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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파리 노틀담 성당 미사 참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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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퀴나스 쪽지 캡슐 작성일2001-11-12 조회수924 추천수7 반대(0) 신고

 + Laudate Dominum ! +

 

안녕하세요.  성가 가족 여러분.

여전히 Essen입니다.

 

또다시 지겨운 주말이 찾아들었고, 이번에는 파리를 다녀왔습니다.  영국을 가려고 하다가 파리에 마침 아는 이가 있어 잠시 신세도 질겸 파리 노틀담 성당을 찾아가 미사를 봉헌하려는 마음에서...

 

토요일 이른 아침 8시에 출발하는 Thalys라는 기차를 쾰른(필자주: 영어식 도시명은 Colonia입니다)에서 타는데, 유럽을 와본 사람들은 아마 쾰른 대성당을 떠올리게 될것입니다.  지난주 밀라노에서 본 그 성당보다야 작지만 우리 명동 성당의 한 3-4배가량 되는 사이즈, 두배정도의 높이를 가진 위용을 자랑하지요.  따라서, 쾰른시로 들어와서 중앙역을 찾는데, 성당을 기준으로 찾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패망후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데, 성당이 라인강변에 아주 위용스러운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침일찍이라 잠시 들어가 성체 조배를 했는데, 해가 완전히 뜨기 전이라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를 볼 수는 없었던게 좀 아쉽군요.

 

Thalys기차는 국경인 Aachen, 벨기에 수도 부뤼셀 그리고 파리에로 가는데 4시간정도 소요됩니다.  서울 - 대구라 생각하면 되지요.  벨기에를 떠나 파리 국경으로 너어가니 평평한 땅인지라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데, 300Km이상은 족히 되는것 같더이다.  옆의 Freeway를 열심히 달리는 쪼그만 자동차가 이뻐보일정도로 뒤쳐지는 모습이....

 

굳이 제가 파리를 선택해서 파리에 가는 이야기는 사실상 1997년 이야기로 잠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1997년에 파리에서는 세계 청소년 성체대회가 있었고, 한국팀의 일원으로 제 남동생이 참석을 했다가 마지막 날에 피아노 반주를 담당했던 프랑스인 베로니끄(Veronique)라는 사람을 알게된것부터 시작됩니다.  그 이후 서로 연락을 하며 지내다가, 집안 식구들까지 친해지게 되고, 얼마전 여동생의 유럽여행시 신세/환대, 그리고 베로니끄의 한국 방문시 우리집 방문 및 서울 구경 기타....  

 

최근 한국 공연을 마쳤던 유명한 영국인 플룻리스트 Susan Milan의 요청으로 반주를 담당하러 방문했는데, 저는 당시 미국 출장중이여서 만나질 못했던지라 이 기회에 만나보고도 싶었고, 항상 때가되면(성탄절, 부활절) 집식구 앞으로 카드에 선물을 보내는 그 정성이 여간 고마운것이 아니였기에 답례차 방문을 계획한 것이였습니다.

 

파리에 도착하니, 베로니끄가 Paris Nord(파리 북부역이란 뜻)에 마중나와 있었고, 저를 집으로 안내해서 아주 푸짐한 점심을 먹고(접시만 한 5-6번 갈면서 진짜로 오래들 식사하더만요 !!) sight-seeing에 들어갔습니다.  이미 파리의 유명한곳은 방문한적이 있고, 이번 목적은 노틀담 성당미사 참석이 주목적이여서 욕심부리지 않고 성당을 위주로 다녔습니다.

 

토요일에 방문한 성당은 1830년에 기적이 일어나 당시 빈센트 수녀회의 까뜨린느(Cathrine)수녀님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기적패를 보여주시며 이 문양의 기적패를 하는 사람은 은총을 입을것임을 시사하셨지요.  우리 명동 성물 판매소에서도 십자가와 ’M’자 문양, 그리고 12개의 별, 두개의 심장문양이 그려진것을 판매합니다.  설명서를 읽어보니, 12개의 별은 사도들의 교회를 두개의 심장은 각각 성모님과 예수님을 상징하는것이라 씌여있더군요.

 

요즘은 흔히들, ’스카풀라’대신에 이를 착용하지요.  저도 긴 해외생활과, 영업사원도 아닌 제가 잦은 해외 출장으로 불안하셨던지 어머님께서 총각시절부터 반 강제적으로 착용을 권하셨는데, 그 성당에서 비롯된 사실임을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유명한 성당이여서 그런지, 성당안에는 성체조배를 온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특이한것은, 성모님 발현 성당이여서 그런지, 제대 뒷편으로 십자가 위치에 성모님의 상이 좀더 큰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잠시 걸으니 파리 예수회 본부 성당이 있었는데, 거기도 잠시 들러 성체조배를 했지요.  아시는 바와 같이 종교 개혁이 한창이던 당시 유럽에서는 절대 교황권에 복종하는 반대하는 개혁파의 완전 반대입장인 ’절대 교황권 수호’를 catch phraise로한 스페인 출신의 로욜라 이나시오(Loyola Inatius) 성인께서 ’예수님의 벗들’이라는 초창기 명칭으로 4명의 신부님이 탄생하는데 이것이 예수회의 초창기 모습이지요.  나중에는 이름이 ’예수회(Jesuit)’로 변경되었고 영화 Mission에 나오는것 처럼 많은 선교 및 영성에 관한 교회의 마지막 ’지적 보루’로 현재까지 남아있게 되는것이지요.(필자주: 그래서인지, 예수회 신부님들 무지하게 공부많이하는것 같습니다)  당시 이나시오 성인이 파리대학에서 공부를 마쳤기에 초창기 예수회의 모습이 파리에 많이 남아있는데, 바로 제가 방문했던 그곳이 그 성당이였던 것입니다.  이미 성당을 방문했을때에는 땅거미가 진 저녁이라 어슴프리 스테인드 글라스에 비춰진 빛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조용한 성당에서 잠시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토요일을 마쳤습니다.

 

일요일 10시에 첫미사가 봉헌되는데, 다시 독일로 돌아와야하는 일정으로 10시 미사를 봉헌하기로 맘먹고 베로니끄의 오빠인 ’프랑수와’의 도움으로 다시 노틀담을 찾았습니다. 베로니끄는 자신의 본적 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활동을 하는데, 미사시간이 같아서 저를 안내하지 못해 대신 오빠가 그 수고를 덜어주었지요.  노틀담에 2년전 왔을때는 2000년 대희년(Great Jubiliee)를 준비하는터라 성당의 대부분을 청소하고 보수하고 있었던지라 완전한 노틀담의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이제 와보니 정문에는 깨끗하게 단장된 성당이 많은 노력에 걸쳐 청소하고 보수되었음이 보였습니다.  그러고보니, 완장된 노틀담은 처음이였더군요.  (필자주: 그래서, 지난번 밀라노 성당에서 노틀담의 ’회색’표현은 이제 다소 깨끗해진 모습으로 정정해야 할듯하더군요.  회색은 매연과 더러워졌을때의 모습이고, 원래 돌들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해 보이더이다.)

 

미사의 시작은 7명의 파란 단색으로 된 옷을 입은 성가대가 먼저 제대에서 라틴어 노래로 Introit을 부르니 중간에서 사제단의 행렬로 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공명이 너무나 우수해서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았고 사람이 7명인데도 아주 신비하게 소리가 들리더군요.  (필자주: 이 노틀담의 공명이 궁금하신 분들은 이미 제가 음악 감상실에 몇년전 올려놓은 (암사슴이 시냇물을...의 Palestrina곡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273번으로 올려져 있더군요.  2년전 파리에 왔을때 기념하여 이곳에서 녹음된 CD를 장만했는데, 아주 훌륭한 공명을 느끼실 수 있으십니다)

 

미사는 라틴어로 봉헌되었고(주요 기도문만) 프랑스어로 독서,복음 그리고 강론이 이어졌습니다.  우리나라 초창기 조선교구가 만들어질때 파리외방 전교회(Paris Foreign Missionary)의 영향이 짙었기에 그런지 모르지만, 같은 전레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한국과 너무 닮았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중시기이므로 녹색 가운으로 차려입은 세명의 사제들이 드리는 전례모습이 마치 우리나라 신부님처럼 느껴졌는데 특별한 구석은 찾기 힘들지만, 뭔가 우리나라 사제같다는 느낌을 계속 주더군요.

 

밀라노와는 달리 향을 우리나라 사제단들이 사용하는 식으로 사용하셨고, 미사는 전반적으로 아주 엄숙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미사는 밀라노와 유사하게 관광객들이 시종일관 플래시를 터뜨리고, 거양 성체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사진기가 쉬질 않더군요.  특이했던것은 성당 입구에 일본어와 중국어로만 - ’이곳은 기도하는 성스러운 장소이므로 고성방가를 삼가해 주시오’ - 라는것이 순간 생각났습니다.  중세 유럽에 팽배했던 그리스도 문화는 유럽인들에게는 생소하지 않지만, 이것을 아시아 사람들에게는 상기시켜줄 필요가 있었는지 오로지 일어/중국어로 되어있더군요.

 

미사는 약 1시간 20분 소요되었고, 영성체를 마친후 마지막 기도전 잠시 주례신부님께서 공지사항을 말씀하시는 부분이 되니, 밖에서 종소리가 났습니다.  프랑스어로 먼저 이야기하신다음, 유명성당이니 전세계에서 모인 신자들을 위해서 짧게 영어로 ’오늘이 1차세계대전이 종료된(1913년)날이므로 이를 기념하는 미사였고, 지금 나는 종소리가 그것을 기념하는것이며, 아울러 종료된 전쟁처럼 아프칸의 사태도 조기 종료를 기원합니다’하셨다.  그러고보니, 연중시기였는데, 종전을 기념하는 미사였던지 세명의 사제가 장엄하게 모든 예절을 연중 미사이상으로 엄숙하게 진행하셨던것 같았습니다.

 

미사는 입장과는 달리, 합창단원들도 퇴장 행렬에 같이 끼어 서서히 퇴장하였고, 그때에 파이프 오르가니스트는 엄청난 큰 소리로 연주하면서 미사의 종료를 알렸습니다.  거의 ’굉음’과도 같은 소리가 노틀담 성당안을 가득 채우는데, 일부 몰상식한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염려되었는데, 지난번 밀라노와는 달리 전혀 박수를 치는 사람이 없어서 마지막까지 참으로 엄숙한 분위기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퇴장할때의 복사, 성체 분배자, 성가대, 물론 사제단까지 그 엄숙함의 끈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였습니다.  다소 ’우쭐댈수도’ 있는 모습이였지만 엄숙함에서 배울 수 있는 유럽인들의 또다른 신심 깊은 모습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다소, 한국의 전례를 떠올리면, 주님께 드리는 제사에 ’인간’이 그 제사의 주인인양, 드러내 보이려 무진장 애쓰는 성가대와 기타 봉사자들의 모습이 불현듯 스쳐지나갔습니다.  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왠지 퇴장 행렬의 사람들의 얼굴에서 없어지지 않은 엄숙함에서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

 

미사를 마치고 나오니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성당을 찾기 시작했는데, ’주님을 잘 섬기기 위해 잘 지은 성당이 있다보니, 덤으로 이런 관광 수입도 주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를 찾는 관광객으로 얻어지는 수입도 제법 되겠다..싶었는데, 주님을 잘 섬기면 돌아오는 당연한 댓가가 아닌가 ?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지요.

 

다시 집으로 돌아와, 기차 시간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피아니스인 베로니끄의 간단한 연주회도 있었는데, 약 두시간가량 자신의 연습실에서 나만을 위한 작은 연주회를 열어주었답니다.  주로 자기가 좋아하는 소품들(Schuman, Schubert)과, 나의 신청곡들로 이루어졌는데, 특히 Bach의 샤콘느 BWV 1004를 완주할때 작품번호가 1004여서였던지, 피아노 연주하는 모습이 천사처럼 보이더군요.  이 외에 모짜르트 C Major K467(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등 그녀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던 내용을 말해주면서 관객이 오로지 나 혼자인데도 열심히 연주해 주었습니다.  프로인 베로니끄가 관객이 나혼자인 이 작은 연주마저도 대하는 자세가 참으로 진지했습니다 그리고 고마왔습니다.  미사 참례 버금가게 참으로 인상적인 이번 여행의 일부분이라 지금도 생각되는군요.  (필자주: 그제서야 알게되었는데, 파리 국립 콘조바또리에서 피아노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계속 영국의 로얄 국립 음악대학원에서 여러명의 유명인들로부터 사사받은 아주 재능있는 피아니스트라는것을 말입니다.  따라서, 영국 체류당시 은사님의 친구분인 Susan Milan이 여러번 요청하여 함께 협연한적이 많다는것과, 유럽에서 유명한 많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내용등을 이야기 해주면서, 많은 음악적 상식도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정말로, 세상은 넓고 할것,볼것,들을것... 정말 많더군요 !!)

 

특히, 자신의 연습실에 개구리를 좋아하는지, 개구리 인형,사진, 액자... 목각 개구리 인형들이 즐비했습니다.  프랑스인이 아니랄까봐, 개구리를 좋아하는것이 아닐까 생각했지요.(필자주: 영어로 개구리가 Frog입니다. 보통 프랑스인을 다소 비하시켜 부를때 Frog이라고 하는데, 이는 개구리 뒷다리 요리를 먹는 프랑스인을 조금은 빗대어 부르는 문화코드이지요, 마치 미국인을 양키라고 말하는 그런 뉘앙스입니다) 한데, 그 사실을 아는지, 자신은 단순히 개구리가 좋을 뿐이라고만 이야기하더군요.  예술을 사랑하는 나라사람들은 제각기 아주 고유한 취미를 가지고 있구나...생각했더랬습니다.

 

돌아올 기차역까지 배웅할때는 첫만남과는 달리 프랑스식으로 인사를 하고 나는 다시 독일로 향하는 기차안에서 이틀간의 짧은 여행에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모습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가지로 존재하신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1997년의 아주 작은 만남을 통해서 이렇게까지 이어지는 오묘한 신비를 일컬어 아마 우리가 말하는 ’주님의 잔치’가 아닐까..하고 말입니다.  지상에서의 잔치가 이러할진데, 천상에서의 잔치는 어떨까 ? 하는 생각을 하며, 이런저런 생각과 묵상을 하니 내가 치른 댓가로는 왕복 Thalys 기차편 독일 마르크로 200(한화로 약 12만원)마르크였고, 숙식에, 안내 가이드, 맛있는 프랑스 요리, 나만을 위한 작은 연주회... 모든것이 저에게는 너무 필요 이상의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아울러, 제가 일본 거주시에 김 건정 선생님이 오셔 미사를 함께 봉헌할때에, 제게 귓속말로 ..’자네 이거 알아 ?  이거 100만원짜리 미사란거...’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그렇게까지 애를 쓰시는 분도 계시다는것이 고마왔고, 제가 이틀간 파리에서 받은 이런 대접을 당시 김 선생님께 못해드린것이 다소 죄송스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족:김 선생님, 모자라지만 대신 노틀담 참례기를 쓴다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_*]

 

짧은 1박 2일의 파리 방문이였지만, 지나번 방문때보다 훠얼씬 풍성한 경험과 신앙적 체험을 하게해준 파리방문이였던 같습니다.  주님의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복되다는 성경의 귀절이 이번 경험을 통해서는 완전히 저에게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지요.

 

이런저런 생각과 묵상 그리고 좋은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성령이 내 마음속에 가득히 임하심을 느끼다보니 벌써 기차는 쾰른 역에 닿았고 무사히 다시 숙소로 올 수 있었습니다.  오는길의 어둔밤은 이미 늦가을을 넘어 유럽형 겨울로 가는 차가운 밤이였지만, 제 마음은 어느때보다도 더 따스함을 느꼈음을 여기에 기록해 두고 싶습니다.

 

비록, 저의 참관기를 읽지는 못하지만 저에게 성심 성의로 모든 편의를 제공해주신 베로니끄 가족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이런 오묘한 신비로 저희들을 이끄시는 주님의 사랑과 그 잔치의 신비함에 다시한번 경외하는 마음의 감사를 보내며서, 저의 모자란 노틀담 성당 미사 참례기를 마무리합니다.  (글중, 사족이 많이 들어간것 같아 죄송하네요.)

 

독일에서,

아퀴나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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