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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혜화 전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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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2-02-07 조회수2,040 추천수25 반대(0) 신고

2월 8일 금요일-마르코 6장 14-29절

 

"그래서 왕은 곧 경비병 하나를 보내며 요한의 목을 베어오라고 명령하였다."

 

 

<혜화 전철역>

 

청소년들이 많이 왕래하기로 유명한 혜화 전철역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서있던 곳 바로 뒤에는 몇 개의 간이의자가 놓여져 있었는데, 아이들의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저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 순간 저는 못 볼 꼴을 보고 말았습니다. 그 친구들이 앉아있던 의자 주변에는 어르신들도 잔뜩 서 계셨는데, 이 녀석들이 얼굴을 보아하니 고등학생들 같은데 버젓이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들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저는 할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더욱 화가 난 것은 그 옆에는 할아버지 아저씨, 군인, 직장인...많은 사람들이 서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도 그냥 모른 체 할까 어쩔까? 혹시라도 저 녀석들 등치들도 꽤 큰데, 괜히 사람들 많은데서 창피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짧은 순간이었지만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마저 상식을 포기할 수 없지"하면서 용기를 내고 다가갔습니다. 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었기에, 소년원에서 발급해준 "청소년지도위원" 패찰을 우선 보여준 다음, 수첩을 꺼내면서 "너희들 학생들 같은데 이거 너무한거 아냐? 여기 옆에 어르신들도 많이 계시는데, 함부로 담배 피우고 이래서 되겠어? 학생증들 내놔봐!"

    

한 순간 대치상황 가운데 미묘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중 머리가 제일 큰 아이가 담배를 꼬나문 채 저를 똑바로 보며 말했습니다. "아저씨가 도대체 뭔데 그래요? 우리는 학생 아니에요. 아저씨나 잘해요!"

    

"아저씨나 잘해? 이 친구들 안되겠네! 너희들 여기 꼼짝말고 있어" 하면서 저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거는 척 했습니다. 그제야 이 친구들 꼬리를 내리면서 "됐어요! 아저씨! 담배 끄면 될 거 아니에요?" 하면서 다들 담배를 발 밑으로 던지고는 재수 옴 붙었다는 표정으로 가래침을 뱉고, 바닥에 떨어진 꽁초를 신발로 지근지근 밟았습니다.

 

"담배 피우는 것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할 것 아니냐"고 간단히 훈계한 후에 저는 다가오는 전철에 올라탔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중에 하나가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예의 그것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음은 참으로 서글픈 일입니다. 그러기에 상식을 지켜나가는 일, 다른 사람이 어떠하든 나만이라도 상식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인간이 존귀한 이유는 저항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기계도 아니며, 욕망에 따라 사는 동물도 아니며 가치추구의 존재입니다. 자신이 심사숙고한 끝에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 것에 대해서는 용감하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외침이 필요한 때입니다. 심사숙고 끝에 옳다고 생각한 일에 대해서는 목숨을 거는 모습도 때로 필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에서 소개되고 있는 세례자 요한의 생애는 더욱 가치 있고 빛을 발하는 생애로 여겨집니다. 목이 날아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과감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던 세례자 요한의 용기는 오늘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참으로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목숨을 걸기 위해서는 한가지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필요한데, 그 전제조건은 바로 확실하고 올바른 진리를 찾는 일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진심으로 사랑하고 투신할 수 있는 그 무엇,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 그 무엇, 절대 우리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진실한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찾는 노력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진리, 그 사랑에 목숨을 바칠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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