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을 해주세요.

로그인
닫기
성경자료
크게 원래대로 작게
글자크기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중재 기도

843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7-30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중재 기도

 

 

오늘 제1독서에는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하느님께 중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주님과 협상하여 소돔에 의인이 열 명이라도 있다면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기어이 받아냅니다. 물론 그 열 명이 없어 소돔은 종말을 맞게 되지만 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재앙에서 롯과 그의 가족만 살아남은 것 역시 아브라함 덕분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보아 자비를 베푸신 것이었으니(창세 19,29), 흠 없고 도덕적인 이의 중재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의로움에 있어 롯과 매우 대비됩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앞두고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그곳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지만, 롯은 자기 이해관계를 위해 두 처녀 딸을 희생시키려 합니다(19,8). 자기 지붕 밑의 손님을 보호하려고 소돔인들에게 딸을 대신 희생양으로 내놓은 것입니다. 성서 시대 여인들은 종으로 팔려가기도 하는 등(탈출 21,7) 재산처럼 여겨졌고, 고대근동인들은 자기 지붕 밑에 거하는 손님을 보호하는 일을 명예가 걸린 임무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화를 십분 고려한다 해도, 제 명예를 위해 친딸을 위험에 빠뜨린 행동은 너무나 비정해 보입니다.

 

다만 베드로 2서에 나오는 롯에 대한 평가는 이와 상반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두 고을은 멸망하도록 단죄하시고 잿더미로 만드시어, 불경한 자들에게 내릴 벌의 본보기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 롯은 구해 주셨습니다. 사실 그 의인은 ··· 무도한 행실들을 보고 듣느라고 ··· 괴로움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2,6-8). 의로운 롯이 소돔의 악을 견디느라 괴로움을 겪었다는 말입니다. 이 내용이 창세 19장에 묘사된 롯의 모습과 모순되게 보이지만, 이는 상대적 평가입니다. 곧 소돔인들에 비해 롯이 의로웠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테면, 에제 16,51과 같은 맥락입니다. “사마리아는 네(예루살렘)가 지은 죄의 반만큼도 죄짓지 않았다. ··· 네가 저지른 그 모든 역겨운 짓으로, 너의 자매들이 오히려 의롭게 여겨지도록 만들었다.” 롯은 소돔인들처럼 폭력을 행사하지도, 악의를 품고 약자를 괴롭히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약자인 나그네 손님을 보호하려고 딴에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모범으로 여겨질 의로운 행동도 하지 않았으니, 그는 세태에 오락가락 흔들리기 쉬운 범부였던 셈입니다.

 

예부터 아브라함처럼 예언자들이 바치는 중재 기도는 재앙을 내리시려는 하느님의 마음을 돌리곤 하였습니다(탈출 32,11-14 등). 한편, 이스라엘 백성이 완전 구제불능이라 죗값을 더 이상 피할 수 없을 땐, 하느님께서 중재 기도를 막으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예레 7,16 등). 중재 기도는 오늘날 성인 성녀들의 전구를 구하는 관습으로 발전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중재 기도를 막으신 경우도 있었음을 상기하며, 이런 전구 역시 우리 회개 없이는 결실을 맺을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5년 7월 27일(다해)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0 24 0

추천  0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