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도쿄]세끼구찌 주교좌성당[일본어]미사참례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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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건정 | 작성일2001-03-27 | 조회수1,198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도쿄 세끼구찌 주교좌 성당[일본어]미사참례기
성가 가족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일본 동경에 날아가 동경 교구 주교좌 성당인 세끼구찌(關口)대성당에서 미사에 참례하며 전례 성가를 관찰한 소감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의 미사 전례 성가 순례를 위하여 지난 3월 23일 금요일에 출국하여 주일미사 두 대(10시 일본인 미사 및 12시 한국인 미사)에 참례하고 26일 월요일에 귀국했습니다.
1. 들어가며
저는 오래 전부터 일본의 가톨릭 역사와 전례성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일본의 가톨릭 세력은 매우 미약 합니다. 인구가 약 1.2억 이라지만 총 44만명으로 우리나라 신자의 10% 정도입니다. 저의 관심 초점은 왜? 그런가? 하는 것 입니다.
일본인은 우리나라 보다 가톨릭을 일찍 받아들였습니다. 한국이 1784년부터 올 해까지 217년의 역사를 지닌데 비하여 일본은 이미 1549년 에 유명한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에 의하여 싹을 심었고 1592년에 벌써 신자 수 약 30만명이었습니다. 올 해로 선교 452년입니다.
임진왜란 때 소서행장이 비록 왜적이긴하나 스페인 출신 군종신부를 대동하고 진해웅천에서 진중 미사를 봉헌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고증은 없는 듯 하고 가등청정이 진군한 마을이 쑥 밭이 된데 비하여 소서행장의 진군 마을은 비교적 온화했다고 합니다. 그 유명한 오-따 쥬리아 성녀는 소서행장이 데리고 간 한국인 양녀이지요.
문헌을 연구해 보니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인은 선교 방식에 있어서 민중 선교 보다 지도자 즉 지방 토호 세력인 영주를 영세시켜서 그 백성 모두를 집단 개종 시키는 방법을 택한 것 같고 그러다 보니 그 영주가 몰락하면 잔혹한 박해로 이어져서 약 5만 명의 치명자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 보다 두 배 이상이나 많은 수 입니다. 게다가 파이프 오르간 보유 수나 교회관련 저술 활동은 더 활발한 듯합니다.
풍신수길 이후에 들어선 막부에서도 정치적인 이유(반란 우려)로 승려로 하여금 신부와 신자를 색출하는 권한을 주고 모든 백성은 절에 주민 등록을 하도록 했으니 숨 쉴 곳이 없었겠지요... 결국 약 250년간 신자가 전멸한 동토의 땅, 즉 잠재 교회가 된 것이고 1865년에 문호 개방으로 불란서 신부가 입국하면서 비로소 부활의 교회가 된 것입니다. 이 현상을 보며 북한에도 아직 잠재신자가 있을 수 있겠구나...하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그런데 일본인은 신도(神道)라는 종교와 불교가 둘이 아니고 하나인 듯합니다. 인구 수 보다 신자 수가 많은데 두 가지 모두를 신앙이라고 하며 좋을대로 믿고 삽니다. 마치 많은 한국인이 종교와 관계없이 조상을 기리는 차례를 지내지만 유교신자가 아니 듯이 이들도 그렇습니다. 왜정 때 우리나라의 조선교구장도 일본인 주교가 맡았다가 노기남 주교님이 최초로 교구장이 되셨습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일본 성가책, 공교성가집(소화 8년/1934년)은 포켓 용인데 한국에서 사용된 책이며 단성부의 코랄풍과 천사미사곡(그레고리오 성가)가 있고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노래도 있습니다. 즉 전례음악을 아는 한국 신자에게는 친숙한 성가책입니다.
너무 장황하게 일본 역사 얘기로 흐른 것 같군요. 본론에 들어 갑니다.
2. 토쿄 가테도라루(Cathedral, 대사교좌) 성 마리아 대성당 풍경
-일본은 신자 수 약 44만 4천여명인데 성당 수 818개에 사제 수는 1760명으로 많다. 동경교구는 신자 수 약 85,500여명이고 성당 수 79개에 사제 84명이니 우리나라에 비하면 신자 수는 적고 사제 수 비율은 매우 높은 편이다. 외국인 수사와 신부도 많다. 신학교도 두 개나 된다.
성당 이름은 제목에서와 같이 세끼구찌에 있는 대사교좌 성당이다. 동경에서도 부촌으로 알려진 고지대에 위치를 잘 잡아서 그 옛날 탁견을 가지고 부지를 선정한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일본인들은 택시기사 조차도 성당을 잘 모르고 성당 앞에 있는 춘짠소(춘산장) 이라는 고급 예식장을 물어야 쉽다. 성당과 마주 보고 있다.
널직-하고 시원한데 아무리 보아도 성당 같지 아니하고 현대식 건물이다. 하늘에서 보면 십자가 형상이지만 땅에서 보면 모양을 가름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종탑은 본당과 별도로 분리되어 있는데 작은 종 4개가 수직으로 달려있는것이 특이하다. 본당의 최고 높이는 약 40 미터로 높은 편이다(명동 대성당은 약 49미터).
1964년에 낙성식(축성)을 했고 본당 내부 입구에는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흉상이 있다. 입구에서 볼 때 전면 제대 위에 단순한 대형 십자가가 걸려있고(고상이 아님) 견고한 제대가 있다. 그 앞에 간이 제대가 또 있는데 여기에서 집전한다. 독서대(강론대)가 왼 쪽에 있고 단하 오른 쪽에 해설대가 높게 설치되어 있다. 성가대석이 오른 쪽에 약 40석 있고 전자 오르간이 놓여 있다. 지휘자는 미사 때 성가대를 지휘하기 보다 신자를 대상으로 지휘한다. 교회에서 규정하고 있는 (전례헌장)에 충실한 배치이다.
성가대는 원래 2층에 설치되어 있고 성가대석 중앙에 중형 파이프 오르간이 위용을 자랑한다. 스톱 수 48개이고 홀랜드 베르쉬에렌 제품이다. 그러나 2층은 폐쇄되어 있다. 대축일 때만 쓰는 모양이다. 1층의 전자 오르간도 3단 건반에 스톱 수 65개인 홀랜드 제품(모델 오푸스 540)이다. 당연히 일제인 줄 알았는데......(홀랜드와 인연이 있는 듯 하다) 일본 사목자들이 경음악 연주용 오르간과 교회용 오르간의 차이를 잘 안다는 뜻도 된다.
본당은 바닥은 넓고 천장은 좁은 삼각 구조이다. 천장이 약 20미터 정도로 높고 벽은 콘크리트 이고 바닥은 대리석이라서 공명이 너무 잘되어 탈이다. 즉 대형 목욕탕 같은 음향 효과가 나는데다가 마이크를 쓰니 노래방에서 에코 기능을 넣고 부르는 노래를 듣는 듯하여 유감이다. 한마디로 울린다.
콘크리트 벽은 원래 색깔 그대로 이다. 그러니 시멘트가 많이 들어간 부분과 덜 들어간 부분이 얼룩이 졌고 색상도 칙칙하다. 우리나라 같으면 흰색 페인트로 칠하든가 원목으로 덧 씌웠을 것이다. 실용주위를 지향하는 일본인 답다고 느꼈다. 14처 표시도 아무런 성화나 형상화 한 조각이 없이 손바닥만한 십자가에 번호만 적어 두었다. 한마디로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모습은 전혀 없다.
좌석 수는 약 600석인데 사방 여유가 많다. 우리나라 같으면 400석은 더 놓겠다. 모든 의자에는 고정식 무릅틀이 붙어있는데 미사 때 보니 무룹 꿇는 이는 거의 없고 여자들도 미사보를 쓴 사람은 손 꼽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학생미사나 청년 미사가 따로 없으므로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 이렇게 3대가 함께 미사를 봉헌하므로 연령층이 다양하다. 오늘은 지난 주에 사제품을 받은 사또 신부의 첫 미사라서 신자 수가 평소보다 2-3배 많이 나왔다는데 약 400명 정도이다.
-일본인의 미사 미사 전례성가를 이해하려면 성가책이 필요하여 성물 판매소에서 성가책 두 권을 샀다. 전례성가(일반용)은 455곡이 수록된 책이고 가토릭꾸 전례성가집 은 101곡이 수록된 책이다. 두 권에 우리돈 약 3만 5천원이다. 매우 비싼 편....
10시가 되자 미사가 시작되었다. 이제부터 편의상 일본 전례용어를 쓰기로 한다.
입제의 가(歌) 주임사제와 새 신부 등 4명이 입당하는 동안 다같이 시편창을 제창한다. 그레고리오 성가 풍이지만 일본인의 작품인 듯 하다. 성가대 지휘자 40대 남자이고 반주자는 30대 여성으로 보인다. 20여명의 성가대원은 모두 노인이다. 할머니가 압도적으로 많다. 자연히 기력이 없고 회중의 제창을 돕는 개념이다. 게다가 마이크 소리가 울린다. 지휘자는 회중을 향하여 바라보고 지휘한다.
자비의 찬가- 라 장조인데 박자표시는 없다. 즉 시편창 형식의 현대 곡인데 일본 고유의 노래처럼 음이 서서히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쉬운 형식이다. 제창으로 한다. 영광의 찬가는 사순주일이므로 당연히 안한다.
집회기원-C 해의 미사 경문이다. 일본어를 못 알아들으니 주보와 눈치로 짐작한다. 제1낭독-료수아기(여호수아)를 여성이 먼저 여학생 복사의 호위를 받아 독서대에서 낭독한다.
답변시편-성가대는 일어서서, 그리고 신자는 앉아서 시편 성가를 부른다. 마침 옆에 젊은 일본 수녀 한 분이 앉아 노래를 잘 부르니 좋다. 가끔 앨토화음을 넣어 부른다. 노래의 뜻은 우리 복음과 같고 한문이 많이 섞여서 이해 하겠다. 성가대는 일어서서 노래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2낭독 -사도 바오로의 고린도의 교회의 수지(편지) 남성이 역시 여학생 복사2명의 호위를 받고 나와서 낭독을 한다. 우리나라는 남성이 먼저하는데 여기서는 반대이다.
영창-복음환호송을 다 같이 노래하는데 매우 쉬운 곡이 주보에 인쇄되어 있다. 다장조에 미------미레 미레미...로 2도 로 된 곡이니 얼마나 쉬운가? 복음낭독-새신부가 닝독하고 강론을 한다. 봉납기원-봉헌 기도를 하고 봉헌을 하는데 유치원 여아들이 복 주머니 같은 헌금 자루를 들고 앞 줄부터 모금한다. 얼핏 보니 헌금을 안 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의무적으로 행렬에 나가고 헌금하는 우리와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 때 성가대가 성가책에 있는 곡을 노래한다. 혼성4부 성가인 듯 한데 거의 단부로 들린다.
감사의 찬가- 거룩하시도다를 다함께 노래. 맨 끝에 호산나...하는 가사를 알겠다. 신앙선언 -신경을 다함께... 아멘- 사제의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에 바로 아-멘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고 앞에 긴 노래가 있다.
평화의 찬가- 하느님의 어린양 이다.
[위에 기술된 ~찬가라는 이름이 한국 개신교 책에, 미사 소개에 무분별하게 쓰인다. 교회음악을 쓰면서 가톨릭 책(교회 전례음악 같은 책)을 인용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지 일본 가톨릭 책을 베끼다 보니 거룩하시도다가 감사의 찬가로 둔갑한다. 한국의 어떤 가톨릭 합창단 싸이트에서도 이런 용어를 써서 개인적으로 혼 내 준 바 있다 (사족)]
배령의 가(歌)-성체성가이다. 영성체송은 배령창 이라고 한다. 전례성가책에 있는 노래인데 제목을 보니 "언제나 기쁘게 사십시오" 라는 노래이다. 우리 상식으로는 성체 훔숭 노래라야 할 터인데 선곡이 이상하다.
퇴장성가- 성령에 관한 노래이다.
오르간은 소리가 드러나지 않게 반주하는 스타일이었다. 이렇다할 특색이 없다. 별도의 스피커와 연결이 안되고 내장 스피커만 쓰니 뒤에는 안 들리겠다.
3. 일본인 미사를 마치고
미사는 약 1시간 5분 정도 걸렸다. 일본 도-쿄 주교좌 성당은 단일 성당으로는 아미 가장 큰 성당인 듯 하다. 그런데도 한국 소도시의 작은 본당 같은 운영을 하는 것 처럼 보인다. 주교좌 대성당이 크고 실용적이지만 아름다운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전례성가는 옛날 공교 성가풍을 일소하고 일본식으로 거의 토착화했다. 1970년 말부터 전국적으로 작곡, 작사를 공모하여 약 556곡이 시편 성가 풍으로 정착되었다. 여기에는 약 30 명의 일본인 작곡, 작사자가 참여했다.
노래는 모두 단조에 느린 장례미사 노래 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것이 일본 민요에 근거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일본 국가도 그레고리오 성가 풍임]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도 통일 성가집으로 통일은 했지만 불과 서너명의 작곡자 곡 이외에는 거의 프랑스, 독일 성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고유의 성가라고 할 수 있는 "천주가사" 가 소멸된 데 대하여 아쉽기 그지 없다. 복원할 방법이 없을지......
성가대 운영은 실력은 높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전례적으로 하는 모양새를 갖추었다.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도시의 성가대는 실력면에서는 특A급이다.
4. 후기
이번 일본 도쿄 전례 성가순례는 ....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시간과 건강과 재력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특히 도쿄에 사는 성음악 가족인 김상호 토마스 아퀴나스 형제와 부인 신 스콜라 스티카 자매 부부에게 감사드립니다. 유창한 영어와 일본어 실력을 가지고 귀한 시간을 할애하여 기쁜 마음으로 안내하고 온갖 편의를 제공하여 주었습니다. 어느 혈육인들 이렇게 하겠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머지 않아 귀국하신다고 하니 보은의 기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12시 한인 미사는 2편으로 곧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김빠뜨리시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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