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성문(聖門)을 열면서 2025년 희년이 시작됐음을 선포하셨습니다. 희년이란 25년마다 돌아오는 거룩한 해인데요. 이 시기에는 특별히 많은 순례자들이 로마로 모여듭니다. 무려 약 3000만 명의 순례자들이 로마를 방문할 것이라 예상되고 있는데요. 바로 성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도대체 성문이 뭐길래 전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일까요? 여기서 성문이란 희년에만 열리는 '거룩한 문'(聖門)을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성문만 통과하면 직천당"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천국에 갈 수 있다면 3000만 명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 모두 모여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희년에 로마의 성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무조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물론 희년의 가장 중요한 표징인 성문은 '천국의 문'을 상징합니다. 구약성경 시대의 사람들이 부채를 탕감 받고 자유를 얻었듯이,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 죄를 용서받고 은총을 얻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희년은 구약성경에서 유래했는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법에 따라 50년마다 한 번씩 축제를 거행했는데, 이때 모든 부채를 탕감하고,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라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1300년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이 이 축제에서 유래한 희년을 선포하면서 교회 안에서 희년을 지내게 됐고 5번째 희년부터 성문을 여는 예식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요한 10,9)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성문을 통과한다는 것은 이 말씀처럼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 죄를 버리고 은총으로 들어가겠다는 결심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물론 상징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문을 통과하는 사람은 희년의 대사(大赦)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 받지만, 이미 지은 죄에 대한 벌은 갚아나가야 합니다. 이 벌을 면해주는 것이 대사입니다. 대사는 나를 위해서도 얻을 수 있지만, 돌아가신 다른 분을 위해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문을 통과해야만 희년 대사를 얻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각 교구가 정한 희년 행사 참여나 순례지 방문, 자비의 활동 등으로도 대사를 얻을 수 있고, 또 희년 중 수도원, 병원, 요양원, 교도소 등에서 장소 이동이 불가능한 사람들은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며 주님의 기도와 신앙고백, 희년의 목적에 맞는 기도, 희생 봉헌 등을 통해서 대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들어가야 할 문은 우리와 아버지 하느님을 이어주시는 '문'이신 예수님입니다. 성문은 그것을 보여주는 상징이지요. 희년에 성문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성문은 희년에만 열리지만 예수님의 문은 회개하는 이들을 위해 언제나 열려있으니까요.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