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머무를 때와 떠날 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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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 작성일2002-02-07 | 조회수1,956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연중 제 3주간 목요일 말씀(1열왕 2,1-12; 마르 6,7-13)
같은 복음을 가지고 일년에도 몇 번씩 묵상할 때마다 다르다는 것도 신기하다. 상황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주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은 그렇게 다양하고 풍부하다는 이야기리라. 그래서 매일 그 날의 복음을 읽을 때 누구에게도 아닌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과 예전에 들려주셨던, 다 아는 이야기가 아닌 오늘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찾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리라.
오늘 복음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어떤 몸가짐을 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들과 만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상히 일러주시는 대목이다. 마치 자녀가 여행을 떠날 때 어머니가 옷깃을 여며주시며 이르시는 당부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당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지침을 잘 지킨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시며 먹을 것이나 자루도 가지지 말고 전대에 돈도 지니지 말며 신발은 있는 것을 그대로 신고 속옷은 두 벌씩 껴입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덕지덕지 끼어 입은 위선의 속옷을 벗고, 전대 속의 것으로, 짊어지고 있는 자루 속의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려는 습관을 내려놓고, 서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오로지 자신에게 부여하신 사명과 권한만을 가지고 일하라는 분부의 말씀으로 들린다.
"어디서 누구의 집에 들어가든지 그 고장을 떠나기까지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그러나 너희를 환영하지 않거나 너희의 말을 듣지 않는 고장이 있거든 그 곳을 떠나면서 그들에게 경고하는 표시로 너희의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사람이 머무를 때와 떠날 때를 아는 것은 또 얼마나 중요한가? 나아갈 때가 있으면 머무를 때가 있다. 앞으로 나서야 할 때가 있었다면 뒤로 물러서야 할 때가 있다. 말을 해야할 때가 있는가 하면 말을 아끼고 들어야 할 때가 있다.
아니,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지 아니한가? 입어야 할 때가 있다면 벗어야 할 때가 있다. 지녀야 할 때가 있었다면 내어놓아야 할 때가 있다. 먹을 때가 있으면 배설할 때도 있어야하고 일할 때가 있으면 쉬어야 할 때도 있어야한다. 앉을 때가 있으면 설 때가 있다. 웃을 때가 있으면 울 때도 있다. 뜰 때가 있으면 질 때도 있다. 이것이 세상의 순리고 그래야 모든 것이 상생, 공존할 수 있다.
이것을 거역하려할 때 미움과 갈등, 허탈과 분노가 생기게 되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분별이다.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자신의 위치를 잘 살펴보아서 스스로 때를 맞출 줄 아는 사람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주위 모든 사람들을 편하게 하고 세상을 조화롭게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독서에서는 다윗이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며 유언을 하고 있다. ’사내 대장부가 되는 길은 주님의 명령을 지키고 그분이 보여주신 길을 따라가며, 법도와 계명, 율례와 가르침을 지키는 것’이라고 당부한다. 생명과 죽음이 순리이듯이 모든 것은 정한 때가 있고 그 정한 흐름에 몸을 맡길 줄 아는 것이 주님의 섭리에 따라 사는 길이다. 그것이 "무엇을 하든지 성공하는 길"임을 가르치며 유유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있는 성왕 다윗이다.
늘 같은 자리를 고집하고, 이제까지 학습되어온 습성과 관념으로 판단하며, 한 자세만을 고정적으로 견지하려는 모든 애착심을 먼지처럼 훌훌 털어버리고..... 오직 주님의 섭리만 따르라는 주님의 당부를 오늘복음에서 듣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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