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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음의 나'를 벗고 '생명의 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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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2-03-16 조회수2,100 추천수21 반대(0) 신고

 

 

2002, 3, 17 사순 제4주일 복음 묵상

 

요한 11,1-45 (라자로의 죽음과 소생)

 

완연한 봄입니다.

생명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기운 한 가운데에서 죽음을 묵상합니다. 죽음을 넘어야 참된 생명, 곧 부활의 삶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닙니다. 살면서도 참된 생명을 누릴 수 없게 만드는 온갖 죽음의 그림자들을 들추어내고, 그것들을 없앰으로써 참된 삶을 살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죽음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살고 싶어합니다. 그것도 제대로 살고 싶어합니다. 마지못해 한 순간 한 순간을 넘기는 그러한 삶이 아니라, 기쁨이 충만한 아름다운 삶을 원합니다. 그러나 실제 삶은 그렇게 아름답지만도 기쁘지만도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삶 안에 지고 가야할 굴레와 무게들이 삶을 힘겹게 만듭니다. 이 굴레들, 무게들, 온갖 삶의 추한 모습들은 참된 생명을 갉아먹는 죽음의 그림자들입니다.

 

삶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욕망과 집착들, 삶을 추하게 만드는 질투와 시기와 온갖 음모들, 나를 위해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고 억압하려는 악한 의도들, 이 모두가 사람이기에 적든 많든 지고 가야하는 삶의 굴레요 무게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하나의 '나'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하나의 나를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더러운 나, 악한 나, 올바른 삶을 살지 못하는 나... 그래서 애써 감추려 합니다. 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행여 다른 이들이 또 다른 나를 볼까 두려워 깊숙이 숨기고 아무도 보지 못하게 문을 닫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 모든 굴레는 내 안에 썩어 내 삶을 더욱 추하게 만들뿐인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숨겨진 내가 드러난 나를 집어삼킬텐데 말입니다.

 

생명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돌을 치워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가 당신을 만날 수 있도록, 다른 이들을 만날 수 있도록 위선의 벽을 허물라고 말씀하십니다.

 

"라자로야, 나오너라."

 

'나의 온전한 삶을 방해하던 더러운 나, 죽은 내'가 주님의 뜨거운 햇살을 받고 새 생명으로 거듭나도록 두려움 없이 당신 앞으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풀어 주어 가게 하여라."

 

'더러운 나'는 죽고 '생명의 내'가 온전히 '오늘을 사는 나'와 하나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추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 자신이 지니고 있는 죽음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 죽기 보다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이 것만이 우리를 참된 삶으로, 온전한 생명으로 이끌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한 예수님의 초대에, 죽음의 그림자를 거두고 참 생명으로 충만한 삶을 위한 예수님의 초대에 기쁜 마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돌을 치워라!" "나오너라!" "풀어주어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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