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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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태범 | 작성일2002-03-21 | 조회수1,908 | 추천수15 | 반대(0) 신고 |
사순 제5주간 목요일 (2002-03-21) - 야곱의 우물에서 독서 : 창세 17,3-9 복음 : 요한 8,51-59
[고백]
그때에 예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내 말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유다인들은 “이제 우리는 당신이 정녕 마귀 들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소.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도 죽었는데 당신은
‘내 말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고 하니 그래 당신은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훌륭하다는 말이오?
예언자들도 죽었는데 당신은 도대체 누구란 말이오?” 하고 대들었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높인다면 그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 영광을 주시는 분은 너희가 자기 하느님이라고 하는 나의 아버지이시다.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알고 있다. 내가 만일 그분을 모른다고 말한다면 나도 너희처럼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고 있으며 그분의 말씀을 지키고 있다.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은 내 날을 보리라는 희망에 차 있었고 과연 그날을 보고 기뻐하였다.”
유다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당신이 아직 쉰 살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단 말이오?” 하고 따지고 들었다.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하고 대답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은 돌을 집어 예수를 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피하여 성전을 떠나가셨다.
(요한 8,51-59)
이 일을 어찌할 거나. 예수님은 오늘 기어이 일을 만드신다.
그렇지 않아도 기회만 되면 일렁이려는 파도와 같은 이스라엘 군중의 마음을 부추기는 셈이 아닌가? 멀찍이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내 입술이 타들어간다.
이스라엘인들은 그 동안 감히 자신들의 입술로는 발음할 수도 없었던 하느님을 나의 아버지라 하는 둥, 자신들의 신앙의 자존심인 아브라함을 빗대어 당신의 존재의 근원을 알리시는 둥 야단났다.
오로지 예수님 덕택에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는 적어도 이스라엘인들과는 다르다.
예비자 교리반에서 있었던 일이다. 연세가 70이 넘은 할머니께서 세례받기를 원해 열심히 교리반과 미사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글을 깨우치지 못한 분이라 성당에 다니면서 상처를 받으셨다. 나는 며칠을 고민하였다.
할머니가 당당하게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생각 끝에 나는 교리일반 상식과 기도문을 테이프에 녹음해 드렸다.
할머니는 드디어 부활절에 세례를 받으셨다. 세례식 중간중간에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누가 감히 저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드릴 수 있을 것인가?
그날 할머니는 마침내 하느님을 아버지로 고백하였다. 그리고 당신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에 기꺼이 영광과 감사를 드렸다.
하느님께서는 그날 나이 든 한 딸을 받아들이시고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예수께서 하느님께 충실하였듯이 그 할머니도 하느님께 충실하였기에. 진실로 세례의 영광을 살 일이다.
윤영길 신부(광주대교구 곡성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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