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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화사한 나비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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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1-10-31 조회수1,691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 세상 삶을 마친 다음 펼쳐지는 사후의 상황을 전해주는 것이 오늘 복음말씀이다. 이러한 오늘의 말씀을 자세히 정독을 하다보면, 아주 무서운 생각마저 든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보다 기분 좋고 편안한 삶만을 고집하거나, 지금까지 자신의 편안함과 안일함을 위해서 남에게 피해와 상처를 주는 삶을 살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을 살았을 때,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천국 문은 굳게 닫친 채,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를 모른다. 악을 일삼는 자야 물러가라." ..... 더 이상의 기회가 없는 상태, 그야말로 모든 것이 끝장난 상황이다. 이제 영원한 불행만이 있을 뿐이다. 얼마나 절망적이고 무서운 상황인가?

 

  이 미사에 참여한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은 영원한 천상잔치에 참여하고, 어떤 분은 그 반대의 상태에 빠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맷돌질을 같이하던 두 여인 중 하나는 데려가고 나머지 하나는 버려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른 모든 사람들은 천국에 있는데, 나만 두렵고 어두운 상태에 버려져 있다면 어떻겠는가?

 

  어느 젊은 엄마가 도시의 공해로 아픈 머리를 식혀보려고 두 딸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 어느 정도 산을 오르다 보니 다리가 아파 왔다. 그래서 나무 그늘 밑에서 쉬려고 앉았으나, 두 딸은 계속 올라가려고 했다. 그래서 그 엄마는 두 딸과 굳게 다짐을 했다. "너희들 내 말소리가 들리는 이 근방에서만 놀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부를 때는 이유를 달지 말고 곧바로 나에게 와야한다." 두 딸은 어머니와 약속을 굳게 하고, 꽃이며 나무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주위를 맴돌았다. 그런데 큰딸이 꽃들 사이를 너울거리며 옮겨다니는 화사하고 아름다운 나비에게 매혹되어, 그 나비를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 때 "얘야!"하고 엄마가 불렀다. 그 딸은 아쉬웠지만 엄마와의 약속 때문에 나비 잡는 것을 포기하고 엄마에게 돌아왔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다 잡은 나비를 놓쳤다며 원망을 하였다. 그러자 그 엄마는 그 딸의 손을 잡고 그곳으로 가서 말했다. "네가 나비를 잡으려고 한 발짝만 더 갔더라면 이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최형락 신부님, ’종교교육예화1’에서)

 

  화사하고 아름다운 나비는 끊임없이 나를 유혹한다. 그 나비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 딸이 엄마의 부르심을 듣고도 나비 잡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엄마의 목소리, 그 소리는 우리도 듣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하는 소리가 바로 그 소리이다. 그 소리는 하느님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떤가? 그 소리에 순응하는가? ’이 정도야 남들도 다 하는데’ ’잠깐이면 나비를 잡는데....’ 등등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며 그 목소리에 귀를 막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안일과 이익 그리고 기쁨과 행복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에 귀가 멀어, 이웃에게 피해와 아픔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리고 이제는 하느님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채, 그저 세상의 너울거림과 화사함에 빠져, 그것이 전부인양 살아간다.

 

  오늘 복음에서 전해지는 사후의 상황, 즉 영원한 천상잔치와 영원한 불행의 판단기준은 무엇이겠는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얘야!"하고 부르시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따라야 할 것이다. 그 목소리가 세상의 번잡함과 시끄러운 소음공해 때문에 들리지 않을 수 있음으로, 하느님의 음성이 내 마음과 양심의 귀에 생생하게 울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 노력은 무엇인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끊임없는 기도 그리고 미사참례, 시간이 있을 때가 아니라 시간을 내서 피정, 세미나 등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그곳에서 끊임없이 들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과 양심의 귀가 무디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끊임없는 자기 성찰, 기도, 미사 그리고 피정 또는 세미나 등에 참여하지 않고 그저 세속에 묻혀 살다보면 내 마음과 양심의 귀가 무딜 데로 무디어져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할 것이요, 그래서 화사하고 아름다운 나비를 잡으려다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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