에 따라 점점 천막의 구멍들이 수선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생기가 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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