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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성혈 기적 성지 장크트 게오르겐베르크 수도원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32. 오스트리아 장크트 게오르겐베르크 수도원

오스트리아 카르벤델 산맥과 인 계곡이 만나는 슈탄스 마을 뒤 산봉우리에는 수도자와 순례자들의 삶이 교차하던 오랜 신앙의 장소가 있습니다. 장크트 게오르겐베르크 수도원으로 빌텐 수도원과 더불어 티롤 북부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입니다. 14세기 ‘성혈의 기적’이 일어난 곳으로 잘 알려졌지요.
장크트 게오르겐베르크 수도원으로 가는 순례길은 슈탄스 마을 끝에서 십자가의 길과 함께 시작됩니다. 지금은 숲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누구든지 쉽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각 처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며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암벽 위의 수도원이 서서히 눈에 들어옵니다. 마지막으로 협곡을 가로지르는 40m 높이의 석조다리를 건널 때면 세속과 성소의 문지방을 넘는 듯하지요.
수도원 경내 오른쪽 언덕에 소성당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3세기에 순례자를 위해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린덴키르헤’입니다. 정식 이름은 ‘라임 나무 아래의 성모 성당’인데요, 그 이름에 이곳의 기원이 담겨 있습니다.

티롤의 영적 중심지였던 성 제오르지오의 산
950년 무렵 바이에른 귀족인 라톨트 폰 아이블링은 산티아고를 순례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곳 계곡의 동굴에 정착해 은수 생활을 시작합니다. 곧 사람들이 모여들어 수도 공동체를 이뤘는데, 공동체는 라임 나무가 있는 곳에 목조 소성당을 짓고 순례에서 가져온 성모상을 모셨다고 합니다. 바로 현재 수도원의 시작이었지요.
장크트 게오르겐베르크는 1097년 신성로마제국 하인리히 4세 황제가 성 제오르지오 성해 일부를 수도원에 기증하면서 순례의 발길이 시작됩니다. 황제는 여섯 곳의 농장까지 선사하며 수도원의 경제적 기반을 공고히 했습니다. 아마도 이때부터 성 제오르지오의 산이라는 뜻의 ‘장크트 게오르겐베르크’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황제가 왜 이런 산속의 수도원까지 챙겼을까? 하인리히 4세는 카노사 사건의 주역으로 북부 이탈리아의 패권을 공고히 하고자 교황과 서임권을 놓고 충돌도 불사했던 황제였습니다. 인강에서 지척인 장크트 게오르겐베르크는 이탈리아로 오가면서 맨눈으로도 잘 보이는 성지였습니다. 그래서 황제는 중세 기사들의 이상형이었던 용을 무찌른 성 제오르지오의 성해를 여기에 모셔서 북부 티롤 지역에서 황제로서 권위와 제국 교회의 위상을 높이려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 뒤로 이곳을 관할하던 브레사노네교구장 하르트만 주교는 교구민에게 성 제오르지오 순례를 적극적으로 장려했지요.
1138년 레긴베르트 주교는 체계적인 순례 사목을 위해 수도 공동체를 베네딕도회 수도원으로 승격합니다. 같은 해 4월 30일 인노첸시오 2세 교황에게 인준도 받습니다. 당시 수도원은 아헨호에서부터 브레사노네 교구 북쪽 경계까지 아헨 계곡 전체 지역을 기부받아 영적·문화적 중심지로 티롤 북부 지역의 복음화에 매진하지요.


미사 중 성혈의 기적이 일어나다
하지만 산에서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공간은 비좁고, 생필품 수급도 쉽지 않았습니다. 14세기 말에는 페스트로 수도원장과 8명의 수도자가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적은 화재였습니다. 1284년 6월과 1448년 11월의 큰 화재로 수도원이 거의 불타버리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런 역경에서도 수도 공동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1310년경 미사 중 일어난 기적의 은총 덕분일 겁니다.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축복한 직후, 성작의 포도주가 끓기 시작하더니 넘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사제는 평소 예수님의 현존을 의심하곤 했는데, 미사 중 성혈로 바뀌는 성변화를 목격하게 된 것이죠.
기적이 일어난 후 순례자의 열기는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15세기 말 린덴키르헤는 순례자를 위해 증축되었고, 1525년 지금의 두 종탑도 완성되었죠. 1480년도에 작성된 수도원 연대기를 보면 제대포에 묻은 성혈은 막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같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혈이 묻은 제대포 조각은 오늘날까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어 주님 수난 성금요일, 성 제오르지오 기념일 등에 순례자들에게 현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수도원 성당인 게오르겐키르헤입니다. 성당에 들어서면 이곳 순례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삶을 주제로 한 주 제단, 성 야고보 사도와 복자 라톨트 성상, 천장 프레스코화에 이곳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잘 나타나 있지요.

지역민의 신심으로 유지된 순례지
1708년 수도 공동체는 산 위에서의 생활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637년, 특히 1705년의 산불로 회복하기 힘든 큰 피해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산 아랫마을에 피히트 수도원을 크게 지어 이주합니다. 하지만 이를 안타까워한 마을 주민들의 열망으로 산 위의 성당을 새롭게 후기 바로크·로코코 양식 성당으로 아름답게 재단장합니다. 아까 지나온 다리도 이때 새로 지었지요. 그 간절한 마음 덕분에 2019년 수도원이 산 아래 생활을 과감히 정리하고, 다시 산 위로 돌아올 때까지 300년 넘게 사랑받는 순례지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매년 수도자와 주민들은 여러 차례 함께 장크트 게오르겐베르크를 순례했고,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당 마당에 자리한 비어가르텐에 앉으면 인강 유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천 년 넘게 저 아래로 수많은 이가 이탈리아를 오갔습니다. 이곳을 들르지 못하더라도 늘 바라보며 하느님 축복과 은총을 갈망했을 겁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그런 곳이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 인스브루크에서 자동차로 30분 소요, 인스브루크역에서 매시간 슈탄스/슈바르츠까지 기차가 다닌다. 슈탄스에서 수도원까지 도보로 1시간 이동하거나 택시 이용. 하산할 때는 ‘볼프스클람’ 협곡 탐방로를 따라 내려오길 권한다.
※ 여름철(5~10월)에는 매달 13일에 야간 순례가 있다. 수도원 미사 : 주일 및 대축일 10:30·15:00, 평일 11:00(월~금)·15:00(토).
※ 유럽의 다른 순례지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는 「독일 간 김에 순례– 뮌헨과 남부 독일」(분도출판사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