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님께... 그대에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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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2-01-16 | 조회수2,428 | 추천수27 | 반대(0) 신고 |
2002, 1, 17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복음 묵상
마르 1,40-45 (나병환자를 낫게 하시다)
나병환자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무릎을 꿇고] 간청하며 "선생님은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니 예수께서는 측은히 여기시고 당신 손을 펴 (그를) 만지시며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시오" 하셨다. 그러자 즉시 그에게서 나병이 물러가고 그는 깨끗하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엄히 경고하여, 곧 그를 내보내셨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그 대신, 가서 제관에게 당신 (몸)을 보이고, 당신이 깨끗해진 데 대하여 모세가 지시한 (제물)들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시오."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널리 알리고 그 이야기를 퍼뜨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분은 더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실 수 없었고, 바깥 외딴 곳에 머물러 계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을 찾았다.
<묵상>
선생님께
선생님을 귀찮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온통 당신에 대한 것 뿐이었습니다. 당신은 제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 저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누구 하나 말상대가 되기는커녕 시선조차 주는 이 없었습니다.
그들을 결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제 팔자려니 생각했을 따름입니다.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저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다가 그날 당신을 만났습니다. 낫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은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기특한 청원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를 낫게 해주십시오’라고 떼를 쓰고 싶었을텐데.
어쩌면 그것이 당신을 향한 소박한 믿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항상 외톨이로 당하면서 살아온 제가, 당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제가, 낯선 당신을 만나 드릴 수 있었던 말씀의 전부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은 달랐습니다. 썪어 문드러진 제 몸을 만져주셨지요. 저는 이미 그것으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굳이 제 몸이 다시 깨끗해지지 않았더라도, 당신은 제가 분명 살아있는 한 사람이라는 잊혀졌던 사실을 일깨워주셨기에 저는 새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학대하며 살아온 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저를 향한 쌀쌀맞은 시선과 공동체의 냉대가 얼마나 정의롭지 못한 것이었는지, 당신은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당신을 만난 이후, 제가 새롭게 태어난 이후, 저는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저의 깨끗해진 몸을 보아야 할 제관이 아니라, 저처럼 자신을 학대하며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던 벗들이, 공동체의 이름으로, 보잘것없는 이를 철저히 소외시키는 이들이 떠올랐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던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정말로 죄송합니다. 제 이야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더욱 힘들어지셨다면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제가 원했던 것 단 하나는 제가 받은 새 삶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는 것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은 믿어주십시오.
어쩌면 제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선생님 이야기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도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이름없이 죽어가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참된 삶인지, 더불어 함께 하는 삶인지 모르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 못난 이들, 부족한 이들을 철저히 내리누르는 현실이 버젓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당신을 귀찮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당신의 엄하신 말씀을 어기려는 생각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구요. 더이상 무슨 말씀을 필요 하겠습니까.
언제 다시 선생님을 뵈올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심을 믿기에, 오늘도 당신께서 주신 새 생명으로 기쁘게 나아갈 것입니다. 그럼 다시 뵈올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사랑하는 그대에게
그대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대를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조용히 외딴 곳에 머물면서 이제까지 만난 이들을 떠올립니다. 물론 당신도 그 중에 하나이구요.
나는 그대들에게서 아름다운 생명을 보았습니다. 아버지께서 곱게 곱게 넣어주신 그 생명을 말이지요. 그러나 너무나 안타깝게도 그 생명을 철저히 찢겨져 있었답니다.
찢는 이들, 찢기는 이들 모두가 고통스러운 현실이지요. 찢는 이들은 고통을 못 느끼고, 찢기는 이들은 자신의 고통을 당연하게 여기기에 나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대가 자신의 고귀함을 되찾기를 바랬습니다. 그대는 나에게 너무나도 절절하게 말을 건넸습니다. "선생님은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대는 어느 누구보다도 내 뜻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대의 말을 들으면서 세상 어느 무엇도 갈라놓을 수 없는 완전한 일치를 느꼈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는지요.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시오."
나와 그대는 분명 그 순간 하나였습니다. 그대는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온 세상이 새롭게 태어날 그 날을 향한 소중한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새롭게 태어난 그대는 기쁨은 곧 나의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날의 기쁨이 퍼지고 퍼져 온 세상을 가득 메울 날을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내가 그대에게 왜 그날의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는지 알겠습니까. 행여 그대의 이야기를 듣고, 그날 그대와 내가 함께 나누었던 기쁨의 의미를 잘못 받아들이는 이들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거듭남이 지닌 깊은 뜻을 모르는 이들이 단지 겉으로만 변하려 할 지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행여 나에 대한 그릇된 선입관이 생겨 나를 마치 현실적인 이익을 챙겨주는 이 정도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지금 이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다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나는 삶을 통해 내 자신을 서서히 드러낼 것이고, 시간이 흐른 후에 나에 대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내가 나의 편안함을 때문에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피하기 위해서, 그날 일이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언제 어디서나 그대가 함께 해주기를 바라는 그들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면서 나는 그대를 떠올릴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대가 지닌 그 아름다운 믿음과 희망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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