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의 중심이 어디일까. 교구는 교회의 수위권자인 교황이 임명한 주교를 중심으로 이룬 교회공동체(교회법 제389조)다. 그렇다면 교구의 중심은 교구장 주교이고, 장소적으로는 교구장 주교가 앉는 곳, 바로 주교좌다. 교구의 주교좌, 정자동주교좌성당을 찾았다.
■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 그리고 주교좌
외국의 주교좌성당(Cathedral)은 흔히 대성당이라고 번역되곤 한다. 주교좌성당이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것은 교회 안에서 그만큼 큰 위상을 지니기 때문이다. 모든 주교좌성당은 규모나 역사, 건축 양식에 관계없이 로마에 자리한 4개의 대(大) 바실리카성당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이다. 교구 안에서는 가장 중요한 성당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자동주교좌성당은 중요도 면에서도 그렇지만 '대'성당이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다. 실제로도 큰(大) 성당이기 때문이다. 지하 1층, 지상 5층에 건축면적 6611㎡에 달하는 이 성당은 높이만도 50m가 넘는다. 아파트로 치면 15~18층에 달하는 상당한 높이다. 게다가 외벽이 연회색의 화강암으로 둘러싸여 있어 굳건한 성벽처럼도 보인다.
무엇을 지키는 굳건한 성벽일까. 성당 입구에 새겨진 문장을 보며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의 주교 문장이다.
이 주교의 문장에는 교구를 상징하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청색은 교구 주보인 평화의 모후를 상징하고, 칼과 종려나무, 죄인의 목에 채우던 칼의 형상은 교구가 순교자들의 피와 그 영광 위에 세워진 교회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문장 전체를 가로지르는 방패 형상은 교리와 교회를 수호하는 주교의 직무를 나타낸다. 마치 주교좌성당의 크고 굳건한 모습과도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방패 형상의 중앙을 수원 화성의 성곽을 형상화한 선이 가로지르고 있어 우리 교구 공동체를 지켜주는 튼튼한 성벽이라는 느낌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화강암으로 완성된 성당 외벽
교구 공동체 지키는 상징 역할
제대 둘러싼 12사도 목각부조
신앙선조 순교 상징물 등 다채
성당에 들어서면 더욱 주교좌성당의 의미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제대의 십자가상을 중심으로 12사도의 대형 목각부조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12사도 조각을 떠올리게 하는 이 목각부조들 위에는 각 사도들을 상징하는 상징물이, 그 위로는 성령을 상징하는 불꽃과 비둘기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한가운데 주교의 의자, 주교좌가 자리하고 있다.
사도들과 성령의 형상은 주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로 주교가 성령을 통해 사도들의 지위를 계승하는 목자이기 때문이다.(교회법 제375조) 예수님이 임명한 사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 공동체를 이끌었고, 오늘날 주교들은 그 사도들의 후계자로서 교리를 수호하고 교회 공동체를 사목하고 있다. 교회의 예식 안에서 주교가 앉는 주교좌는 그런 주교의 권위와 가르침, 그 직위를 상징한다. 그렇기에 주교좌(cathedra)라는 말이 성당 자체를 일컫는 표현이 된 것이다.
■ 한국 순교성인을 기억하는 곳
예로부터 주교좌성당은 '문맹자의 성경'이라고 불렸다. 주교좌성당 곳곳을 가득 채운 성미술들이 예술적인 가치를 지닌 것에 그치지 않고 성경의 일화와 교회의 가르침을 글을 읽지 않고도 알 수 있도록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정자동주교좌성당은 중세 유럽의 주교좌성당처럼 성경 속 일화를 담은 수많은 성미술로 가득 찬 성당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성미술을 통해 성당의 주보성인이기도 한 한국 순교성인들을 기억할 수 있다. 일단 3층 대성당을 들어가는 입구에서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느낄 수 있다.
대성당 문의 좌우측과 상단에는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굽히지 않고 순교를 향해 묵묵히 걸어갔던 신앙선조들의 모습이 목각으로 담겨 있다. 칼을 쓴 옥중의 신자에서부터 조선시대의 다양한 방법으로 형벌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받던 신자들, 처형을 위해 형장에 끌려가는 신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리고 양쪽 문에는 그런 신앙선조들이 성모 성심 아래, 예수 성심 아래 모여 있는 모습이 담겼다. 하느님을 향한 문은 결코 평탄하거나 안락하지 않고, 예수님이 그러셨듯, 순교자들이 그랬듯 수난과 죽음이 동반하는 고통의 길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 문을 열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 천장을 바라보면 그 고통의 길의 끝을 묵상할 수 있다. 성당 천장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돔 형태의 조명에는 원의 가장자리에는 한국 순교자들의 형상이 그리고 중앙의 움푹한 돔 안에는 12사도의 형상이, 그리고 정중앙에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형상이 있었다. 순교의 끝에 마주한 천상교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다. 그리고 그 그림에서 내려오는 빛이 성당 전체를 밝히는 모습이 마치 성인들과 사도들의 전구로 그리스도의 빛을 가득히 받은 지상교회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