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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 (38) 토끼와 거북이(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1145년 고려 인종 때 김부식 등이 편찬한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보장왕의 신하 선도해가 신라의 김춘추에게 들려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있다. 동해 바다 용왕의 딸이 병에 걸리자 치료 약으로 쓸 토끼의 간을 구하러 육지로 올라간 거북이가 토끼를 꾀어 데려가지만, 토끼가 재치있게 그 상황을 모면한다는 유명한 이야기다.
조선 후기에 판소리인 ‘수궁가’와 고전 소설 「토끼전」으로 개작된 이 이야기에서 토끼의 지혜는 거북이를 이겼다. B.C. 6세기경 그리스의 이솝이 지은 우화에는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는 느리지만 부지런히 기어간 거북이의 노력이 토끼를 이겼다. 이처럼 토끼와 거북이는 옛날부터 인간에게 교훈을 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현실에서 두 동물의 특징을 비교하면 어떠할까? 우선 가장 큰 차이점은 수명이다. 야생 토끼의 수명은 평균 2~3년으로 짧다. 거북이의 수명은 일반적으로 100년 안팎으로 알려져 있으며 육지 거북이의 일부는 200년까지도 산다. 그래서 거북이는 인간에게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토끼는 생태계 먹이 사슬 하위 단계에 있는 초식동물이라 늘 포식자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사회생활을 하는 습성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스트레스는 코티솔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고 면역 시스템의 약화를 가져와 각종 질병에 취약해져 수명을 짧게 한다. 반면 단독 생활을 하는 거북이는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며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강해 질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세포 노화를 결정하는 염색체 말단인 텔로미어를 재생하는 능력이 있어 세포 노화가 더디다.
또 포유류인 토끼는 체온이 일정한 정온동물이라 체온 유지에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며 그만큼 먹이를 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하지만 파충류인 거북이는 주변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이라 토끼처럼 체온유지에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으므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다른 동물보다 신체 대사 속도가 5배 정도 느려 적은 양의 먹이로도 생존이 가능하다.
사람도 거북이처럼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적게 먹으며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한다면 더 건강하고 즐겁고 오래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니체는 늙어감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어떻게 늙어 가는지는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연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거북이의 지혜, 느림의 미학을 선택하면 어떨까?
7월 넷째 주일은 교회가 정한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언젠가는 노인이 되고 조부모가 된다. 2024년 12월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024만 4550명으로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가 되었다. 오랜 시간 흐르는 물이 바위와 흙을 깎아 깊은 계곡을 만들며 시간의 역사를 새겨넣듯이 자식들과 젊은 세대의 미래를 위해 노년 세대가 흘린 땀과 희생은 그들의 손과 얼굴에 계곡 같은 주름을 만들었다.
그렇게 노년의 부모·조부모의 손과 얼굴에는 인고의 세월을 지나온 역사가 담겨있다. 우리가 그분들을 공경해야 하는 이유다. ‘너희는 백발이 성성한 어른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을 존경해야 한다.’(레위 19,32)
전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