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앞장 서 길을 닦는 사람의 고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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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 작성일2001-12-10 | 조회수1,634 | 추천수19 | 반대(0) 신고 |
대림 제 2주일 말씀(이사 11,1-10; 로마 15,4-9; 마태 3,1-12)
"이 독사의 족속들아!" 오늘 세례자요한이 당시 양대 종교 지도자들(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에게 하는 말이다. 성격이 괴팍한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대부분 남의 면전에서는 좋은 말을 하고 싶어한다. 설사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고 하여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기는 해도 공격적인 말을 해서 이후에 벌어질 말썽은 가급적 피하고 싶은 것이 통상적이다.
인간의 판단이 자기 중심적이고 때론 악의적인 것일 수가 있기에 누구나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일이지만, 한편 언제나 그런 사람만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을 복음은 알려주고 있다. 모든 사람이 편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때로는 먼지도 뒤집어쓰고 꾸정물에도 엎어지는 궂은 일을 자원해서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주님이 편하게 오시도록 길을 닦는 세례자 요한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거치른 광야에서 투박한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살며 문명과 문화를 거슬러 살아가는 요한. 마치 오늘날의 소비적이고 향락적인 삶을 거슬러 수도자로서 살아가겠다고 서원한 하느님의 사람들을 보는 듯하다. 그들이야말로 때로는 이 시대를 향하여 외치는 힘있는 소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탁한 세상을 향하여 올바른 일갈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소리들이 생명력있는 ’가르침’으로 들릴 수 있도록 자신에게는 더욱 매서운 비판과 질책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물론이다.
성철 큰스님이 사바세계의 중생들에게 내려주는 말씀엔 왜 힘이 들어가 있었던가? 이판과 사판이 엄연히 구분이 있음에도 그의 가르침엔 누구나 수긍하고 따르지 않았던가? 수도자는 원칙적으로 세속과 거리를 둔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세상과 무관한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느님 나라를 누구보다 가시적으로 (이 땅에서) 실현하고 있고 또 실현해야 할 사람들이 그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자들은 수도자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러한 수행과정에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오늘의 이 땅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이 바라보지 못하는 시대의 징표들, 위험 구역들을 안내해주는 표지판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한 쪽으로 쏠려가도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고 미처 눈길을 주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살펴줄 수 있는 시력은 아마도 세상의 때가 덜 묻은 청정한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몫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오늘 독서의 말씀은 도끼로 잘라 버린 나무 그루터기, 그곳에서 희망이 솟아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메시아를 상징하는 이 대목을 오늘은 좀 다른 방향으로 묵상하고 싶다. 즉 햇순과 새싹은 가족과 좋아하는 것들과 온갖 유혹들을 잘라내고 난 그루터기에서 살며시 싹트는 것이라고.... 그 위에 지혜와 슬기를 주는 영, 경륜과 용기를 주는 영, 주님을 알게 하고 그를 두려워하게 하는 영이 내리면 그는 겉만 보고 재판하지 아니하고, 말만 듣고 시비를 가리지 아니하고.... 정의로 허리를 동이고, 성실로 띠를 띠는 희망의 사람이 된다고.....
어찌 수도자에게만 한정된 말씀이겠나? ’자기를 버리고 주님께로 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닌가. 사리사욕을 잘라내고 주님께 헌신하는 그 그루터기에서만이 희망은 솟고 미래는 밝아온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남들의 앞장에 서서 먼저 길을 닦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오물을 치우기 위해서는 때로는 하기 싫은 소리도 하고 듣기도 할 수 있어야 주님의 길은 그만큼 평탄해진다는 말씀으로 들리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하는 말씀이 어찌 ’소리’로 그치겠나? 그러나 진정한 ’말씀’인 주님의 말씀이 오셔야 하기에 스스로 ’소리’가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빛이신 주님이 오실 길만 닦고 어느새 흔적없이 사라지는 등불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사는 사람은 먼저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강인해야 한다. 사람들의 칭찬과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세상의 명예와 권세에 초연하고, 의로운 뜻을 방해하는 어떤 세력과도 타협하지 않는 굳센 의지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자기 혼자 주님을 맞는다면 모르지만, 세상 사람들과 함께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사명을 느낀다면 욕을 먹어도 침 뱉음을 당해도 할 소리는 해야하는 불굴의 정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ps. 얼마간 들어오지 못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보네요. 사태가 짐작이 가지만 성서를 해석하는 교도권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말씀 묵상은 언제나 자유로와야 합니다. 개개인에게 내리는 성령의 작용에 우리가 판단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묵상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게 필요없다고 해서 모두에게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양한 사람들에게 내리시는 묵상 때문에 말씀은 언제나 풍요로운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수사 신부님들의 맑고 깨끗한 영혼의 말씀으로 이곳은 늘 청정구역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주님의 성령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샘물이 끊임없이 솟아올라 목을 축이기를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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