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독한 술과 적금통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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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2-03-09 | 조회수1,875 | 추천수14 | 반대(0) 신고 |
3월 9일 사순 제 3주간 토요일-루가 18장 9-14절
"한편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하고 기도하였다."
<독한 술과 적금통장>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리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당시 세리들이 얼마나 고통스런 삶을 살아갔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언제나 눈만 뜨면 삶의 일부처럼 따라다니던 깊은 죄책감과 그로 인한 심리적 불안, 강도 높은 스트레스 등등이 세리들 하루의 삶을 온통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리는 한때 나름대로 정직하게 살려고 어금니를 꼭 다물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지만, 그럴수록 살길은 더욱 막막해져만 갔습니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제비새끼들처럼 입을 벌리고 먹을 것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던 그는 전혀 마음에도 없던 세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힐 때까지만"하고 마음먹었지만 어언 세월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숱한 세월이 흘렀습니다.
나름대로 노력한 바도 있고 해서 돈도 꽤 모았습니다. 집안도 안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 직업에 발을 너무 깊숙이 들여놓은 나머지 이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괴로움을 잊기 위해 그는 거의 매일 취하도록 독한 양주를 마셔 보아도, 적금이 차곡차곡 쌓여 가는 통장을 보아도 이젠 별 재미가 없습니다.
매일 비수처럼 가슴에 와 박히는 동족들로부터의 손가락질과 저주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철저한 소외, 철저한 죄인취급을 당했기에 그가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은 동료 세리들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수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이유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하느님 앞에 언제나 우리는 죄인)을 토대로 한 겸손한 자기 낮춤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절대 놓지 않았던 하느님과의 자신 사이의 가느다란 한 가닥 끈 때문이었습니다.
조소와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그는 마음 한편으로는 진정으로 하느님께로 돌아가기를 갈망했습니다. 동족에게 크나큰 죄를 짓고 있다는 죄책감에 싸여있으면서도 그는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그는 기도하러 성전에 갈 때도 가급적이면 다른 사람들이 기도하러 오는 시간을 피해서 몰래 왔습니다. 혹시라도 성전에 누군가가 있으면 그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성전 기둥 뒤로 숨는다든지, 가장 으슥한 곳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아주 간단한 한 마디 말이지만 우리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취해야할 가장 바람직한 자세가 바로 이 말 안에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우리 한평생, 우리의 매순간 언제나 되풀이되어야 할 가장 훌륭한 화살 기도가 바로 이 기도입니다. "주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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