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인, 왜 쉽게 풀어주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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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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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법] 혼인, 왜 쉽게 풀어주지 않나요?
“천주교에서는 왜 혼인을 쉽게 풀어주지 않나요?”라는 질문은 ‘혼인무효소송’을 진행하거나, 준비하는 분들이 많이 합니다.
이 질문에는 두 가지로 답변을 할 수 있는데, 우선 ‘교회법적 절차’입니다. 교회가 아닌 사회에서도 ‘이혼소송’ 이외에 ‘혼인무효소송’이 존재하는데, 이 둘은 명백히 다른 소송입니다. ‘이혼’은 양측 모두 이전의 ‘혼인’이 존재함을 인정하나 현재는 그 혼인 관계가 끝났음을 법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혼인무효’는 적어도 한쪽이 이전에 있었던 혼인을 ‘유효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혼인’이라고 주장하고, 그 혼인이 무효라는 것을 밝히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혼인무효소송’이 진행되고 ‘혼인무효’가 선언되면, 말 그대로 이전의 혼인이 없었던 것이 됩니다. 따라서 첫 번째 대답으로, ‘혼인이 무효라는 것(유효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혼인)을 증명하는 소송이기 때문’에 쉽게 ‘혼인을 풀어주지 않는다.’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혼인이 무효라는 증거는 제시하지 않으면서, ‘왜 무효로 해주지 않느냐?’라고 묻습니다. 이혼했다는 것(이혼의 사유)만으로 혼인무효의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혼’은 역설적으로 양쪽 당사자가 그 혼인이 유효하게 이루어졌었던 혼인이었다고 인정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법적인 답변보다도 더 근본적인 것은 혼인이 ‘성사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답변입니다. 혼인성사를 거행했다면 부부는 말 그대로 ‘성사’ 안에서 부부로서 하느님의 성사 은총 안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관면혼 역시 성사에 준하는 예식을 거행하고 교회가 인정한 혼인 상태에 머물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혼인을 해소하기 어려운 이유를 다른 성사와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간단해집니다. 어떤 분이 세례성사를 받고 살다가 어느 순간 더는 신자로 살아갈 수 없게 된 경우, 그분이 ‘세례를 없었던 것으로 해주세요.’라고 하면 쉽게 해줄 수 있을까요? 또 어떤 사람이 중죄를 고백하고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를 받았는데, 그것을 없었던 것(무효)으로 해달라고 한다면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요? 아마도 대부분 세례성사나 고해성사와 같은 다른 성사에 대해서는 ‘무효로 할 수 없다.’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왜 혼인성사는 무효로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넘어서, ‘빠르게’ 무효로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혼인성사 역시 칠성사의 하나로 엄연한 ‘성사’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사’이기 때문에 쉽고 빠르게 해소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2024년 12월 15일(다해)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수원주보 4면, 윤영민 요셉 신부(교구 법원 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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