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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 사설/칼럼
2024.12.2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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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빈 평화칼럼] 군인은 로봇이 아니다
서종빈 대건 안드레아(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쇼크는 국군 장병들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안겼다. 전시나 사변 등 국가비상사태가 아닌데도 군인을 동원해 자신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입을 막고 정적을 제거하려 했다. 동원된 군인만 1500여 명에 달한다. 대부분은 상관의 명령에 따라 영문도 모른 채 출동했다. 작전 지역에 가서야 비로소 계엄령에 따른 것임을 알았다.

대한민국 국군은 국민의 군대다. 국군 통수권자 개인의 사병(私兵)이 아니다. “국가를 방위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의 통일에 이바지하는 것”이 군인의 사명이다.(군인복무기본법) 군인의 의무는 충성·성실·정직이고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렇다면 이번 계엄처럼 사전에 알지 못한 부당한 명령도 따라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군인은 합법적인 명령만 따라야 한다. 군 윤리에 따르면 군인이 따라야 하는 명령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법규를 위반했는지, 상관의 권한 범위 안에 있는지, 임무와 관련된 명령인지 살펴야 한다. 대통령의 계엄령이 헌법적 권한이라 할지라도 요건에 맞아야 하고 명령 하달은 계엄사령관의 입에서 나와야 한다. 그런데 이번 계엄령의 병력 투입은 계엄사령관도 모르게 진행됐다. 권한 밖의 명령이다. 또 중앙선관위 점거와 정치인 체포·구금을 위해 정보사와 방첩사에는 본연의 임무에 반하는 명령이 내려졌다.

계엄에 동원된 장성급 지휘관들은 합법적 명령인지 여부를 상관에게 되묻지 않았다. 지휘관이 직속상관으로부터 받은 명령을 자기 부하에게 내릴 때는 자신의 명령이 된다. 그래서 계급이 높은 지휘관일수록 명령의 합당성 여부를 늘 따져야 한다. 명령을 식별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은 군 복무규정 위반이다.

2013년 10월 당시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원 댓글 수사 외압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지시는 따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위법한 지시는 지시 자체가 위법한데, 그것을 어떻게 따릅니까? 이의 제기해서 안 받아들여지면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까?” 위법한 명령을 거부했던 윤 대통령은 자신의 과거 발언을 뒤집으며 위법한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 사태의 핵심 장성들은 부당한 명령에 불응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고 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중장)은 “명령 이행의 의무감과 결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군인으로서 명령을 따랐다”며 부하들의 선처를 호소했다.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중장)은 대통령의 국회 무력진압 명령은 이행하면서 “부하들이 범법자가 될 수 있어 의원들을 강제로 끌어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상현 제1공수특전여단장(준장)은 소극적인 명령 거부 행동으로 실탄을 불출하고 민간인은 절대 공격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그는 “출동한 특전사 부하들에게 제발 반란군의 오명을 씌우지 말아달라”며 “무능한 지휘관인 자신을 만난 게 그들의 잘못”이라고 했다. 김현태 707특수임무단 단장(대령)도 “자신은 부대원을 사지로 몬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휘관”이라며 “부대원들은 죄가 없다”고 자책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름 모를 전선에서 조국을 위해 죽어갈 때 그 자리는 무덤이 되고 군복은 수의가 된다. 그만한 각오로 군복을 입었으면 매 순간 명예로워라. (지휘관의) 모든 결정(명령)엔 전우들의 명예와 영광, 사명감이 포함돼 있다.”

이번 계엄시 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았거나 어쩔 수 없이 따르면서도 소극적으로 명령을 거부한 하급 지휘관과 병사들에 대해선 책임의 경중을 따져 선처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와 국회는 출동한 장병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군심(軍心)을 하나로 결집하는 데 나서야 한다. 그래야 군인이 명예롭게 나라를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