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부 “저는 믿나이다” - “저희는 믿나이다”
- 제 2 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 제 1 장 천주 성부를 믿나이다
- 제1절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 제2단락 성부
- II.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계시
제 2 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 성자를 통하여 알려지신 성부
- 238 많은 종교들이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다. 하느님은 종종 ‘신들과 사람들의 아버지’로 여겨졌다. 세상의 창조주라는 의미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38)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맏아들 이스라엘”(탈출 4,22) 백성과 계약을 맺으시고 율법을 주신 까닭에 더더욱 아버지이시다. 그분은 또한 이스라엘 왕들의 아버지라고도 불리신다.39) 하느님께서는 특히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 고아와 과부들의 아버지이시며, 이들은 하느님 사랑의 보호를 받고 있다.40)
- 239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신앙의 언어는 주로 두 가지 측면을 가리킨다. 먼저 하느님께서는 만물의 근원이시며 초월적인 권위를 지니셨으며, 동시에 당신의 모든 자녀를 자비와 사랑으로 보살피신다는 점이다. 하느님의 부성은 또한 모성의 모습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데41) 이는 하느님의 내재성과, 하느님과 당신 피조물 사이의 친밀성에 더 주목하여 가리키는 것이다. 이처럼 신앙의 언어도 부모들에 대한 인간적 경험에서 도움을 얻는다. 어떤 면에서 인간은 부모에게서 처음으로 하느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인간인 부모들이 그릇될 수도 있으며 부성과 모성의 모습을 왜곡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성별을 초월하신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분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하느님이시다. 그분은 인간적인 부성과 모성의 근원이며 척도이시면서도42) 이를 초월하신다.43) 아무도 하느님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일 수 없다.
- 240 예수님께서는 전혀 새로운 의미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로 계시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아버지이실 뿐 아니라 당신 외아들과의 관계에서도 영원히 아버지이시다. 그리고 그 아들은 오직 당신 아버지와 맺은 관계에서만 영원히 아들이시다.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마태 11,27).
- 241 이 때문에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한처음에 계셨으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이신 말씀”(요한 1,1)이시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콜로 1,15)이시고,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시는 분”(히브 1,3)이시라고 고백한다.
- 242 그 뒤 사도들의 전통을 따라, 교회는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자께서 성부와 “한 본체”44)이심을 고백하였다. 곧 성자께서는 성부와 함께 한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열린 제2차 공의회에서는 니케아 신경에 포함된 이러한 표현을 그대로 지켜,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하느님에게서 나신 참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이신 분”45)이라고 고백하였다.
- 성령을 통하여 계시되신 성부와 성자
- 243 당신 파스카 전에 예수님께서는 ‘다른 파라클리토’(보호자)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알려 주신다. 창조 때부터46) 활동하시는 성령께서는 전에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고”,47) 이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고, 그들 안에 계시면서,48) 그들을 이끌어 “모든 진리를”(요한 16,13) 깨닫도록 가르쳐 주실 것이다.49) 이처럼 성령께서는 성자와 성부와 구별되는 하느님의 한 ‘위격’으로 계시되셨다.
- 244 성령의 영원한 근원은 그분의 지상 파견으로 드러난다. 성령께서는 성자의 이름으로 성부에 의해서, 또 성자께서 성부의 곁으로 돌아가신 뒤에는 직접 성자에 의해서 사도들과 교회에 파견되신다.50)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뒤에 성령께서 파견되신다는 사실은51) 삼위일체 신비를 온전히 계시하는 것이다.
- 245 성령에 대한 사도적 신앙은 381년에 열린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된다.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에게서 발하시나이다.”52) 이로써 교회는 성부께서 “모든 신성의 원천이며 근원”53)이심을 고백한다. 한편 성령의 영원한 근원은 성자의 영원한 근원과 무관하지 않다. “삼위일체의 제3위격이신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하나이시며 동일하시고, 같은 실체와 같은 본성을 지니고 계신다.……그러나 성부만의 성령 또는 성자만의 성령이시라고 할 수 없고, 성부와 성자의 성령이시라고 해야 한다.”54) 교회의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 신경은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신다.”고 고백한다.55)
- 246 신경의 라틴 전승은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에게서(Filioque) 발하신다.”고 고백한다. 1438년의 피렌체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성령께서는 그 본질과 존재를 성부와 성자에게서 동시에 받으시며, 유일한 근원이신 한 위와 또 다른 위에게서, 유일한 발출(spiratio)을 통하여 영원히 나오신다.……그리고 성부께서는 아버지로서 외아들을 낳으시고, 당신의 존재만을 제외하고는 당신께 있는 모든 것을 외아들에게 주셨기 때문에, 성자에게서 나오신 성령의 이 발출도 영원으로부터 성자를 낳으신 성부에게서 영원히 이루어지는 것이다.”56)
- 247 필리오퀘(Filioque)에 대한 이러한 언명은 381년의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의 신경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 라틴 전통과 알렉산드리아 전통에 따라 성 레오 교황은, 로마가 451년의 칼케돈 공의회에서 381년의 신경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전인 447년에57) 이미 이를 교의로 고백하였다. 신경 안에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관습은 점차 라틴 전례 안에 받아들여졌다(8-11세기). 한편 이러한 라틴 전례에서 필리오퀘를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포함시킨 문제는 오늘날까지 정교회와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 248 동방 전통은 우선 성부께서 성령의 첫 기원이심을 표현하고 있다.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요한 15,26) 성령이라고 고백함으로써 성령께서는 성자를 통하여 성부에게서 나오신다는 것을 확언한다.58) 그러나 서방 전승은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에게서(필리오퀘) 발하신다고 말함으로써 우선 성부와 성자께서 한 본체로서 이루시는 일치를 표현한다. 서방 교회는 이를 “정당하고 합리적”59)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한 본체로서 일치를 이루는 하느님 위격의 영원한 질서는, 성부께서 “근원이 없는 근원”60)으로서 성령의 일차적 근원이심을 내포하고 있지만, 한편 독생 성자의 성부로서 성자와 함께 “성령께서 나오신 유일한 근원”61)이시라는 사실 역시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당한 보완은, 그것을 지나치게 고착시키지 않는다면, 동일하게 고백하는 신비의 실재를 믿는 신앙의 단일성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