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부 “저는 믿나이다” - “저희는 믿나이다”
- 제 2 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 제 3 장 성령을 믿나이다
- 제8절 “성령을 믿으며”
제 2 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 687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1코린 2,11). 하느님을 계시해 주시는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살아 계신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알려 주시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신다.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던 분이”5) 우리에게 성부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 우리에게 ‘말씀’을 계시해 주시고 신앙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통해서만 성령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드러내시는’ 진리의 성령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신다.”6) 참으로 하느님다운 이러한 숨김은,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요한 14,17)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분을 아는 것은 그분께서 그들 안에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설명해 준다.
- 688 교회는 교회가 전하는 사도들의 신앙 안에 살아 있는 친교로서, 성령을 인식하는 장소이다. 곧,
- - 성령께서 영감을 주신 성경 안에서,
- - 교부들의 증언이 언제나 살아 있는 전통 안에서,
- - 성령께서 도우시는 교회의 교도권 안에서,
- -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게 하시는 성사의 전례 안에서 말씀과 상징을 통하여,
- - 우리를 위하여 성령께서 전구해 주시는 기도 안에서,
- - 교회를 이루는 은사와 직무 안에서,
- - 사도적 삶과 선교적 삶의 표징들 안에서,
- - 성령께서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고 구원 사업을 계속하시는 성인들의 증거 안에서.
- I. 성자와 성령의 공동 파견
- 689 성부께서 우리 마음에 보내 주신 당신 아드님의 영께서는7) 참으로 하느님이시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한 본체이시며, 삼위일체의 내적 ‘생명’에서나 세상을 위한 당신 사랑의 선물에서나 성부와 성자와 분리되실 수 없다. 그러나 교회의 신앙은 생명을 주시며, 동일한 본질이시고, 나누어질 수 없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경배하면서, 세 위격의 구별도 또한 고백한다. 성부께서 당신의 ‘말씀’을 보내실 때 언제나 당신의 ‘성령’도 보내신다. 성자와 성령께서는 서로 구별되면서도 분리되지 않고 함께 파견되신다. 물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볼 수 있는 모습인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지만, 그리스도를 계시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 690 예수님께서는 ‘기름부음받은이’ 곧 그리스도이시다. 성령께서 그분에게 ‘부어지셨기’ 때문이며, 강생에서부터 그분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이러한 성령의 충만함에서8) 비롯되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셨을 때9) 이번에는 그리스도께서 성부 곁에서,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보내실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을,10) 곧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성령을11) 그들에게 주신다. 그리하여 이 공동 파견이 성부께서 성자의 신비체 안에서 자녀로 삼으신 그들 안에 펼쳐질 것이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성령의 사명은 그들을 그리스도와 결합시키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게 하는 일이다.
- 기름부음이라는 개념은……성자와 성령 사이에 아무런 거리가 없음을 암시합니다. 사실 피부와 기름부음 사이에 이성적으로나 감각적으로 아무런 매개물을 인정할 수 없듯이, 성자와 성령의 접촉도 직접적입니다. 따라서 신앙으로 성자와 접촉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반드시 기름과 접촉해야 합니다. 사실 성령께서 감싸지 않는 부분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성자를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고백은, 신앙을 통하여 모이는 사람들에게 어디서나 다가오시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12)
- II. 성령의 이름과 칭호와 상징
- 성령의 고유한 이름
- 691 ‘성령’, 이는 우리가 성부와 성자와 함께 경배하고 영광을 드리는 그분의 고유한 이름이다. 교회는 이 이름을 주님께 받았으며, 새로운 자녀가 되는 세례 때 이를 고백한다.13)
- ‘영’(靈)이라는 용어는 히브리 말 ‘루아’(Ruah)의 번역으로, 본래 숨결, 공기, 바람 등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위격적으로 하느님의 ‘숨결’, 하느님의 ‘영’이신 그분의 새롭고도 초월적인 존재를 니코데모에게 암시하기 위해, 감지할 수 있는 바람의 비유를 적절하게 사용하신다.14) 한편 영(靈)과 성(聖)은 삼위에 공통된 하느님 속성이다. 그런데 성경과 전례와 신학 언어는, ‘영’과 ‘성’이라는 말이 여러 가지로 달리 쓰이는 혼동을 피하면서, 이 두 용어를 결합시켜 성령의 형언할 수 없는 위격을 가리킨다.
- 성령의 고유한 칭호
- 692 예수님께서 성령이 오실 것을 예고하고 약속하실 때 그분을 ‘파라클리토’(Paracletos)라고 부르는데, 이는 글자 그대로 ‘곁으로 불려 온 분’(ad-vocatus) 곧 보호자라는 뜻이다(요한 14,16.26; 15,26; 16,7). ‘파라클리토’는 일반적으로 ‘변호자’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첫 변호자이시다.15) 주님께서 친히 성령을 “진리의 영”16)이라고 부르신다.
- 693 사도행전과 서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성령’이라는 그분의 고유한 이름 외에, 바오로 사도의 편지에서는 약속된 성령(갈라 3,14; 에페 1,13), 입양의 영(로마 8,15; 갈라 4,6), 그리스도의 영(로마 8,9), 주님의 영(2코린 3,17), 하느님의 영(로마 8,9.14; 15,19; 1코린 6,11; 7,40) 등의 칭호를 찾아볼 수 있으며, 베드로 사도의 편지에는 “영광의 성령”(1베드 4,14)이라는 칭호도 있다.
- 성령의 상징
- 694 물. 물은 세례에서 성령의 활동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성령 청원 기도 후에, 물은 새로운 탄생을 나타내는 유효한 성사적 표징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첫 탄생을 위한 잉태가 물속에서 이루어지듯이, 세례수는 하느님 생명으로 다시 나는 우리의 탄생이 성령 안에서 주어진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의미한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성령을 받아 마셨다”(1코린 12,13).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또한 샘에서 물이 솟아나듯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라는 샘에서 솟아나는 생수이시며,17) 이 생수는 우리 안에서 솟아올라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18)
- 695 기름부음. 기름부음도 성령을 상징한다. 성령과 기름부음은 동의어로 쓰일 정도이다.19)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에서 기름부음은 견진의 성사적 표징인데 동방 교회에서는 이 성사를 ‘축성 성유(크리스마) 도유’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기름부음의 효력 전체를 파악하려면 성령께서 처음으로 행하신 기름부음, 곧 예수님의 기름부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리스도(히브리 말로 ‘메시아’)는 하느님의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분’을 의미한다. 구약에는 주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이들’이 있었고,20) 그중의 특출한 예가 다윗 임금이었다.21)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독특한 방식으로 하느님께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성자께서 취하신 인성은 온전히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세워지셨다.22) 동정 마리아는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성령께서는 그분의 탄생 때 천사를 통해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알리시며,23) 시메온을 성전으로 이끌어 주님의 그리스도를 만나 뵙게 하신다.24)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가득 채우시고,25) 성령의 힘은 그리스도의 치유와 구원의 행위들 안에서 드러난다.26) 마침내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다.27) 이리하여 죽음을 이긴 당신 인성 안에 충만히 ‘그리스도’로 세워지신 예수님께서는28) ‘성도’들에게 성령을 넘치게 부어 주시어, 그들이 하느님 아들의 인성과 결합하여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에페 4,13) 하신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표현에 따르면 ‘온전한 그리스도’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이다.29)
- 696 불. 물이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생명’의 탄생과 풍요를 가리킨다면, 불은 성령의 활동이 지닌 변화시키는 힘을 상징한다. 엘리야 예언자는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집회 48,1). 엘리야는 자신의 기도로 카르멜 산 위 제물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였다.30) 이 불은 닿는 것을 변화시키시는 성령을 상징한다.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온”(루카 1,17)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루카 3,16) 분이심을 선포한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루카 12,49) 성령께서는 오순절 아침 “불꽃” 모양의 혀들이 갈라져 제자들 위에 내려오셔서 그들의 마음을 채우신다.31) 영성적 전통은 이 불이 성령의 활동을 가장 잘 표현하는 상징의 하나로 간직해 왔다.32)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1테살 5,19).
- 697 구름과 빛. 이 두 상징은 성령의 발현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구약의 하느님 발현 때부터 구름은, 때로는 어두운 구름으로, 때로는 빛나는 구름으로, 그 초월적 영광을 덮어, 살아 계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계시한다. 예컨대, 시나이 산에서 모세와 더불어,33) 만남의 장막에서,34) 광야를 걷는 동안에,35) 그리고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36) 구름이 덮었다. 이러한 상징들을 그리스도께서는 성령 안에서 성취하신다. 성령께서 동정 마리아 위에 내려와 “감싸 주시어”37)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게 하신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가 일어난 산에서 성령의 “구름이 일어”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덮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4-35)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던 날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38) 이 구름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사람의 아들을 그 영광 안에서 드러내 보일 것이다.39)
- 698 인호(印號). 인호라는 상징은 기름부음과 가까운 상징이다. 과연 “아버지 하느님께서 날인하신”(요한 6,27) 분은 그리스도이시며, 성부께서는 그분을 통해 우리에게 날인하신다.40) 인호(sphragis)라는 상징은 세례와 견진, 성품성사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의 지워지지 않는 결과를 가리키기 때문에, 반복될 수 없는 이 세 성사가 남기는 지울 수 없는 ‘특성’을 표현하고자 일부 신학 전통은 이 인호의 표상을 사용해 왔다.
- 699 안수. 예수님께서는 손을 얹어 병자들을 치유하시고,41)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셨다.42) 사도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같은 행동을 한다.43) 더 나아가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이 주어진다.44) 히브리서에서 안수는 ‘기초 교리’ 가운데 하나이다.45) 교회는 성사 집전에서 성령 청원 기도 안에 성령이 강하게 주어짐을 의미하는 이 표징을 보존하였다.
- 700 손가락.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신다.”46) 하느님의 율법은 “하느님께서 손가락으로”(탈출 31,18) 돌 판에 쓰셨지만, 사도들에게 써 주신 “그리스도의 추천서”는 “하느님의 영으로 새겨지고, 돌 판이 아니라 살로 된 마음이라는 판에 새겨졌다”(2코린 3,3). 성가 “오소서 창조주 성령님”(Veni Creator Spiritus)은 “하느님의 오른 손가락”47)이신 성령께 기도한다.
- 701 비둘기. 대홍수(대홍수는 세례와 관련된 상징이다)가 끝났을 때,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는 땅이 다시 사람이 살 수 있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싱싱한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돌아온다.48)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그분 위에 내려와 머무르신다.49) 성령께서는 세례 받은 이들의 정화된 마음에 내려오셔서 머물러 계신다. 어떤 성당들은 제대 위에 매달린 비둘기 모양의 금속 그릇(columbarium)에 성체를 모셔 둔다. 성령을 암시하는 비둘기의 상징은 그리스도교 성화상의 전통적인 주제이다.
- III. 약속의 시대에서 하느님의 영과 말씀
- 702 태초부터 “때가 찼을 때”까지50) 아버지의 ‘말씀’과 ‘영’의 공동 사명은 숨겨진 상태로 계속 활동하고 있었다. 하느님의 ‘영’은 그동안 메시아의 때를 준비하고 계셨으며, 두 분 다 아직 완전히 계시되지는 않으셨지만, 그분들을 기다리고, 나타나시면 영접하도록 약속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교회는 구약 성경을 읽을 때51)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52) 성령께서 그리스도에 대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53)
- 교회의 신앙은 ‘예언자들’을, 하느님의 말씀을 힘차게 선포하고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기록하도록 성령께서 영감을 불어넣어 주신 모든 사람들로 이해한다. 유다인들은 전통적으로 성경을 율법서(처음의 다섯 권 또는 모세 오경)와 예언서(우리가 역사서와 예언서라고 부르는 책들)와 성문서(지혜 문학, 특히 시편)로 구분한다.54)
- 창조에서
- 703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의 ‘숨결’은 모든 피조물의 존재와 생명의 기원이다.55)
-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한 본체이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 만물을 다스리고 거룩하게 하시고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성령께서 하느님으로서 성부 안에서 성자를 통해 만물을 유지하시기 때문에, 생명에 대한 권한은 당연히 그분께 속한다.56)
- 704 “사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손(곧 성자와 성령)으로 만드셨다.……그리고 그의 육신에 당신의 모습을 그려 넣으셔서, 눈에 보이는 것까지도 하느님의 형상을 지니게 하셨다.”57)
- 약속의 영
- 705 죄와 죽음으로 그 모습이 손상되기는 했지만, 인간은 여전히 “하느님의 모습”, 성자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의 영광을 상실하였으며”,58) 그 ‘유사성’을 잃어버렸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으로 구원 계획이 개시되는데, 이 계획의 정점에서 성자께서는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어59) 그 ‘영광’, 곧 만물을 ‘살리시는’ 성령을 주시고 성부에 대한 ‘유사성’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 706 인간적으로 볼 때 모든 희망이 사라졌음에도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성령의 힘과 신앙의 결실인 후손을 약속하신다.60) 이 후손을 통하여 지상의 모든 민족이 축복받게 될 것이다.61) 이 후손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며62) 이분께 부어지는 성령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아들이실 것이다.63) 하느님께서는 맹세를 통하여64)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주실 것을 미리 약속하셨으며,65) 하느님께서 당신 것으로 삼으신 백성의 구원을 준비할 “약속의 성령”을66) 보내 주실 것도 약속하셨다.
- 하느님 발현과 율법에서
- 707 하느님 발현(Theophania)은 성조들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여호수아로부터 대예언자들의 사명을 시작하게 한 환시에 이르기까지, 이 ‘약속’의 행로를 밝혀 준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이러한 하느님 발현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때로는 드러나게 때로는 성령의 구름에 감싸인 채 자신을 보여 주거나 듣게 해 준다는 사실을 언제나 인정해 왔다.
- 708 하느님의 이런 교육법(paedagogia)은 특히 율법의 부여에서 드러난다.67) 율법은 하느님의 백성을 그리스도께 이끌기 위한 ‘감시자’(paedagogus)로서 주어졌다.68) 그러나 율법은 하느님과의 ‘유사성’을 잃은 인간을 구원할 능력이 없고, 단지 무엇이 죄가 되는지를 잘 알게 해 주어69) 성령에 대한 소망을 불러일으켰다. 시편의 탄식들이 이를 증언한다.
- 이스라엘 왕국과 유배에서
- 709 ‘약속’과 ‘계약’의 징표인 율법은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비롯된 백성의 마음과 제도를 지배해야만 했다.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탈출 19,5-6).70) 그러나 다윗 이후에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처럼 왕국이 되고자 하는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런데 다윗에게 약속하신 나라는71) 성령께서 세우실 나라이며, 이 나라는 성령을 따르는 가난한 사람들의 나라가 될 것이다.
- 710 율법의 망각과 계약에 대한 불성실은 죽음으로 귀결된다. 유배가 그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약속의 실패이지만, 사실 이 유배는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성실성을 신비롭게 드러내는 것이며, 약속된 회복 곧 성령에 따른 재건의 시작이다. 하느님의 백성은 이러한 정화를 거쳐야만 했다.72) 유배 생활은 하느님의 계획에서 이미 십자가의 그림자를 지니고 있으며, 유배에서 돌아온 가난한 ‘남은 자들’은 교회의 매우 분명한 표상들 가운데 하나이다.
- 메시아와 그분의 영을 기다림
- 711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이사 43,19). 여기서 예언의 두 줄기 흐름이 윤곽을 드러낸다. 그 하나는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영을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은 희망 중에 “이스라엘의 위로”와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루카 2,25.38) 소수의 ‘남은 자들’ 곧 가난한 백성들73) 안에서 하나로 합해진다.
- 지금까지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 예수님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제는 메시아와 그분의 영 사이의 관계가 더 분명히 드러나는 예언들만을 다루기로 한다.
- 712 기다려 온 메시아의 모습은 ‘임마누엘의 책’에서74) 나타나기 시작하며(“이사야가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요한 12,41), 특히 이사야 11장 1-2절이 그러하다.
-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 713 메시아의 모습은 특히 “주님의 종”의 노래에서 드러난다.75) 이 노래들은 예수 수난의 의미를 예고하며,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시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성령을 널리 주실 것인지를 알려 준다. 그 방식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종의 모습”(필리 2,7)을 취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죽음을 몸소 짊어지심으로써 당신 생명의 영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게 된다.
- 714 그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이사야 예언서의 이 대목을 당신의 것으로 삼아 ‘기쁜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신다(루카 4, 18-19).76)
-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715 성령의 파견과 직접 관련되는 예언서 본문들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마음에 ‘약속’의 언어로 사랑과 성실의 어조로 말씀하시는 예언이며,77) 베드로 사도는 성령 강림 날 아침 이 예언의 성취를 선포하게 된다.78) 이 약속들에 따르면, ‘마지막 때’에 주님의 성령께서 새로운 율법을 새겨 주심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신다. 그분은 흩어지고 갈라진 백성들을 다시 모아 화해시키실 것이며, 첫 번째 창조를 새롭게 하시고, 하느님께서는 거기서 평화 중에 사람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
- 716 하느님의 신비한 계획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인간의 정의가 아닌 메시아의 정의를 기다리는 “가난한”79) 백성들, 곧 겸손하고 양순한 사람들이, 마침내 약속의 시간에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 성령의 위대한 숨은 활동이다. 성령께서 정화하시고 밝게 비추어 주신 사람들의 마음이 시편에서 드러난다. 성령께서는 이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주님을 맞아들일 만한 백성”을 주님께 마련해 드린다.80)
- IV. 때가 찼을 때의 그리스도의 영
- 선구자, 예언자, 세례자 요한
- 717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요한 1,6). 요한은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찰 것인데”(루카 1,15), 이는 동정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그리스도에 의한 것이다.81) 이렇게 해서 성모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신”82) 셈이 되었다.
- 718 요한은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이다.83) 그 안에 머무는 영의 불이 그를 오실 주님에 “앞서 달려가게(선구자)” 한다. 성령께서는 선구자인 요한을 통해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루카 1,17) 일을 마치신다.
- 719 요한은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84) 성령께서는 그 안에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일을” 완수하신다. 요한은 엘리야로부터 시작된 예언자들의 시대를 마감한다.85)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가 임박했음을 알린다. 그는 오시는 위로자의 “소리”이다.86) 진리의 성령께서 그러하시듯이 “그는 그 빛을 증언하러 왔다”(요한 1,7).87) 요한이 보기에, 성령께서는 “예언자들이 탐구하고 연구하던 것”과 “천사들도 보기를 갈망하던 것”을 완성하신다.88)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33-36).
- 720 끝으로 성령께서는 세례자 요한과 함께 일을 시작하신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일, 곧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닮은 ‘유사성’을 되돌려 주는 일인데 성령께서는 이를 미리 나타내 보여 주신다. 세례자 요한의 세례는 회개를 위한 것이었지만, 물과 성령으로 베푸는 세례는 새로운 탄생을 위한 것이다.89)
-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 721 지극히 거룩한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평생 동정인 마리아는 때가 찼을 때 성자와 성령의 파견으로 이루어진 최고의 걸작이다. 성령께서 그녀를 준비시키셨기에, 성부께서는 구원 계획에 따라 성자와 성령이 처음으로 인간들 가운데 머무르실 거처를 찾아내셨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의 전승은 자주 지혜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대목들을 마리아와 연관시켜 읽어 왔다.90) 전례에서 마리아는 ‘상지의 옥좌’라고 찬양되고 표현된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이루실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이 마리아 안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이루실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이 마리아 안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 722 성령께서는 당신 은총으로 마리아를 준비시키셨다. “온전히 충만한 신성이 육신의 형태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고 있습니다”(콜로 2,9). 바로 이분의 어머니가 ‘은총을 가득히 받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리아는 비천한 피조물이지만 순수한 은총으로 죄 없이 잉태되었기에, 전능하신 분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선물을 가장 잘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치 ‘시온의 딸’에게 하듯이 “기뻐하여라”91) 하고 마리아에게 인사한 것은 옳은 일이었다. 마리아가 영원하신 성자를 잉태하고 있을 때 성령 안에서 성부께 드린 찬미가는92) 모든 하느님의 백성, 곧 교회가 드리는 감사이다.
- 723 성령께서는 마리아 안에서 성부의 자비로운 계획을 실현하신다. 동정 마리아는,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하고 낳는다. 성령과 신앙의 힘을 통하여 마리아의 동정성은 독특한 출산력이 된다.93)
- 724 성령께서는 마리아에게서 동정녀의 아들로 태어나신 분이 성부의 아들이심을 나타내 보이신다. 마리아는 결정적으로 하느님께서 나타나시는 불붙은 덤불이다. 성령으로 가득 찬 그녀는 보잘것없는 육체를 지니신 ‘말씀’을 보여 주는데, 이는 가난한 사람들과94) 이방 민족들 가운데 가장 먼저 온 사람들에게95) ‘말씀’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 725 마침내 성령께서는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의 호의적 사랑(하느님의 ‘선의’)의 대상인96) 인간들에게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게 하시는데, 겸손한 사람들, 예컨대 목자들, 동방 박사들, 시메온과 한나, 카나의 신랑 신부, 첫 제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그분을 받아들인다.
- 726 성령의 이 사명이 끝날 때 마리아는 ‘여인’, ‘살아 있는 이들의 어머니’, 새로운 하와, ‘온전한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된다.97) 그러한 마리아는, 오순절 아침에 성령께서 교회의 등장과 함께 열어젖히신 ‘마지막 때’의 시초에,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던”(사도 1,14) 열두 사도와 함께 있었다.
- 그리스도 예수님
- 727 때가 찼을 때 이루어질 성자와 성령의 사명 전체는, 성자께서 당신의 강생 때부터 성부의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다는 사실에 담겨 있다. 예수님은 바로 그리스도, 곧 메시아이시다.
- 신경의 둘째 부분은 모두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읽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모든 업적은 성자와 성령의 공동 사명이다. 여기에서는 다만 예수님께서 성령을 약속하신 일과 영광스러운 주님이 되신 후에 보내 주신 성령에 대해서만 언급하려 한다.
- 728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부활로 영광을 받으시기까지는 성령을 충분히 드러내지 않으신다. 그러나 당신의 몸이 세상의 생명을 위한 양식이라고 가르치시면서는 군중에게까지 성령을 조금씩 암시하신다.98) 그리고 니코데모와99) 사마리아 여인,100) 초막절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에게도101) 성령을 암시하신다. 당신 제자들에게 기도와102) 그들이 장차 해야 할 증언에103) 대해 말씀하실 때에는 성령에 대해 터놓고 말씀하신다.
- 729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의 이행이 될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영광을 받으실 때가 되자 비로소 성령께서 오실 것을 약속하신다.104) 성부께서는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시어 다른 파라클리토(보호자)인 진리의 영을 보내실 것이다. 성부께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실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성부 곁에서 성령을 보내실 것이다. 성령은 성부에게서 나오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오실 것이고, 우리는 그분을 알아뵙게 될 것이며, 그분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와 함께 머무실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되새기게 해 주실 것이며,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해 주실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완전한 진리로 이끌어 주시고,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성령께서는 죄와 정의와 심판에 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
- 730 마침내 예수님의 때가 왔다.105) 예수님께서는 당신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는 그 순간에 당신의 영을 성부의 손에 맡기신다.106) 이리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로마 6,4)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성령을 주신다.107) 이‘때’부터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명은 교회의 사명이 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108)
- V. 마지막 때의 성령과 교회
- 성령 강림
- 731 오순절 날(부활 제7주간이 끝나는 날)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그리스도의 파스카가 완성된다. 성령께서는 하느님 위격으로 나타나고, 주어지며, 전해진다.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충만함에서 성령을 풍성하게 부어 주신다.109)
- 732 이날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가 완전하게 계시되었다. 이때부터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가 그분을 믿는 사람들에게 열렸다. 그들은 비천한 육신을 지녔지만 신앙 안에서 이미 삼위일체의 친교에 참여하게 된다. 성령께서는 끊임없는 당신의 오심을 통하여 세상을 ‘마지막 때’로, 교회의 때로, 이미 물려받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로 진입하게 하신다.
- 우리는 ‘참빛’을 보았고, 하늘의 성령을 받았으며, 참된 신앙을 찾았나이다. 우리를 구원하셨기에 우리는 나뉠 수 없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흠숭하나이다.110)
- 성령 - 하느님의 선물
- 733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8.16). 그 사랑은 으뜸 가는 선물로서 다른 모든 선물들을 포함한다. 이 사랑은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5).
- 734 우리는 죄 때문에 죽었거나 적어도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사랑의 선물의 첫 결과는 바로 죄의 용서이다. “성령의 친교”(2코린 13,13)는 교회 안에서, 세례 받은 사람들에게 죄로 잃었던, 하느님을 닮은 유사성을 회복시켜 준다.
- 735 이때 성령께서는 우리들 유산의 “보증” 또는 “첫 선물”을 주신다.111) 곧,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신”112) 그 사랑인 삼위일체의 생명을 주신다. 이 사랑은(1코린 13장의 사랑)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의 원리, 우리가 “성령의 힘”(사도 1,8) 을 받아 가능해진 새로운 생명의 원리이다.
- 736 하느님의 자녀들은 이러한 성령의 능력을 통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우리를 참포도나무에 접목시켜 주신 그분께서는 우리가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갈라 5,22-23)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가 자신을 버리면 버릴수록113) 우리는 더욱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게 된다.114)
- 성령을 통해 우리는 낙원을 되찾고, 하늘 나라에 오를 수 있으며, 다시 하느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집니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신뢰심이 생겨, 그리스도의 은총에 참여할 수 있으며, 빛의 자녀라 불리고,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115)
- 성령과 교회
- 737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의 궁전인 교회 안에서 성취된다. 이 공동 사명은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성령 안에서 성부와 이루는 그리스도의 친교에 참여하게 한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준비시키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사람들을 도와 그리스도께 이끌어 주신다.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보여 주시고, 그분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시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도록 정신을 열어 주신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하느님과 화해시켜,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게 하시며, 그들이 “많은 열매를 맺도록”116) 그리스도의 신비를 그들 안에, 특히 성체 안에 탁월하게 현존하게 하신다.
- 738 교회의 파견은 그리스도의 파견과 성령의 파견에 무엇을 첨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동 파견의 성사(聖事)이다. 교회는 그 전 존재로 모든 지체들 안에서 지극히 거룩한 성삼위의 친교의 신비(이것이 다음 절의 주제이다)를 선포하고 증언하며 실현하고 퍼져 나가게 하려고 파견되었다.
- 우리 모두는 유일하고 동일한 성령을 받으므로 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들 서로 그리고 하느님과 하나가 됩니다. 우리는 다수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게 하는 아버지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은 하나이시고 나뉨이 없으십니다. 이 성령께서는 서로 다르고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 당신을 통해서 일치 안에 모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이, 당신이 그 안에 계시는 이들을 한 몸으로 일치시키는 것처럼 모든 이 안에 계시는 하나이고 나뉨이 없으신 하느님의 영께서도 모든 이를 영적인 일치로 묶어 주십니다.117)
- 739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이시므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지체들을 양육하고, 치유하시며, 그들의 상호 기능을 유기적으로 조직하시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며, 증언하도록 그들을 파견하시고, 성부에 대한 당신의 봉헌과 온 세상을 위한 당신의 전구에 그들이 참여하도록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성사들을 통하여 당신 몸의 지체들에게 거룩한 분이시고 또한 거룩하게 하는 분이신 당신 영을 주신다(이것이 이 교리서 제2편의 주제이다).
- 740 교회의 성사들 안에서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이러한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따르는 새로운 삶에서 그 열매를 맺는다(이것이 이 교리서 제3편의 주제이다).
- 741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하느님의 일꾼이신 성령께서는 기도의 스승이시다(이것이 이 교리서 제4편의 주제이다).
- 간추림
- 742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갈라 4,6).
- 743 태초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실 때에는 언제나 당신의 성령도 보내신다. 그 파견은 공동적이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 744 때가 차자 성령께서는 마리아 안에,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 오시기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신다. 마리아 안에서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성부께서는 세상에 임마누엘을 주신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태 1,23)는 뜻이다.
- 745 하느님의 아들은 강생하실 때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심으로써 그리스도(메시아)로 축성되셨다.118)
- 74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영광 중에 주님이요 그리스도로 세워지셨다.119)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 충만함에서 성령을 사도들과 교회에 부어 주신다.
- 747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지체들에게 부어 주시는 성령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고 생기를 주시며 거룩하게 하신다. 교회는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의 성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