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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 여론
2024.12.2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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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 상징에 청년 상생·화합 담았더니 교황도 알아봤다
서울 WYD 로고 제작한 홍익대 환경미술연구소 진수현(26)씨, 특별한 경험과 보람 느껴


“저 역시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주제성구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로 많은 위로를 받았거든요. 로고를 제작하면서 ‘청년’이란 존재에 대해 고민해봤는데, 청년은 처음으로 자유가 주어지는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기에 서울 WYD 주제 성구는 갑자기 자유에 따른 선택과 책임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안과 두려움, 막연함을 느끼는 청년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말인 것 같았어요.”




겸재 정선 작품에서 영감 얻어

비신자 청년에게도 교회의 진심이 가닿았던 걸까? 서울 WYD 로고를 제작한 홍익대학교 환경미술연구소 연구원 진수현(26)씨가 전한 교회와 WYD에 대한 첫 인상이다. 서울 WYD 로고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세 개의 시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최종 확정됐다. 선택된 로고를 제작해 화제에 오른 진씨는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산수화인 국보 ‘인왕제색도’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정선이 청년 시절부터 친구인 이병현 시인의 쾌유를 기원하며 우정과 그리움을 담아 그렸다고 해요. 저 역시 WYD의 의미를 찾던 중 전 세계 청년들이 모여 상생과 화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로고에 담았습니다.”

비신자로서 교회의 큰 대회 로고를 제작하는 데에 낯선 것도 많았다. 진씨는 “교회 고유의 상징과 표현 방식들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며 “그럴 때마다 신자 교수님과 신부님들께 자문을 구하면서 극복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교황청이 최종적으로 자신이 제작한 로고를 채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엔 그 기쁨이 컸다.

진씨는 “사실 전문가가 제작한 로고도 전 세계인이 참여하는 행사에 채택되기 쉽지 않은데, 학생 신분으로 그것도 비신자인 제 디자인이 선정돼 놀랍고 영광스러웠다”며 “지난 9월 주제 성구와 로고를 교황청이 공개했을 때 바티칸에서 그 순간을 함께하며 매우 뿌듯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회 문화와 예술을 접할 수 있었던 로고 제작과 바티칸에서의 경험은 작가를 꿈꾸는 제게도 너무나 특별했다”면서 “로고를 보는 전 세계 젊은이들도 낯선 동양 문화에 호기심을 갖고, 제가 다른 문화를 바라보며 느꼈던 특별함을 반대로 경험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4년 9월 24일 교황청 성 비오 10세 홀에서 열린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기자회견 ‘서울 WYD 2027로 가는 길’에서 서울 WYD 주제 성구와 로고가 공식 발표된 이후 로고를 제작한 진수현(왼쪽에서 두 번째)씨를 비롯한 한국 교회 청년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OSV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이수홍 학장과 환경미술연구소 진수현씨가 로고 제작 작업 노트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세례받기로, 세례명도 미리 정해

이번 작업을 계기로 세례를 받고 주님의 자녀가 되고 싶다는 소망도 전했다. 진씨는 “바티칸 방문 당시 서울 WYD 지역조직위원회 총괄 코디네이터 이경상 주교님께서 세례명을 ‘스콜라스티카’로 지어주셨다”며 “마침 박사 진학을 고민하기도 했는데, 성인의 삶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저와 관련이 깊다고 생각했다”고 소회했다.

진씨를 비롯한 학생들의 4개월간의 제작 과정을 지켜본 홍익대 미술대학 학장 이수홍(사무엘, 서울대교구 연희동본당) 교수도 기특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전 세계 100만 명의 젊은이가 참가하는 대회 로고를 제작한다는 게 학생들에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면서도 “서울 WYD 취지에 맞게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유롭게 제작하도록 박현주 교수·서정덕(안젤라) 교수와 함께 편안한 환경을 마련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저도 오랜 기간 교회에서 미술 봉사해왔다”며 “서울 WYD 개최 소식을 들었고, 도울 수 있는 방향을 검토하다 홍익대 환경미술연구소 차원에서 제작 의뢰를 받아 본격적으로 맡게 됐다”고 했다.

이 교수는 “가톨릭 신자 입장에서 서울 WYD 개최 소식은 멋지고 즐거운 일”이라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라고 하신 말씀처럼 문화적으로 전 세계인이 어울리는 데 우리 학생들이 이바지하게 됐다는 사실이 매우 기쁘다”고 대회를 향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