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로마가 전 세계에서 몰려든 젊은이들로 들썩였다. 약 100만 명에 달하는 청년·청소년 '희망의 순례자'들이 레오 14세 교황을 직접 만나는 감동과 더불어 인종, 국적을 불문하고 신앙으로 하나된 일치의 축제를 즐겼다. 7월 28일부터 8월 3일까지 로마 일대에서 열린 '젊은이들의 희년'을 스케치한다.

"여러분이 바로 이 세상의 빛입니다"
개막미사가 봉헌된 7월 29일 미사 시작 3시간 전부터 엄청난 인파가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성 베드로 광장으로 모였다. 순례자들은 이미 전날부터 산탄젤로성(Castel Sant''Angelo)부터 성 베드로 광장까지 이어지는 '화해의 길'(Via della Conciliazione)을 희년 십자가를 들고 행진했다. 본격적인 대회 시작을 앞두고 로마가 젊은 그리스도인들로 북적이며 활기를 띠었다.
개막미사를 위해 광장에 자리 잡은 순례자들은 인종과 성별, 국가에 상관없이 한데 어울려 성가를 부르거나 성 베드로 대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등 축제를 즐겼다. 국기를 높이 들고 흔들며 일행을 찾고, 한편에서는 더위를 피해 그늘에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눴다.
개막미사는 교황청 복음화부 세계복음화부서 장관 직무대행 리노 피지켈라 대주교 주례로 봉헌됐다. 이날 개막미사 마침 강복 후에는 레오 14세 교황이 깜짝 등장했다. 교황이 광장에 나올 것이라는 피지켈라 대주교의 말에 장내가 놀라움 속 환호성과 박수로 가득 찼다.
교황은 포프모빌을 타고 순례자들과 만난 뒤, "여러분은 앞으로 며칠간 로마를 넘어 전 세계에 희망의 메시지와 빛을 전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더불어 참가자 중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온 청년들을 위로하며 "전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이와도 연대하자"고 제안했다.


로마를 순례 열기로 더욱 뜨겁게…'참회의 날'에는 차분하게
젊은이들의 열기는 개막미사를 기점으로 로마 전체로 퍼져나갔다. 7월 29일부터 31일까지 열린 '도시와의 대화'에서는 프랑스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의 삶과 죽음을 다룬 연극이 무대에 올랐고, 전쟁의 고통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온 우크라이나 청년들이 유럽 각국의 청년들과 함께 모여 기도하는 행사도 열렸다. 이 밖에도 사흘에 걸쳐 70여 개의 체험 부스가 젊은이들을 맞이했다.
대회 프로그램뿐만 아니었다. 2025년 희년을 맞아 로마에 운영되고 있는 희년 공식 안내 사무소와 공식 스토어 등에도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특히 각종 굿즈를 비롯한 희년 기념 소품을 판매하는 공식 스토어는 '젊은이들의 희년' 덕분에 더욱 활기를 띠었다. 판테온, 스페인 광장, 콜로세움 등 관광지에도 국기를 두르고 행진하는 순례자들이 눈길을 끌었다. 더위를 이겨내고자 라테라노 대성당 앞 분수에서 물놀이하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8월 1일 '참회의 날' 로마 키르쿠스 막시무스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그간의 달아오른 열기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차분했다. 과거 로마 제국 시대 전차 경기장이었던 키르쿠스 막시무스의 넓은 들판에는 임시 고해 부스 약 150개가 설치됐고, 흥겨움에 겨워 로마 시내를 휘젓고 다니던 수많은 젊은이가 이날만큼은 참된 속죄를 위해 경건한 표정으로 키르쿠스 막시무스에 입장했다. 그토록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던 국기도 고해를 위해 고이 접었다.


밤샘 기도와 폐막미사…희망과 평화를 전 세계로
"예수님의 친구로 남기를 기도하고, 만나는 모든 이의 여정에 동행하는 벗이 됩시다"
8월 2일 오후 3시부터 로마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13km 떨어진 토르 베르가타(Tor vergata) 평원에서 '교황과 함께하는 밤샘기도'와 환영 행사가 열렸다. 많은 인파를 고려해 평원을 중심으로 인근 도로, 버스 정류장, 전철역이 모두 통제됐다. 순례자들은 뙤약볕 속에 밤샘을 위한 짐까지 짊어지고 최대 7.5km를 걸어야 했지만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헬기를 타고 도착한 레오 14세 교황은 개막미사 때와 같이 포프모빌을 타고 순례자들을 만났다. 100만 인파가 모인 구역을 모두 돈 교황은 제대로 향하는 중앙 통로 앞에서 내려 희년 십자가를 직접 들고 각 나라의 대표 청년들과 함께 행진했다.
교황은 삶과 신앙에 고민을 품은 젊은이들의 질문에 답했다. 문답 말미에 평원을 가득 채운 모든 젊은이에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볼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그분 안에서 하나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 희년 행사에 참석하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선종한 이집트와 스페인의 두 청년을 애도하기도 했다.
이어진 성체 현시와 강복에서 젊은이들은 떼제 노래 등 성가를 벗 삼아 주님 안에 머물렀다. 누군가는 무릎을 꿇고 누군가는 두 팔을 하늘 위로 든 채 기도했다. 수많은 인파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다음날인 3일 같은 장소에서 거행된 폐막미사를 끝으로 젊은이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고민하고 불완전하다는 것 자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청년들을 향한 교황의 위로와 전쟁 종식,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을 공유한 젊은이들은 그 희망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할 사명을 간직한 채 전 세계로 파견됐다.

이형준 기자 june@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