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살다보니 이런 때도
이전글 이전 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왕수도자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2-01-12 조회수2,457 추천수22 반대(0) 신고

1월 13일 일요일, 주님 세례 축일-마태오 3장 13-17절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살다보니 이런 때도>

 

지난해 연말, 저는 참으로 반가운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한 순간의 실수로 소년원에까지 와서 1년 반 가량 지내다가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된 청년입니다. 소년원에서 생활하는 친구들은 대체로 천주교나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4개 종교 중에서 한 곳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에 있는 종교 집회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 친구는 처음 고참의 권유로 천주교 집회에 나오게 되었는데, 집회에 나오면 나올수록, 교리를 접하면 접할수록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수녀님의 도움으로 집중교리를 받고는 지난 해 부활절에 세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교도소 사목에 조금이라도 관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누구나 이런 유형의 갈등 앞에 고민하게 됩니다. "저 사람들 이 안에서 사는 동안 일단 교리만 받게 하고, 세례는 여기서 나간 다음 각자 소속된 본당에 가서 받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저 사람들 이곳에서 세례를 받지만 사회 나가면 십중팔구 성당 안나갈텐데..."

 

그러나 저희는 일단 "우리가 씨를 뿌리면 수확을 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는 진리에 의지하며 그 친구와 다른 몇몇 아이들에게 세례성사를 집전했습니다.

 

그러나 왠걸요. 몇몇 친구들은 "이제 세례도 받고 했으니 좀 더 나아지겠지"하는 우리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기도 해서 실망이 참으로 컸습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 세례받은 아이들은 그곳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녀석들 집으로 돌아가면 적어도  주일미사만큼은 꼭꼭 참석해야할텐데"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던 제게 그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던 것입니다.

 

"그간 안녕하셨어요? 저 요즘 사고 안치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신차려야지요. 그런데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제 교적을 이곳 관할 성당으로 옮기고 싶어서 그런데, 제 세례증명서를 좀 보내주셨으면 해서요."

 

집에서 가까운 본당으로 주일 미사는 물론 가끔 평일미사까지도 나가고 있다는 친구의 말에 저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야! 정말 살다보니 이럴 때도 있구나! 그래 정말 수확을 거두시는 분은 주님 바로 그분이구나" 하는 생각에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세례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전혀 죄가 없으시기에 회개할 필요가 없으신 분께서 우리 인간 역사 안에 보다 깊이 개입하시기 위해 인간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십니다. 인간의 손에 의해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참된 겸손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례예식 때를 기억해보십시오. 우리는 사제 앞에서 "세례받기를 원합니다"라고 청했습니다. "세례받기를 원합니다"라는 말은 다른 말로 "성인(聖人)이 되기를 청합니다"라는 말과 동일합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제 우리가 완전히 깨끗해졌다는 말도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지속적인 회개의 여정을 걷겠다는 말과도 동일합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는 말이 아니라 이제 험난한 구원의 여정을 출발한다는 말과도 동일합니다.

 

세례식 때의 설렘이나 좋은 느낌, 많은 사람들의 축하인사, 꽃다발, 축하선물, 축하행사, 감격스런 미사와 첫영성체... 이런 것들은 사실 잠시뿐입니다. 곧 이어 다가오는 부담들은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주일미사 참례에 대한 막중한 부담감, 복음을 선택함으로 인해 감수해야할 손해들, 회의감, 무의미...등.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십자가를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고뇌의 쓴잔을 받아 마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남들이 아무도 가기 싫어하는 십자가의 길을 걷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삶의 매순간 선택의 기로 앞에서 예수님 그분을 지속적으로 선택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