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배성환 성가대지휘 30년 음악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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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남진 | 작성일2001-11-27 | 조회수1,172 | 추천수18 | 반대(0) 신고 |
<천사가 날으며 심어준 고운 음성 /너와 나의 마음 묶어 주께 영광 올리세 / 보람에 찬 봉사 정신 / 사랑의 지축 울리고 / 환희의 샘터 엔젤에는 월계 향기 진동하니 / 머지않아 온누리에 찬란한 영광의 꽃 피우리>
배성환 작사 작곡의 이 노래는 청량리성당 ’청년엔젤’과 OB팀인 ’엔젤사랑’ 이 부르는 단가이다. 소박한 노래말, 아름다운 곡조의 성가대 단가를 갖고 있음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 노래는 근 30년전에 작곡되었다.
30년전 젊은 음악도 배성환 루까는 우리와 우정을 나누며 성가대를 위해 직접 노래말을 짓고 곡을 붙여 주었다. 그후 세월이 흘러 우리 각자는 또다른 삶의 자리를 찾아 흩어졌고 오랫동안 그 노래를 잊고 지내왔다. 그러나 99년 우리의 옛 멤버이던 장애우 김석주 안드레아가 온갖 좌절을 딛고 미국 땅에서 인간승리를 이뤘고, 또 뉴욕한인회장에 당선되어 귀국했을때 우리는 옛 단가를 부르며 단절의 세월을 뛰어 넘었다. 머리엔 흰 서리가 내리고 돗수 높은 안경을 걸친 서글픈 모습들이었지만 그 노래 하나는 우리를 끈끈한 정으로 엮어주었다. 우리는 그 이후 젊은 날을 추억하며 함께 특전미사 성가를 하고 지친 삶 속에서 희망을 돋우며 살게됐다.
얼마전 배성환 루까가 지휘하는 그린 합창단으로부터 올해가 그의 본당 성가대 지휘 30년이 되는 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그를 처음 본 것은 72,3년경이었다. 지금보다 조금 이른 가을, 도수높은 검은 뿔테 안경에 검은 가죽 잠바와 커다란 책 가방을 든 그는 우리앞에 나타났다. 그는 청량리성당의 보좌였던 백남용신부(현 서울 대교구 성음악 감독, 명동성당 주임)의 학교 친구였다. 당시 경희 음대에 학사 편입한 나이 든 학생 백신부에게는 친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백신부와 루까는 한 믿음의 옷을 입었으니 금새 친해질 수 있었고 장학생이요, 음대학생회장이던 그는 백신부를 경희음대의 합창부장으로 함께 하자고 하여,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루까는 경북 왜관 출신이다. 수도회중에서 전례 보존을 수도회의 고유사명으로 삼는 왜관 성 베네딕토수도원 가까이에 살며 어려서부터 독일인 수사님들에게 직접 오르간을 배운 루까와 교회음악 전공에 뜻을 둔 사제 백신부는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이요, 선의의 경쟁자이기도 했다. 백신부는 당시 지휘자가 없어서 흔들리는 엔젤 성가대에 루까를 연결시켜주었다.
루까는 체수는 작았지만 지휘자로서의 카리스마는 놀라웠다. 지휘대에서 내려서면 우리와 다름없는 젊은이였고 대학생에 불과했지만 지휘대에 오르면 날카로운 귀와 눈으로 우리를 제압하였다. 루까는 음악에 재질있는 단원들은 학교로 불러서 화성악을 직접 가르쳐주며 음악성을 키워주려고 애썼다. 단원들의 결혼식이 있을때는 밤 새워 축하곡을 짓거나 편곡해 미사를 성의껏 준비했고 작은 오케스트라까지 이끌고 왔다. 그가 직접 작곡한 ’축혼가’로 혼배미사를 드린 사람중에는 김건정 파트리시오도 있다.
루까는 자기 관리에 엄격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불편해한다. 그러나 나는 인정한다. 지휘자 금난새가 KBS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활동할 때 금난새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간의 미묘한 갈등을 이야기했다. 단원들과 지휘자와의 어쩔수 없는 ’멀고도 가까운’ 사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루까를 떠 올렸다. 그는 어쩌면 더 완벽한 음악의 완성을 위하여 고독을 택하는 지휘자임에 틀림 없다.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연습을 하고 차 한잔, 냉수 한컵 마시지않고 냉정히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는 야멸찬 모습을 갖고 있다.
그가 30년간 서울시내에서 지휘를 맡았던 성가대,합창단은 12개 정도라 한다. 자의로, 때로는 타의에 의해서 굴곡 많은 성가대 지휘자 생활을 했다. 쉽게 타협하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음을 멀리서 감지한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음악으로 말하는 그가 참으로 행복한 음악인이라고 생각한다. 각 성가대의 음악회에는 물론, 중 고등학교 아이들의 합창경연대회 때 그가 편곡한 노래들은 심심치않게 들어 있다. 아이들은 배성환이란 사람이 생존한 인물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그의 곡을 택한다. 당김음, 엇박자,4부,8부로 편곡한 아름다운 선율들,재미있는 곡 해석, 그의 음악은 독특한 맛이 있다.
순교자를 주제로 한 오페라곡 ’피에 젖은 백합’ ’ 미사곡’,’ 한국외방선교회가 ’등 아름다운 작곡도 많지만 특히 그는 ’음악의 재창조’란 신념으로 편곡에 남다른 애착을 가져 지금까지 편곡한 것이 2백여곡에 이른다 한다. 하느님께 받은 달란트를 아끼지않고 써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봉헌 할 수 있는 그는 행복하다. 그런 재주는 분명 ’은총’이다.
그가 지휘하는 그린합창단은 "바흐에서 비틀스까지" 를 모토로 활동 한다던가. 아니 바흐에서 쿨론의 꿍따리샤바라까지 그의 음악은 거칠게 없다. 그의 손을 거치면 재미 없는 성가도 새 옷을 입고 생명을 갖는다. 대중가요는 성가풍으로 변신한다.
우리는 요즘 그린합창단이 주축이 되어 꾸미는 12월8일의 루까의 본당 성가대 지휘 30년기념 음악회(연세대 백주년 기념관)-’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의 우정 출연을 위해 즐겁게 연습중이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나는 최근 혜화동성당의 ’백동70년사’를 읽으며 개신교의 유명한 작곡가였던 고 나운영선생이 1954,5년경 혜화동에서 영세를 받은 신자였음을 알고 놀랐다 . 가톨릭적인 정서가 바탕에 깔린 것이 나운영의 음악이요, 배경이었음을 뒤늦게 알았던 것이다. 그 이후로 한동안 그가 천주교회를 떠나 개신교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제라도 우리 교회가 말없이 봉사하는 수 많은 일꾼들을 수용하고, 재주를 격려하며, 육성해 가는 열린 풍토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루까와 루까 보다도 더 오랜 세월동안 지휘하며 교회에 헌신 했을 수 많은 작곡가들, 지휘자들,반주자들, 교회음악 봉사자들께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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