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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류대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1-09-22 조회수925 추천수10 반대(0) 신고

+찬미 예수님!

가톨릭 굿뉴우스~~~~자유 게시판 에서 통째로 퍼온글 입니다.안면도 성당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 후 소식이 없던차에 이 글이 있길래 퍼 왔습니다.

 

게시자: 지요하(jiyoha) 파이프오르간의 선율 속에서 조화의 세계를 꿈꾸며

게시일: 2001-09-22 08:51:55

본문크기: 24 K bytes 번호: 24606 조회/추천: 25/2

주제어: 서로를 인정하는 조화로운 세상

 

 

           파이프오르간의 선율 속에서 조화의 세계를 꿈꾸며

 

 나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대중 가요에서부터 클래식까지 모든 음악을 고루 좋아합니다. 흘러간 옛 노래를 듣다가 눈물이 핑 돈 적들도 있고, 베토벤의 「운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습니다.

 

 나는 모든 음악가들을 존경하고 부러워합니다. 성악가의 노래를 듣다보면 그가 얄미울 정도로 부럽고, 연주가의 연주 모습을 보면 그가 한없이 부럽습니다. 또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의 모습을 보노라면 그가 너무도 멋있게 보이고 부러워서, 내가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꼭 음악 지휘자가 되겠다는 생각도 하곤 합니다.

 

 5공 시절 얼치기 국회의원 조상현이라는 이가 "음대생과 미대생들은 세상을 낙천적으로 보고 낭만적으로 살기 때문에 반정부 시위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고 한 말을 상기하면 긴가 민가 싶은 눈으로 음악인들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음악과 모든 음악인들을 사랑합니다.

 

내 주변에는 벼슬아치 친구도 있고, 수백 억 재산을 가진 친구도 있고, 달랑 불알 하나만을  가지고 돈 많은 여자들 속에서 주유(周遊) 천하하며 살아온 친구도 있지만,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쪽은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친구입니다. 그저 기타 줄 하나라도 퉁길 줄 아는 친구가 나는 가장 부럽습니다.

 

 내가 나이 마흔에 결혼하여 얻은 두 아이를 한사코 피아노 학원에 보내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조상현의 시각이 결부되는 차원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되겠지만, 악기 하나라도 곁에 두고 다루며 산다면 세상 사는 일이 좀더 수월하거나 윤택해지리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은 집에서 종종 아이들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 재미도 여간이 아닌 듯싶습니다.

 

  내가 이 나이에 이르도록 악기 하나도 다룰 줄 모른다는 것은, 타고난 음악 방면의 재주가 전혀 없다는 것과 그쪽으로는 너무도 소극적으로 살아온 내 게으름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할 터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음악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시 읊기와 함께 노래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음악 행위는 노래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노래를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노래 소질 역시 전혀 타고나지를 못했습니다. 보통 솜씨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입니다. 마누라는 그런 나를 일컬어 ’부분음치’라고 합니다. 부분음치라는 말의 뜻이며 내 노래 실력을 잘 자각하고 있는 나로서는 승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부분 음치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태안천주교회 ’세실리아 성가대’의 베이스 조장으로 말입니다. 오십이 훌렁 넘은 이 나이에도, 벌써 7년째 성가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거지요.

 

 나는 매주 금요일 저녁미사 후의 성가 연습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나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닌, 여럿이 함께 하는 그 연습이 참으로 즐겁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내가 맡은 베이스 음을 연습하는 것이기도 하면서 ’화음’을 연습하는 것이기에, 다시 말해 화음의 성취를 목적하는 일이기에 그것은 내게 각별한 의미를 안겨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부분음치로서의 내 한계를 잘 알기에 누구보다도 연습에 열중합니다. 우선은 연습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기보다는 기여를 하기 위해 때로는 집에서 딸의 도움을 받아가며 개인 연습도 합니다.

 

 예수부활대축일이나 예수성탄대축일 때 부르기 위해 참으로 어려운 노래를 연습할 때는 이걸 과연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고 되우 고생스럽기도 하지만, 차츰 발전을 해서 마침내 화음의 완성에 도달하게 될 때는 실로 가슴 뿌듯한 성취감과 희열을 맛보게 됩니다. 아, 그 성취감과 희열의 맛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음악에 소질이 없는 나도 이제는 오르간의 4부 반주음 중에서 베이스 음을 챙겨 들을 수 있고 부분음치를 잘 극복함으로써 4부 성가 그 화음의 완성에 일조를 한다는 것이 내 희열을 배가해 주는 듯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화음의 완성과 그것에서 얻어지는 성취감이며 희열 못지 않게 연습 과정의 ’열심’이 참으로 귀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열심한 연습 과정이 있기에 화음의 완성―그 성취감과 희열이 있게 되는 것이지만, 나는 그 연습 과정의 노력 속에서 내가 지금 참으로 열심히 하느님께 기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 연습만으로도 훌륭한 기도가 된다는 것을 자각하곤 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나는 성가 연습을 단순한 노래 연습으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 자체가 훌륭한 기도임을 잘 압니다. 내가 성가 연습이라는 형태를 빌어 반복적으로 간절히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음을 느끼곤 하는 거지요.

 

 바로 그 기도 때문에, 그렇게 기도를 하기 위해서 내가 성가 연습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것이고….

 

 성가대 활동 덕분에 지난 15일(토요일) 저녁에는 안면도 성당에 가서 파이프오르간의 선율에 흠뻑 취할 수가 있었습니다. 안면도 성당에서 개최한 ’파이프오르간 봉헌연주회’에 참석했던 거지요.

 

태안교회의 공소였던 안면도 성당은 올해서야 본당이 된 대전교구의 막내둥이 교회랍니다. 대전 대동성당에 계시던 윤종관 신부님이 자원하여 지난봄에 안면 본당의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셨는데, 교구청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신설 본당이니만큼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크고 많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윤종관 신부님은 나와는 개인적으로 인연이 각별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80년대 5공 시절 해미 본당 초대 주임 신부로 계시면서 지역에서의 여러 가지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하셨던 분이지요. 황무지였던 해미 순교성지를 오늘의 모습으로 만드시느라 고생도 무척 많이 하신 분인데, 지역에서 윤 신부님과 함께 했던 의미로운 일―그 일화들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윤 신부님은 신설 본당인 안면 성당에서의 사목 활동이 여러 가지로 힘드실 텐데 (사무장도, 식복사도 없으니…) 그런 상황 속에서도 또 한가지 놀랄 만한 일을 해 내었습니다. 성당 안에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한 거지요.

 

  60평밖에 안되는 작은 성당 규모에 맞는, 한 덩어리로 된 이동식 파이프오르간이지만, 그 이름대로 음질이 썩 좋고도 신비로운 악기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안면 성당의 그 파이프오르간은 대전교구 93개 모든 본당을 통틀어 최초 유일의 악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전교구의 막내 본당이 최초로 파이프오르간을 장만했다는 얘기지요.

 

 ’안면도 성당 파이프오르간 봉헌 연주회’에 참석한 덕분에 나는 파이프오르간이 우리 가톨릭 교회의 전례로 말미암아 발전되어 온 악기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현대에 와서도 교회는 파이프오르간 외의 다른 악기를 교회 전례 시에 사용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규제하고 있다는 것도….

 

 "원칙적으로 파이프오르간만이 우리 가톨릭 교회 전례용 유일한 악기입니다. 어느 지역 교회(예: 독일어권 주교회의 산하 교회)는 전자오르간 사용을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할 뿐 모든 성당에 파이프오르간만을 구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헌장의 규정에 따라 교회는 파이프오르간이 아닌 악기를 전례에 사용하는 일은 특수한 경우에만 신중히 검토해야 합니다. 그러함에도 한국 가톨릭 교회는 그것을 거의 간과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들려 준 윤종관 신부님은 또 "한국 천주교회는 특히 국내 개신교 교회당들의 파이프오르간 설치율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음을 주지하고 본래 가톨릭 전례에서 그 가치를 발휘해 온 이 악기에 대해 무관심했던 현실을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어떤 조바심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안면 성당의 파이프오르간을 제작 설치한 마이스터 안자헌 씨와 안면도 성당 파이프오르간의 최초 연주자인 오르가니스트 박희성 씨가 개신교 신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안면도 성당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은, 인하공대를 거쳐 독일 루드비히스부르크 악기 제작학교 Meister 과정을 졸업하고, 독일 파이프오르간 제작 마이스터 국가시험에 합격한 안자헌 씨(우진악기 기술이사)의 제1호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화여대 종교음악과에서 오르간을 전공하고, 독일 뮌헨국립음악대학 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박희성 씨는 현재 서울 응암장로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활동 중인 아가씨라더군요.

 

 박희성 씨는 이날 안면도 성당의 파이프오르간으로 미사곡들을 포함한 도합 12곡을 들려  주었습니다.

 

 나는 박희성 씨의 섬세한 손가락들이 만들어 내는 파이프오르간의 아름다운 선율에 취하면서 실로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안면 성당 윤종관 신부님과 서울 응암장로교회 오르가니스트 박희성 씨가 어떻게 아는 사이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개신교 신자인 그녀가 천주교 성당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상대로 파이프오르간으로 미사곡들을 연주하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고맙고도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성전 건립 사업을 벌이고 있는 우리 태안교회 공동체의 최근의 모습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3개 건축 설계 회사에 기초 설계를 의뢰했었지요. 설계사 한 분은 천주교 신자였고, 다른 한 분은 개신교 신자였고, 나머지 한 사람은 종교를 갖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신부님과 성전건립추진위원들은 세 분의 설계사들이 가지고 온 설계도면과 모형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갑론을박을 벌인 끝에 개신교 신자 분 쪽의 설계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그 건축 설계사가 개신교 신자라는 사실을 조금도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문제삼는 말은 누구에게서도,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설계사가 자신이 개신교 신자임을 밝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했고, 천주교의 성체성사를 잘 모를 것이 분명한 그가 성체 상징을 결부시켜 성당을 원형으로 설계한 것에 대해서도 고마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감히 말하지만, 우리에게는 개신교 신자들을 ’형제’로 보는 성숙한 눈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파이프오르간의 선율 속에서 즐거운 상념들만을 떠올릴 수는 없었습니다. 우울한 상념들도 떠올라 내 뇌리에 매달리곤 했습니다.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대여섯 명의 남녀 개신교 신자들이 지나가는 스님을 에워싸고 마구 찬송가를 불러대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석탄일 행사 준비에 바쁜 조계사의 골목 어귀에 확성기를 설치한 차를 타고 온 일단의 개신교 신자들이 조계사 쪽에다 대고 예수를 믿으라고 마구 외쳐대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태안군 문화제 행사 때 ’백화산 산신제’를 개신교 신자들이 실력으로 저지하던 장면도 떠올랐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에 의해 목이 잘려진 어느 초등학교 단군상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에 의해 인분 세례를 받은 공주 교동 성당 성모상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개신교 신자가 저지른 방화로 인해 100년도 넘은 지방문화재인 서울 약현 성당이 불타고 있는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성철 스님이 아무리 훌륭한 스님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지옥의 맨 밑바닥에 가 있을 것이라고 라디오 방송에서 거리낌 없이 말하던 어느 목사님의 목소리도 떠올랐습니다.

 

 태안읍 동문리 공덕사 앞에 태안천주교회에서 걸어 드린 석탄일 축하 연등을 본 어느 개신교 신자 한 분이 끌끌 혀를 차며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저럴 수가 있을까"하고 한탄을 하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인근의 여러 불교 사찰들이 태안천주교회 정문과 구내에 걸어 준 예수 성탄 축하 현수막들을 본 개신교 신자 한 분이 "천주교회는 확실히 그리스도교가 아니다"라고 한 말도 떠올랐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님이 도올 김용옥 씨의 KBS의 ’노자 강의’ 시간에 나오셔서 "어느 종교를 믿더라도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산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라고 하신 말 때문에 수많은 개신교회들의 목사님들이 ’사탄의 말’이라고 비분강개하신 일도, KBS의 전화통들이 불이 났던 일도 떠올랐습니다.

 

 나는 50여 년을 올곧하게 신앙 생활을 해 오면서 이날 이때껏 신부님들이 강론 시간에 개신교를 비판하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교회 언론 매체에서 더러 개신교 목회자들의 천주교에 대한 무분별한 공격을 비판하는 기사는 접했어도, 개신교에 대한 선제 공격적인 기사나 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천주교의 각 교구청, 교회, 수도회, 성지, 사회복지 시설 등의 수많은 인터넷 홈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눈을 씻고 보아도 개신교를 공격하거나 비난하는 말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고맙게 느껴지는 마음도 한량없습니다.

 

 그렇지만 개신교의 간행물들을 접하거나 인터넷 홈 사이트들을 들어가 보게 되면 슬퍼지는 마음도 한량없습니다. 특히 인터넷 홈 사이트들에서는 천주교에 대한 공격과 비난이 장마철의 저수지 물처럼 넘쳐납니다. 완전히 ’범람’의 실체를 보는 듯하고, 때로는 너무도 놀라운 왜곡의 경지에 벌어진 일이 다물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공격 대상은 천주교뿐만이 아닙니다. 불교는 물론이고 세계의 이름 있는 모든 종교가 두루 공격 대상이 됩니다. 심지어는 같은 개신교끼리도 다른 교파들은 모두 이단으로 취급되기도 합니다.

 

 어느 신학대학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신다는 교수님이 시리즈로 쓰시는 글을 보니, 통일교·안식교·여호아의 증인은 물론이고, 감리교·침례교·순복음교회도 다 이단이더군요.

 

  그 조직신학 교수님이 천주교에 대해 쓰신 글 중에는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가톨릭이 융성한 나라들은 대개 미개한 나라들이거나 후진국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프로테스탄트가 강세인 나라들은 대분분 선진국이라나요.

 

  나로서는 처음 듣는 얘기가 아닙니다. 저 1970년대 유신정권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점점 커져가던 때 유신 체제를 옹호하던 일단의 지식인 무리가 있었지요. 그중의 한 명인 박희범 당시 충남대 총장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을 비난하면서 그런 얘기를 처음 했었지요. 그 사람도 개신교 신자인 것은 물론이고….

 

 그때도 나는 제멋대로 널뛰듯 할 수 있는 게 사람의 생각이라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오늘날에도 저 미개한 나라들에 가서 포교 사업을 벌이고 있는 수많은 선교사들에게 괜히 미안해지는 마음이었지요.

 

 조직신학 교수님은 개신교가 강세인 대표적인 선진국의 예로 미국을 들었습니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미국의 오만 방자한 근성 같은 것이 떠올랐습니다. 자신만이 모든 선과 정의의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독선―그것은 미국의 한 특성과도 같은 것이지요. 자신들이 설정한 선과 정의의 기준―알고 보면 그것은 자국의 이익과 패권을 추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그것을 위해 미국이 세계 곳곳에서 저질러왔고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음모와 살육 등등 온갖 파괴적인 일들을 다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요.

 

 우리 나라의 불행했던 현대사들―제주 4·3항쟁, 김구 선생을 비롯한 민족 지도자들의 암살, 6·25사변을 전후해서 벌어진 정치범들과 보도연맹에 대한 대대적인 살육,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그 사건들의 배후에는 미국의 매카시즘이 음습한 내음을 풍기고 있는 것도 영원히 어둠 속에 묻혀 있을 수만은 없는 사실이지요.

 

 나는 언젠가부터 미국의 그런 독선과 아집, 남을 인정할 줄 모르는 태도 따위가 우리 나라 일부 개신교파들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개신교가 미국에서 전래되었다는 사실에도 주목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유럽의 개신교와 미국의 개신교는 성격과 분위기가 판이하다고 합니다.

 

 유럽의 프로테스탄트는 품위가 있고 융통성이 있으며 이성적 분위기가 농후한데 반해 미국의 프로테스탄트는 영국 청교도들로부터 유래한 자신들만이 예수 그리스도 신앙의 본류(本流)이고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그 독선과 아집이 기초를 이루는 만큼 그들의 열정적인 분위기 속에는 광기와 전투적인 기운도 많이 내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거지요. 전투적인 기운 속에 파괴성이 동반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리고 5백년 역사의 프로테스탄트가 유럽에서보다 2백년 역사의 미국에서 더 많이 분파(分派)했다는 사실도 나의 주목을 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나는 개신교의 인터넷 사이트들에 들어가서 여러 목사님들과 교수님들의 천주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들을 무제한적으로 공격하는 방만한 글을 읽을 때마다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회의하지 않을 수 없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사랑’이 이 경우엔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그저 모든 것이 아득하기만 한 느낌입니다. 망망하고도 막막한 넝쿨숲을 헤매는 기분이라고 하면 너무 과격한 표현일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나라의 개신교가 그런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 일부의 행태들과는 정반대의 열린 믿음살이를 보여 주고 있는 목회자와 신자들도 참으로 많습니다.

 

 영남 지역의 어떤 목사님들은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호남 출신을 골라 사위와 며느리로 맞아들이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천주교의 해미 성지와 미리내 성지를 순례하는 개신교 신자들을 본 일이 있습니다. 수십 명, 수백 명의 개신교회 신자들이 목사님의 인솔로 천주교 성지를 순례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열린 신앙의 실체를 보는 듯한 느낌이 참으로 뿌듯하였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불교 사찰의 대웅전 앞에서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를 드리는 내가 잘 아는 한 분 목사님의 모습을 본 적도 있습니다. 보수적인 목사님이나 신자들이 보았다면 기겁을 할 일이지만….

 

 나는 저 7·80년대 민주화 운동 시절 명동성당에서 보았던 목사님들과 스님들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열리곤 했던 ’금요기도회’에서 보았던 신부님들과 스님들의 모습도 기억합니다. 정동의 성공회 성당과 새문안교회 등에서 보았던 불교 천주교 개신교 성직자들이 함께 기도하던 모습이 지금도 내 눈에 선연합니다.

 

 스님, 신부님, 목사님들이 서로를 가르지 않고 한데 어울려 기도하고 앞장섰던 그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 나라 민주화 투쟁의 참다운 요체였음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바로 그것이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를 이만큼 진전시켜 왔다고 확신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너나없이 민주화의 과실을 누리며 사는 오늘 우리는 이상한 현상을 보게 됩니다. 일부 개신교회들의 교회 밖에서의 대규모(?) 집회와 그 집회들에서의 극렬한 정부 비판과 반공 열풍(?)이 바로 그것이지요.

 

 그들은 서울 올림픽 펜싱 경기장 같은 데서 집회를 열고 ’반공’을 하나님처럼 떠받들며, 민족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추구하기 위한 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원색적으로 비난합니다. 남북 대화를 적화 통일의 전조로 치부하면서 이 나라를 사탄의 흉계에서 구해 달라고 절규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극우 세력의 대표격인 지만원이나 조갑제 등을 초빙하여 반공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극단적인 발언들을 쏟아놓게 합니다.

 

 그리하여 지만원은 김대중 대통령은 물론이고 주요 정부 당국자들을 빨갱이로 규정해 버린 다음 "이제 국가의 위기 상황 앞에서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을 배경 삼아서 일어나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김 대통령이 추진하는 통일 정책을 그냥 두고 봐서는 안 된다"고까지 기염을 토합니다.

 

 그리고 조갑제는 북한 김정일을 ’사탄’으로 규정한 다음 "남한 사회에서 개혁과 평화 통일을 주장하는 자들, 양심 세력으로 행세하는 자들은 모두 사탄의 제자"들이라는 기상천외한 열변을 토합니다.

 

 그들의 그런 집회, 그런 발언들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하나님 아버지를 절규하고 찬송 찬양을 한다 해도, 그들의 그런 주장은 결국 민족 간에 다시 전쟁을 하자는 얘기밖에는 안 되니까요.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그런 집회에 눈을 주지도 않고 귀를 귀울이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그런 주장에 찬동하는 사람들보다는 그들의 시대착오적인 경거망동을 우려하고 개탄하는 신자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며 확신합니다.     

 

 1970년대 후반 기독교회관에서의 ’금요기도회’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었던 나는 그만큼 개신교 집회에도 상당히 익숙해져 있는 편입니다.  

 

 1995년 봄 개신교 신자이신 내 장모님의 칠순 생신 때 목사님들과 신자 분들이 오셔서 축복 예배를 하셨지요. 천주교 신자인 나도 그 자리에 참석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기도했답니다. 내가 천주교 신자임을 잘 알고 있는 목사님과 신자들은 나를 고마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지요. 나는 그들의 그 호의적인 눈빛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불교 사찰의 대웅전 앞에서 부처님께 머리를 숙이던 그 목사님의 예의 바른 모습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나는 그 분이 존경스럽습니다.

 

 호남 출신을 골라 사위와 며느리를 보신 영남 교회의 그 목사님들을 나는 존경합니다.

 

 태안군 근흥면 마금리에서 가난한 교회를 운영하면서도 오래 전부터 ’노아의 집’을 지어 고아와 장애인과 무의탁 노인들을 돌보며 사시는 김제훈 목사님 같은 분들을 나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서울 약현 성당에 불을 지른 방화범이 개신교 신자라는 사실을 조금도 부각시키지 않은 천주교의 장상님들을 나는 존경합니다.

 

  천주교 대전교구의 93개 본당 중에서 막내이며 가장 작은 교회인 안면도 성당이 유일하게 파이프오르간을 장만했습니다. 그리고 ’봉헌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그 최초의 연주회를 장식해 준 최초의 연주자는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서울 응암장로교회 오르가니스트인 박희성 씨가 안면도 성당에서 파이프오르간으로 들려 준 미사곡들을 포함한 12곡의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나는 실로 많은 상념들을 떠올렸고, 그 상념들 속에서 참으로 간절한 소망과 기대들을 가슴에 아로새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화음의 세계를 소망하며 갈원하였습니다. 그 앙상블의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그것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하고도 필요한 것인지를 절절히 체감하였습니다.

 

 내가 부분음치임에도, 그것을 무릅쓰고 우리 성당에서 기를 쓰고 성가대 활동을 하는 것은 바로 그 화음의 세계를 스스로 체험하고 체현하기 위한 것임을 새로이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앙상블―조화의 세계에 대한 꿈을 결코 버리지 않고, 계속적으로 소망하고 갈원하기 위한 것임을….

 

 나는 하느님께서 내 명줄을 허락해 주시고, 성가대원들이 나를 계속 안아주기만 한다면, 저 노년의 세월에 이르러서도 힘껏 성가대 활동을 할 작정입니다. 참다운 조화의 세계를 향하여…. *

 

 2001년 9월 21일

 

 충남 태안의 반딧불이 작가 지요하 적음

 

        jiyoha@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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