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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을버스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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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2-03-24 조회수2,950 추천수39 반대(0) 신고

3월 25일 성주간 월요일-요한 12장 1-11절

 

"그 때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르드 향유 한 근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마을버스 안에서>

 

전철역에서 내려 마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습니다. 버스 앞쪽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었기 때문에 저는 공간이 좀 여유가 있는 뒤쪽으로 가서 섰습니다. 그리고 습관처럼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에서 읽고있던 책 한 권을 꺼내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운전기사는 갑자기 나타난 오토바이를 피하기 위하기 위해서 급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그런데 그 급브레이크가 보통 급브레이크가 아니라 인정사정 없는 왕급브레이크였습니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느라 두 손 다 어디에도 고정시키지 못했던 저는 마치 벼락맞은 나무둥치가 쓰러지듯이 제 앞에 앉아있던 승객들 사이로 엎어졌습니다. 다행히(?) 상당한 미모의(?) 두 아가씨들 사이로 엎어졌는데,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가 난데없는 봉변을 당한 두 사람은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저도 너무도 갑자기 당한 일이라 어쩔 줄 몰라하면서 "죄송합니다!"만 연발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미안한 일이라서 몸둘 바를 모를 정도였습니다.

 

재빨리 일어나서 사태를 겨우 수습하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저를 쳐다보는 다른 승객들이 눈초리가 싸늘했습니다. "나이 꽤나 먹은 사람이 칠칠맞게...", "저 사람 의도가 의심스러운데..."하는 표정들이었습니다.

 

너무도 미안하고 멋 적은 나머지 그 자리에 서있기가 뭣해 앞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순간, 제 등뒤로 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디 다친 데는 없수?" 걱정과 염려가 가득 담긴 그 할머니의 음성은 마치도 고향에 계신 제 어머니의 목소리와도 비슷했습니다. 쑥스럽고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제게 던진 그 할머니의 한마디 말은 참으로 고마운 말씀, 따뜻한 말씀, 위로가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예수님께 봉헌하는 여인에 관한 기사를 읽습니다. 한 방울만 떨어트려도 신비스런 향이 온방 가득 퍼져나가는 향유중의 향유, 순 나르드 향유를 한 근이나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부어드립니다.

 

이 여인의 행동을 묵상하면서 "나는 과연 무엇을 예수님께 봉헌하고 있나? 내가 예수님께 드릴 가장 값진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부끄럽게도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참으로 서글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인처럼 경제적 능력이 있어서 값진 향유를 가진 것도 아니고, 이렇다할 능력을 지닌 것도 아닙니다. 부끄럽고 비참했습니다.

 

그런 부끄러움에 젖어있던 순간, 마을버스에서 "어디 다친 데는 없수?"하고 저를 위해 걱정해 주시던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우리같이 빽없고 가진 것 없는 수도자들에게는 시간이 돈이 아니겠는가? 이웃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일이 바로 가장 큰 봉헌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겨워하는 아이에게 다가가서 한번이라도 더 등을 두드려주는 일, 임종의 고통에 괴로워하고 있는 환자 옆에 앉아 조용히 묵주기도 한번 바치는 일, 큰 과오나 실패로 방황하고 있는 사람에게 "힘내세요, 제가 기도할께요" 하고 위로하는 일, 이런 일들이 또 다른 순 나르드 향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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