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즐겨 먹고 마시며(마태11,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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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원재연 | 작성일2001-12-15 | 조회수1,728 | 추천수14 | 반대(0) 신고 |
12월 14일 금요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학자 기념일 / 발췌 : *마태 1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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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나타나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까 ’저 사람은 미쳤다’ 하더니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까 ’보아라 저 사람은 즐겨 먹고 마시며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는 구나’ 하고 말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이미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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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먹고 마시며(마태11,19) 즐겨 먹고 마시며(마태11,19) 즐겨 먹고 마시며(마태11,19)
우리의 삶에서 먹고 마시는 재미를 빼면 정말 남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삶의 가장 동물적이고 본능적이며 원초적인 기쁨이 바로 먹고 마시면서 한데 어울리는 것이라고 했다. 문득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교회 내의 신부님들과 목사님들을 한번 떠올려봤다. 사실 비유가 적절한 지 모르겠지만 목사님들은 전혀 술, 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는다. 엄격한 금욕주의(청교도, 프로테스탄 정신)를 고수하기 때문이다. 사실 성서 어디에 술 마시지 말고 밥먹지 말라고 한 구절이 있는가? 그렇지만 그들은 스스로 넘쳐나는 세속적 욕망을 자칫 어길까봐 나름대로 세속 사람들과 다른 원칙을 세워놓고 스스로를 주님의 도구로 언제든지 바칠 수 있기 위하여 절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은 나름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범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성서에서 요한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고 한다. 목사님들의 모습은 마치 세례자 요한같이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자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신부님들은 어떤가? 어떤 신부님은 골초요, 어떤 신부님은 가끔 왕술고래(?)가 되시기도 하신다. 이런 모습은 목사님들이나,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사람들이 예수님(人子, 사람의 아들)을 ’즐겨 먹고 마시며 -- 어울리는 구나’하고 놀라와하지 않는가? 그만큼 예수님은 자유로우신 분이셨고, 모든 행동이 세속의 평범하고 낮은 사람들, 막되어 먹은 천한 사람들과 겉보기에는 똑 같으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과는 달리 우리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인류구원의 무거운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님 외에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죄없는 몸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희생되신 분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부님들도 예수님을 닮아서 그런지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음식도 잘 드신다. 그리고 신자들, 특히 청년들과 잘 어울려 술자리를 함께 하신다. 그래서 목사들과 적어도 겉모습은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개신교 신자들은 이런 신부님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신부님들은 목사님과 다른 점이 있다. 예수님이 인간과 하느님 사이를 화해시켜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라는 구원의 멍에를 지신 것처럼 신부님들은 모든 신자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기 위해 ’가정’이라는 십자가를 등에 지셨다. 그래서 당신들은 목사님처럼 결혼도 하지 않고, 신자들처럼 아들 달도 없다. 그 좋은 인생의 것들을 몽땅 하느님 앞에 제물로 바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부님을 좋아한다. 예수님을 즐겨 따르던 이스라엘 군중들 처럼 신부님과 함께 즐겨 먹고 마시기를 좋아한다. 신부님 오늘 저녁에 한잔 어떻습니까? 좋-지죠!
사랑이 많으신 하느님 당신이 지고 가신 십자가의 모범대로 살아가는 당신의 가장 귀한 사제들을 당신 앞에 봉헌합니다. 그분들의 삶이 언제나 당신의 말씀을 증거하고 당신의 이름을 빛내며 이 세상에서 당신 양떼들의 참다운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시고 늘 지켜주소서. 항상 저희 신자들의 영원한 ’친구 예수님’으로 남게 해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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