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회음악 산책23: 조스캥 데프레의 미사 빤제 린과(Missa Pange Linqu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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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1-12 | 조회수2,592 | 추천수3 | |
[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23) 조스캥 데프레의‘미사 빤제 린과(Missa Pange Linqua)’ “그레고리오 성가를 주제로 한 판타지”
- '미사 빤제 린과'의 악보.
그레고리오 성가(Cantus Gregoria nus)의 바탕 위에 발전해 온 가톨릭 교회음악 안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다성음악(Polyphonia)이다. 이미 9세기부터 싹트기 시작한 다성음악의 초기 형태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에 옥타브 혹은 5도나 4도 관계의 음들을 덧붙임으로써 음향적 효과를 유도한 오르가눔(Organum)이다.
이렇게 단순한 형태로 시작한 다성음악은 교회 전례 안에서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여 15~16세기에는 최고의 절정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 시기의 음악을 ‘르네상스 다성음악’이라고 한다.
15세기 초 영국 음악이 대륙으로 전해지면서 초기에는 플랑드르 지방 즉 오늘날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다가 점차로 이탈리아 로마로 중심지가 옮겨졌고, 로마에서 교육받은 음악가들이 고향인 스페인이나 베네치아에서 계속적으로 다성음악의 새로운 전통을 이어갔다.
조스캥 데프레(Josquin Despres, 약 1440~1521)는 플랑드르 악파의 대표적인 음악가로서 조스캥(Josquin)은 요세(Josse) 즉 요셉(Joseph)의 애칭이고 데프레(Despres)는 Desprez 혹은 Dupre 또 라틴어로는 프라텐시스(Pratensis)라고도 한다.
그의 일생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비교적 적다. 그는 1440년경 북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1474년 후에 이탈리아 밀라노의 귀족 스포르차(Sforza)의 궁내 성당에, 또 1478~1494년에는 로마교황청 성가대 가수로, 그리고 1495~1499년에는 캉브레(Cambrai) 대성당 지휘자로 활동했다.
1501년부터는 프랑스 루이 12세(Louis XII, 1498~1515 재위)의 궁정에서 일했으며, 1503년에는 페라라의 에르콜레 데스테 1세(Ercole d’Este I) 공작 궁정의 성가대장으로 임명됐으나 얼마 후 자신의 고향 지역인 프랑스의 콩데(Conde)로 돌아갔다.
데프레는 ‘시대의 최고의 천재’, ‘음악의 거장’ 혹은 ‘음악에 있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혹은 미켈란젤로’라고 불릴 정도로 자신의 음악적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가 죽은 몇 해 후 마르틴 루터는 데프레를 가리켜 “조스캥은 음들의 주인이다. 음들은 그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다른 음악가들은 음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 준다”라는 극찬을 남겼다.
20~30곡의 미사곡, 4권의 모테트 그리고 세속 음악 등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대표적인 곡은 ‘미사 빤제 린과(Missa Pange Lingua)’다. 이 미사곡은 아마도 그의 마지막 미사곡으로 추정되며, 생애의 마지막 7년 안에 작곡되었으며, 출판은 그가 죽은 후 1539년 되었을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도 그레고리오 성가 중 ‘그리스도 성체성혈 대축일’을 위한 찬미가인 ‘Pange Lingua’의 멜로디를 음악적 주제로 하는 ‘Missa Pange Lingua’는 특히 주제 선율을 변용(Paraphrase)하여 각 성부에서 모두 노래하는 모방(Imitation) 기법으로 작곡되었다.
즉 ‘Pange Lingua’ 라는 음악적 멜로디의 사용을 통하여 우선적으로 음악적으로 충분한 공간을 마련하고, 나아가 각 성부가 주체적으로 발전됨으로써 이 음악적 공간을 자유롭게 완성시켜 나간다.
이에 이 곡을 ‘그레고리오 성가를 주제로 한 판타지’(Fantasie ueber eine gregorianische Melodie)로 일컬으며, 그의 이러한 음악적 ‘모방기법’(Imitationstechnik)은 후기 르네상스의 음악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또한 당대의 다른 작곡가들은 음향적으로 충분한 효과를 얻기 위하여 5성부 혹은 6성부의 목소리를 필요로 하였지만, 조스캥은 4성부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멜로디를 창조해냈다. [최호영 신부(가톨릭대 성심교정 음악과 교수)]
Tip
15세기 플랑드르 지방의 황제와 귀족, 시민 등은 예술을 열렬히 후원하고 보호하는데 큰 관심을 두었다. 덕분에 이 지역에서는 루벤스와 반 아이크, 보슈 등 미술사에서도 찬란한 빛을 발한 인물들이 배출됐고 음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플랑드르 악파의 활동은 특히 교회음악 안에서 활짝 피어났고, 그들의 음악적 기법은 전 유럽에 퍼져 한세기 이상 유럽음악을 지배했다. 조스캥 데프레가 활동했던 캉브레 대성당도 유명 가수를 양성하는 곳으로 국제적인 명성이 자자했던 곳이다. 또 1500년대 들어서 활자로 악보인쇄를 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 짧은 시간 내 유럽 전 지역에 악보가 보급됐으며 덕분에 플랑드르 작곡가들의 작품도 널리 알려졌다.
앞서 ‘…교회음악 산책’에서 살펴본 대로 데프레는 르네상스 전 기간을 통해 활동한 작곡가들 중에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평가된다. 데프레의 샹송과 미사곡은 클래식을 그리 즐기지 않는 이들에게도 익숙하리만치 자주 연주되는 곡으로 꼽힌다. 그의 미사곡 음반은 지난 1995년, 영국의 음악 평론지 그라모폰이 창립 70주년을 맞아 선정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클래식 레코딩 100선에도 포함된 바 있다.
그러한 미사곡 중 하나인 ‘미사 빤제 린과(Missa Pange Lingua)’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르네상스 음악 연주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탈리스 스콜라스(Tallis Scholars)’ 아카펠라 앙상블과 지휘자 피터 필립스의 연주 음반(Gimell, 2006년)을 추천한다. 탈리스 스콜라스는 영국 10인조 혼성 아카펠라 앙상블로 내한 공연도 수차례 가져왔다.
매년 전 세계 성지와 콘서트홀 등을 찾아 순회공연을 하는 탈리스 스콜라스는 르네상스 시대 음악의 아름답고 경이로운 곡을 완벽에 가깝게 연주하는 이들로 평가받는다. 이 앙상블의 설립자이자 음악감독 겸 지휘자인 피터 필립스도 일생을 르네상스 교회음악 연구와 연주에 공헌한 인물로, 주로 다성음악을 전문적으로 지휘해왔다. [가톨릭신문, 2009년 1월 11일, 주정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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