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헨델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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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용호 | 작성일2001-05-17 | 조회수719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이 글은 아마뚜스합창단의 " 신문교의 몽당연필"에 올려진 글입니다..(http://amatus.com.ne.kr)
[헨델 이야기] Georg Friedrich Handel(1685.2.23 독일할레 ~ 1759.4.14 영국런던)
작곡가 <헨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악이 오라토리오<메시아>중 <알렐루야 코러스>이다. 이 곡은 초연당시 임석 중이던 영국 왕 조지 2세가 감격한 나머지 기립하였다고 해서 더욱 유명하다. 이번 부활대축일 에도 많은 성가단 에서 헨델의 알렐루야를 우렁차게 불렀을 것으로 짐작된다.
헨델은 이 곡뿐만 아니라 수많은 오라토리오, 성음악과 오페라를 작곡하여 요한 세바스찬 바하와 함께 고전음악의 어버이로 칭송되는 작곡가이다. 바하가 두 번 결혼하여 무려 20명의 자녀를 낳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헨델은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남긴 불후의 명곡들과 독신생활 등으로 미루어 헨델이 수도자와 다름없는 청정하고 성스러운 일생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천만의 말씀이다. 헨델의 전기를 살펴보면 그는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일생을 산 흔적이 역력하다.
헨델은 J.S.바하와 같은 해에 독일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부계나 모계 어느 쪽에도 음악가라고는 없었다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그는 청년시절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자유로운 생활을 즐겼는데 그가 독신이었다는 것은 한번도 <정식결혼>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의 호방한 성격이나 인기도로 미루어 <여성관계>도 매우 복잡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그는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비밀 관리가 매우 엄격하여 후대에 전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점은 천하의 바람둥이들이 본받아 마땅한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
헨델은 뛰어난 작곡 능력을 지녔음에도 흥행을 위하여 남의 작품을 슬쩍 표절하는 일도 있었고 흥행에 성공하여 큰 돈을 벌었는가하면 어느새 도박에 빠져서 빈털터리가 되기도 했다. 헨델은 성격이 과격하여 싸움도 자주 했는데 한 번은 그의 친구 마테존과 오페라 리허설 도중에 칼싸움이 벌어져 마테존의 예리한 칼날이 헨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천우신조! 칼날은 헨델의 조끼에 달린 쇠단추에 부딪쳐 칼끝이 부러져 나갔다. 만약 그 때 칼날이 조금만 빗나갔어도 지금 우리는 저 유명한 <알렐루야>를 부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이 일어난 다음부터 친구 요한 마테존과의 우정은 더욱 깊어져 평생의 악우(樂友)로 지냈다 한다.
헨델은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오페라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화가 나서 영국으로 귀화했다. 그 때문에 그의 독일식 이름은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인데, 영국식으로 죠지 프레데릭 한델(George Fredric Handel)로 바꾸었다. 다만 그의 성(姓)만은 한델로 하지 말고 독일식대로 헨델로 불러달라고 하였다니 조상에게 약간은 미안했었나 보다. 그러나 요즘에는 처음 독일식대로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헨델은 이처럼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살았지만 74세의 장수를 누리고 영국인이 최고의 명예로 여기는 웨스트민스터 성당 묘지에 잠들었다.
헨델의 일생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의 처지나 신앙생활이 완전하지 못하다고 해서 걱정할 일이 조금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맡겨진 사명대로 열심히 살다 보면 필경에는 헨델처럼 위대한 이름을 후세에 남길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친애하는 성가단원들이여! 특히 남성단원들이여! 헨델을 본받아 성가도 열심히 부르고, 술도 열심히 마시고, 인생도 열심히 즐기고.... 가만있자...아무리 그래도 여성편력은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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