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걸을 수만 있게 된다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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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1-12-29 | 조회수2,220 | 추천수16 | 반대(0) 신고 |
12월 30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마태오 2, 13-15. 19-23
<걸을 수만 있게 된다면>
최근까지 한 회사 중역으로 근무하다가 예기치 않았던 병고로 인해 명예퇴직을 한 형제님 부부를 알게 되었습니다. 60평생 병원 신세 한번 안져본 건강했던 사람이었기에 가족이 받았던 충격은 참으로 컸습니다.
특히 형제님은 자신의 눈앞에 벌어지는 절망적인 사태를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두차례에 걸친 대수술, 항암치료,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 점점 마비증세를 보이는 손과 발...모든 것이 다 엉망이었고 다 비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들이닥친 병고로 인해 가족 구성원들이 겪는 불편이나 스트레스는 참으로 큰 것이었지만, 묘하게도 그 형제님의 병은 가족 구성원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막내 아들은 아버지의 병구완을 위해 다니던 학교를 휴학했습니다. 언제나 바빠서 얼굴보기 힘들었던 첫째의 얼굴도 병을 계기로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또 무엇보다도 부인을 행복하게 한 일이 한 가지 있었는데, 병실 밖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나오시면서 제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저 양반하고 한평생 일 때문에 바빠서 이렇게 차분하게 마주앉아 지내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완벽하던 양반이었는데, 아프다보니 애기처럼 변하고, 그런 모습 보는 것도 결코 싫지만은 않네요."
이런 가족들의 일치된 정성때문인지 요즘 병세는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아주 조금씩이나마 호전될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저 양반, 걸을 수만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자기 혼자 성당만이라도 다닐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램이 없겠습니다." 자매님은 새해를 맞으며 이렇게 자신의 유일한 소원을 제게 말했습니다.
오늘 성가정 축일을 맞아 늦게나마 "나자렛의 성가정"을 만들어가고 있는 위 가족의 소망을 부디 주님께서 들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하느님안에서는 분명히 성가정, 행복한 가정임이 틀림없었지만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때 참으로 이해하지 못할 비정상적인 가정이었습니다.
결혼했다고는 하지만 평생 독신으로 지냈던 요셉, 미혼모였던 마리아, 수많은 적대자들로부터 반대받던 표적이었던 아들 예수. 이해하지 못할 아기 예수의 숱한 언행들로 인해 마리아와 요셉이 받았던 상처들, 끊임없는 의혹들...이렇게 나자렛의 가정은 보편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수용하기 힘든 기이한 가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의혹과 좌절, 고통과 낙담 속에서도 꾸준히 하느님의 약속이 자신들 안에 이루어질 것임을 굳게 신뢰하면서 충실하게 매일매일을 걸어갔던 가정이 나자렛의 성가정이었습니다.
나자렛의 성가정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육화강생이 실현되는 장으로서의 가정, 하느님의 뜻이 구체화되는 장으로서의 가정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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