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음악 속의 하느님: 알레그리의 미세레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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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1-08-21 | 조회수3,339 | 추천수1 | |
[음악 속의 하느님] 알레그리의 ‘미세레레’
‘영혼을 맑게 해주는 음악’, ‘사람이 내는 소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는 찬사와 함께 너무도 고귀하고 아름다워 교황께서도 숨기고 싶었다는 음악, 알레그리의 ‘Miserere’는 다윗의 참회시 시편 51편에 곡을 붙인 것으로, 전통적으로 교황청에서 성주간 금요일에 ‘테네브레(Tenebrae)’라는 예식에서 부르는 노래이다.
테네브레
라틴어로 ‘어둠’이라는 뜻의 이 테네브레는 제단에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촛불을 비롯해 다른 여러 개의 촛불을 켜놓고 시편과 애가, 그리스도의 수난 복음 등을 읽으면서 차례로 촛불을 꺼나가다가(그리스도의 죽음 상징) 마지막 촛불 하나가 남으면 교황은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다. 이때 미세레레 노래 속에 마지막 촛불이 꺼지고 이 예식은 완전한 어둠 속에서 마무리 된다. 이 테네브레에서는 보통 단선율로 노래하였는데, 알레그리의 미세레레는 특별히 성금요일의 테네브레를 위해 작곡한 것이다.
속세의 절규를 지고지순의 아름다움으로
오래전 30대 중반쯤 이 곡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이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다성음악에 눈을 뜬 첫 경험이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지금도 이 음악을 들으면 여지없이 온몸에 소름이 돋고 뜨거운 눈물이 쏟아지는데 이 음악이 지닌 묘한 힘이 아닐 수 없다.
미세레레는 연주 시간이 약 10여 분이 넘는 긴 9성부 무반주 다성음악(Polyphony)이다. 9성부이기는 하지만 단성과 다성의 교창 형태로 같은 부분이 다섯 번이나 반복되고, 팔소보르도네(falsobordone) 기법을 주로 사용한 화성적 합창 등은 비교적 단순한 진행이어서 이해하는 데 그리 어려운 곡은 아니다. 지금의 화답송처럼 시편 51편을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노래하는데, 한 부분이 5성(SSATB) 합창 - 낭창 찬트 - 4성(SATB) 솔로 그룹 - 낭창 찬트 순으로 교창되며 이것이 네 번 반복되다가 마지막에 합창과 솔로 그룹이 함께 노래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알레그리(Gregorio Allegri, 1582-1652년)는 소년 성가대원을 거쳐 교황청 합창단에서 활동하였고 교황 우르바노 8세(1623-1644년 재위)가 발탁하여 뒷날 교황청 음악악장이 되었다. 주로 팔레스트리나의 다성음악 형식과 팔소보르도네 형식의 곡을 남겼는데 1640년경 작곡된 미세레레는 후자로 100년 이상을 교황청 성당에서만 연주하였다. 그러나 시스티나 성당을 방문한 14세의 모차르트가 단 한 번 듣고 암보하여 악보로 옮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곡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누가 들어도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소프라노 솔로의 높은음(High C)이 아닐까 싶다. 여성이 금지되었던 당시 교회음악에서 이처럼 높은음이 사용된 것은 뛰어난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성)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데, 교황청의 비곡(秘曲)이었던 만큼 이 음악에 대한 자료가 흔치 않아 원작가의 정확한 작곡 의도를 알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 음악을 듣다보면 낭창(단성)과 다성 선율의 대비가 마치 오페라에서 레체타티보와 아리아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5성과 4성이 주고받는 합창은 신과 인간이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땅에서 죄를 고하는 소리(5성부), 하늘에서 은총이 내리는 소리(4성부 솔로 그룹), 또 소프라노 솔로의 하늘을 찌를 듯한 완벽한 초고음은 얼핏 천상의 소리같이 들리지만 깊이 들어보면 오히려 하느님 앞에 엎드려 절규하는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신앙 고백이 들려온다.
실제로 다윗은 성경에서 가장 인간적이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로 묘사된다. 항상 하느님과 동행하며 살았던 그도 한순간의 유혹에 무너져 밧세바를 탐하여 우리야를 전장으로 쫓아 죽게 만들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해 죄를 은폐하려 한다. 이때 예언자 나탄이 나타나 가난한 자의 어린양의 비유로 그의 죄를 지적하자 다윗은 겸손하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느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참회하는데, 그 참회시가 바로 이 시편 51편이다.
몇 해 전에는 가톨릭 성음악 행사에서 어느 합창단이 연주하는 것을 보았는데, 합창단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 제단과 2층 발코니에서 노래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르간 연주 외에는 획일적인 무대 연주만 보아왔던 터라 갑자기 2층 발코니에서 울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저절로 고개가 2층으로 돌려졌다.
성전의 울림과 함께 비브라토(진동음) 하나 없이 깨끗하고 투명한 천상의 노래는 시스티나 성당의 미켈란젤로의 벽화 ‘천지창조’가 생각났다. 어떤 이는 이토록 아름다운 천상음악이 정작은 속세의 죄악을 다루고 있다 하여 아이러니라고 말하지만,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많다.’(로마 5,20)는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참회하는 인간의 모습이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이 음악은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 음악은 속세의 절규를 지고지순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어둔 밤’을 ‘정화’라고 불렀다. 그래서인지 이 음악은 눈을 지그시 감고 들어야 제대로 들린다. 어둠 속에서 제단 앞에 엎드려 기도하시는 교황님, 침상에 엎드려 눈물로 회개하던 다윗, 그리고 Miserere Mei, Deus, 음악이 된 말씀은 시공을 초월해 십자가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죄인들을 용서하신 예수께 다다른다.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를 씻어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지리이다“(시편 51,3. 9).
* 최현숙 사비나 - 전주 삼천동본당 글로리아 성가대 지휘자. 전주교구 인터넷 방송 ‘성음악 산책’을 진행했으며, 인보성체수도회 교회음악원에 출강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1년 7월호, 최현숙 사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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