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종합]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월 18일 교령을 발표,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처형된 가르멜 수녀회 순교자 16명의 시성을 선포했다. 이날 시성이 확정, 선포된 성인은 콩피에뉴의 거룩한 강생 맨발 가르멜 수녀회 소속 성 아우구스티노의 데레사 복자와 동료 순교자 15명이다.
프랑스 혁명 정부는 1790년 수도생활을 금지했고, 콩피에뉴의 가르멜 수녀회는 2년 후 수도원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1794년 이들이 수도 공동체 생활을 계속한 것이 발각됐고, 재판을 거쳐 7월 17일 공개적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수녀들이 순교한 며칠 뒤인 7월 28일 공포정치가 막을 내렸고, 성 비오 10세 교황은 1906년 5월 26일 순교자들을 시복했다.
이날 시성이 선언된 가르멜회 수녀들은 프란치스코 풀랑크의 1956년 오페라 '가르멜회 수녀들의 대화'(Dialogue of the Carmelites)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한편 교황은 이날 별도의 교령을 통해 2명의 순교 사실과 3명의 영웅적 덕행을 공식 인정했다. 1942년 러시아 감옥에서 순교한 에두아르 프로피틀리히(Eduard Profitlich) 대주교는 1890년 독일에서 태어나 예수회에 입회, 사제품을 받았다.
에스토니아교구장 서리로 임명된 그는 1940년 소련의 점령 후에도 에스토니아에 남아 있었다. 독일이 소련을 공격한 1941년 체포돼 러시아로 이송됐고 반소련 선동 및 간첩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1942년 2월 22일 혹한 속에서 사망, 순교했다.
교황은 또 평신도인 피에르 구르사(Pierre Goursat)의 영웅적 덕행을 인정했다. 엠마누엘 공동체의 창립자인 그는 미디어를 복음화의 도구로 활용하는데 헌신했다. 1951년 프랑스 시네마 클럽을 창립하고 1960년 프랑스 가톨릭 영화사무국 사무총장으로 활동했으며 칸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에도 참여했다. 평신도 카리스마 쇄신에 적극 나서 1972년 엠마누엘 공동체를 창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