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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복음/말씀 > 전례와 생활
2024.12.18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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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성 가스파르 델 부팔로 (12월 28일)
1786~1837년,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설립자
가스파르 델 부팔로 성인. 사진=굿뉴스

1786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에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가스파르 델 부팔로 성인은 세례받을 때 어머니에게서 동방 박사들의 전통적 이름인 ‘가스파르 멜키오르 발타사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가스파르는 어릴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시력을 잃을 위험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그의 어머니가 예수 성당에 모셔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유해 앞에서 간절히 전구를 청해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어머니 영향으로 가스파르 역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을 특별히 공경했습니다.

가스파르는 예수회가 설립한 최초의 대학인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교육받고, 1808년 7월 31일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그는 시골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의 모임을 조직하고 고아와 가난한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또 노숙자를 위한 야간 보호소를 마련하는 등 활발한 사목활동을 펼쳤습니다.

180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로마를 점령한 뒤 비오 7세 교황을 프랑스로 추방했습니다. 성직자들에게는 자신에 대한 충성 맹세를 강요하자 가스파르는 이를 거부한 다른 성직자들과 함께 체포되고 맙니다. 그리고 로마 밖 피아첸차·볼로냐·이몰라·루고·피렌체의 감옥을 전전하다가 4년 만인 1813년 말 로마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로마로 돌아온 가스파르는 막 재건되기 시작한 예수회에 합류할 생각도 했지만, 시대적 필요와 비오 7세 교황의 요청에 따라 혼란스러운 당대에 복음을 선포하는 사목에 전념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가스파르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1815년 움브리아의 지아노에 있는 산 펠리체 수도원에서 성혈 흠숭 선교회를 설립해 교황 승인을 받았습니다.

가스파르는 나폴레옹의 통치 기간, 어려움 속에도 황폐해진 이탈리아 중부 전역, 특별히 교황령 지역의 재복음화를 위해 쉬지 않고 노력했습니다. 많은 도시가 행정 당국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도적들이 해안 지방 마을을 장악한 상황에서 가스파르는 복음을 전하고 성당을 세우며 교육활동을 강화하고 자선사업에도 큰 공을 들였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성혈에 대한 신심을 전파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가스파르는 세상 복음화가 자신이 세운 선교회의 목표임을 늘 강조했습니다.

가스파르는 1837년 병환으로 쇠약해졌음에도 콜레라가 만연한 로마로 가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영적 돌봄을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28일 선종해 로마의 트리비오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에 묻혔습니다. 가스파르는 1904년 성 비오 10세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고, 1954년 6월 12일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