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죄 앞에서의 태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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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상선 | 작성일2002-03-18 | 조회수1,723 | 추천수17 | 반대(0) 신고 |
가끔 어떤 형제나 자매가 나에게 와서 <들었어? 거기 있잖아, 그 형제 말이야... .... 하다던데... 웃기지도 않어... 지 꼬라지도 모르고,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있어...> 등의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려!> 하고 응답하고 말지만 씁쓸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도대체 누가 죄인이고 누가 죄인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가 죄인이라고 단죄하는 사람이 수산나처럼 무고한 사람일 수 있고 우리가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흉악한 모리배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처럼 그 누가봐도 죄인이라 단정할 수 있는 사람에게조차도 같은 죄인인 주제에 단죄할 수 없다고 가르치신다. 죄인이 죄인이 단죄한다는 것은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 아닌가?
동병상린이라고 죄인이 죄인을 보면 그 죄를 함께 아파하고 위로해 주고 기도해 주어야 할텐데, 어찐 일인지 우리네 인간들은 죄인이면서도 죄인을 바라보면 자기 꼬라지를 보는 것 같아서인지 몰아부쳐 완전히 매장시켜 버리고자 하는 지독히 악한 생각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인간은 죄인일 수 밖에 없는가 보다.
성 프란치스코는 우리가 죄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이렇게 권고한다:
<하느님의 종은 죄 외에 어떤 일도 못마땅해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누가 어떤 죄를 지을 경우라도 하느님의 종은 이 죄를 보고 사랑이 아닌 다른 이유로 흥분하거나 분개하면 그 죄를 판단할 하느님의 권한을 자기 것으로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 때문에도 분개하거나 흥분하지 않는 하느님의 종은 진정코 아무 소유도 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리면서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는 사람은 복됩니다.>
나는 혹 누구의 죄 때문에 흥분하거나 분개하고 있지는 않은가?
드러난 죄와 드러나지 않은 나의 죄 중에 어떤 것이 더 큰 것인지 겸허히 생각해 보자. 드러난 누구의 죄가 정말 감추어져 있는 나 자신의 죄보다도 무겁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돌로쳐라! 예수님의 가르침은 지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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