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단풍-그 아름다움의 의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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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상선 | 작성일2001-10-29 | 조회수3,572 | 추천수25 | 반대(0) 신고 |
금년에는 복(?)이 많아 단풍놀이를 만끽할 기회를 얻는다. 지난주에는 모임이 있어 설악산과 오대산, 소금강 일대를 가볼 수 있었고, 지난 사흘간은 지리산 일대를 가보았다. 오늘은 또 우리 형제들의 지역모임이 있어 대둔산을 오르게 된다.
허허 하느님께서 금년에 유난히 단풍구경을 많이 시켜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꼭 특별한 의미가 있는 듯이 느껴진다.
금년들어 특히 형제들 사이에서 이미 좋은 시절 다 지나버린 우리의 젊음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자주 있다. 어느새 40대 중반 또 50대를 맞이하면서 참으로 인생무상, 수도생활 무상을 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나름대로 젊음을 바쳐 영적인 생활에 매진하겠다고 수도생활을 시작한지도 어언 20여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없이 중년이 되어버린 우리...
이제 다시는 20대 30대의 그 젊음의 열정과 싱그러움은 오지 않을텐데 이제는 조급하기까지 하다는 어느 형제의 말...
이 가을엔 이렇게 우리 지나버린 젊은 생을 바라노니 참으로 답답함도 심하구나!!!
이제는 그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을 누리진 못하리니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모두의 결론!!!
아마도 그 결론에 가장 부합하는 모습이 바로 단풍의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단풍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무엇보다도 <황혼>의 아름다움이다. <스러저감>의 아름다움이고 <포기>의 아름다움이요 <희생>의 아름다움이다. 이제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물러나는 아름다움이요 가정에서도 늘 어리게만 보았던 자식들에게 가장의 자리와 중심의 자리를 내어주는 아름다움이다. 아직도 내것이라 여기는 것에서의 손놓음, 이제는 뒷바라지에 충실하겠다는 결의가 이토록 아름다운 빛깔을 내는 것이다.
단풍의 아름다움은 <조화>의 아름다움이다. 지리산의 단풍은 할 말을 잊게 하였다. 단풍이 표현하는 그 수천가지의 색깔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아름다움이었다. 내 주장, 내 생각에만 집착하고 나의 이상에만 집착하는 것은 추한 아름다움이다. 모든 사람의 주장과 생각 하나 하나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인정하는 것은 이 단풍의 아름다움을 체험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관점이리라.
그래 진정한 아름다움은 <조화>의 아름다움이야! <획일성>의 아름다움은 그에 비하면 얼마나 초라하고 경직된 아름다움인가!
이 가을에 주님께서는 아마도 이 단풍의 아름다움으로 중년의 삶을 준비해 나가라 재촉하시나 보다. 이제 더이상 젊음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중년의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은 단풍의 아름다움이다. 어떻게 보면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른 때의 단풍의 아름다움을 꽃피워야 할 때가 바로 지금, 중년기이다.
단풍놀이는 때를 잘 맞춰야 한다. 너무 일찍 서두르면 아직 제대로 물들지 않아서 실망하고 너무 늦게 가게 되면 벌써 말라 비틀어져 있다. 그렇다! 40대의 아름다움은 절정기 단풍의 아름다움이다. 그 짧은 아름다움을 마음껏 펼쳐보고 낙엽이 되어 새로운 생명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바로 이것을 원하신다. 이 아름다움은 오랫동안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불과 10년 남짓 제대로 사랑하고 제대로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 이 시간을 단풍의 아름다움으로 수놓을 수 있을 때 나는 내 인생에서 후회와 회한이 없으리라.
아, 주님! 그 아름다움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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