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드러내야 할 것과 감추어야 할 것...
이전글 이전 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반가운 손님  
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2-02-13 조회수2,420 추천수21 반대(0) 신고

 

 

2002, 2, 13 재의 수요일 복음 묵상

 

 

요엘 2,12-18 (돌아 오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제라도, 진심으로 뉘우쳐 나에게 돌아오너라. 단식하며 가슴을 치고 울어라." 옷만 찢지 말고 심장을 찢고, 너희 주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주는 가엾은 모습을 그냥 보지 못하시고, 좀처럼 노여워하지도 않으신다. 사랑이 그지없으시어, 벌하시다가도 쉬이 뉘우치신다. 혹시 마음을 돌이키시어, 재앙을 거두시고 복을 내리실지 그 누가 알겠느냐? 너희 주 하느님께 바칠 곡식과 포도주를 내려 주실지 그 누가 알겠느냐?

 

시온 산 위에서 나팔을 불어라. 단식을 선포하고 성회를 열어라. 백성을 불러모으고 거룩한 대회를 열어라. 노인들을 불러모으고 어린이들을 모아들여라. 젖먹이도 오라고 하여라. 신혼부부도 신방에서 나와 모이게 하여라.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를 오가며 주님을 섬기는 사제들아, 울며 빌어라. "주님, 당신의 백성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당신의 유산으로 삼으신 이 백성이 남에게 욕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너희 하느님이 어찌 되었느냐?’며 손가락질받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당신의 땅 생각에 가슴이 타고, 당신의 백성 불쌍한 생각이 드시었다.

 

 

2 고린토 5,20-6,2 (지금은 구원의 날)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절 구실을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시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는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고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일에) 협력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이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도록 권고하는 바입니다. 과연 그분은 "내가 알맞은 때에 네 (청)을 들어주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와 주었노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보시오, 지금이야말로 알맞은 때이며, 보시오,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입니다.

 

 

마태오 6,1-6.16-18(자선, 기도, 단식에 대한 가르침)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움을 행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에게서 보수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고 회당과 골목에서 행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시오.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그들은 (이미) 자기들의 보수를 받았습니다. 당신이 자선을 베풀 때에는 당신의 오른(손)이 무엇을 하는지 당신의 왼(손)이 모르게 하시오. 그리하여 당신의 자선이 숨겨져 있게 하시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당신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갚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는 위선자들처럼 하지 마시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나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그들은 (이미) 자기들의 보수를 받았습니다. 당신이 기도할 때에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시는 당신 아버지께 기도하시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당신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갚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시오. 사실 그들은 단식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려고 자기들의 얼굴을 찌푸립니다.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그들은 (이미) 자기들의 보수를 받았습니다. 당신이 단식하려거든 당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당신의 얼굴을 씻으시오. 그리하여 당신이 단식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말고 숨어 계시는 당신 아버지께 드러내시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당신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갚아 주실 것입니다.

 

 

<묵상>

 

며칠 전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엮어 낸 [사법살인 1975년 4월의 학살](학민사 발간)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이 너무나도 쓰라리게 다가왔습니다. 어느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갔던 1975년 4월 9일의 광란의 역사가 양심있는 선한 이들에 의해서 다시금 세상 밖으로 드러나고 죄없이 억울하게 죽어간 넋들의 영광스러운 부활이 가슴 진하게 다가오는 순간에 서 있음을 느낍니다.

 

1975년 4월 9일, 국제사면위원회가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한 그 날, 8명의 죄없는 이들이 법의 이름으로 살인을 당했습니다. 서도원, 하재완, 김용원, 송상진, 도예종, 이수병, 우홍선, 여정남... 이름하여 국가 전복을 꾀한 친북 지하 단체 ’인혁당’의 수뇌부들은 대법원의 사형 확정 후 15시간만에 전격적으로 고귀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땅의 민주를 위해서 삶의 자리에서 헌신했던 이들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인혁당’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 날 그렇게 몸서리쳐지는 현실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20여년이 훨씬 지나서야 가리워졌던 역사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가릴 수 없는 진실이 서서히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인 삶 안에서든, 역사 안에서든 드러내야 할 것과 숨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선한 것은 숨겨야 합니다. 선한 것은 숨기면 숨길수록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굳이 당사자가 애써 드러내지 않아도 말입니다. 당사자가 감추는 선함이 다른 이들에 의해 드러날 때 더욱 아름답게 빛을 낼 수 있습니다.

 

추한 것은 드러내야 합니다. 힘들지만 애써 드러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추한 것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용서를 청할 때 당사자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상대방도 모두가 옳은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선한 것을 드러내려고, 추한 것을 감추려고 했습니다. 독재자들은 자신의 추함을 감추기 위해 선한 이들을 죽였습니다. 왜 죽이느냐고 외치는 이들을 죽이려 달려들었습니다. 추함은 추함을 낳고, 악은 악을 낳았습니다. 추한 것을 선한 것이라 호도하고, 악을 따르라고 외쳤습니다.

 

자신의 가슴을 찢으며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할 이들이, 힘없는 이, 선하게 사는 이에게 회개를 강요했던 지난 날의 아픈 역사가 가슴을 짖이깁니다. 자신의 선함(흑심을 감춘 위선이겠지만)을 드러내려는 이들의 추한 몸짓이 할퀴고 간 상처가 대물림되는 현실이 슬픕니다.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흙에서 온 내가 흙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겸손한 마음으로 고백하며 내 안에 추함을 드러내며 용서받기를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말없이 드러내지 않고 선함으로 내 삶을 채우고 이런 나를 주님과 이웃들에게 봉헌하는 시간입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만의 회개와 용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회개와 용서의 은총이 충만한 시간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제 잇속 차리기에 정신 없는 저 위대한 신자유주의자들에게서, 힘으로 다른 나라를 짓누려는 저 오만한 거대 강대국들에게서, 무소불위를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 경제 기득권층들에게서, 중심을 상실한 종교지도자들에게서 회개의 탄식소리가 울려퍼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