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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 일반기사
2026.01.28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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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옹기는, 하느님이시다


한국 천주교 역사는 옹기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옹기라는 수단이 없었다면 한국 천주교가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을까? 난 우리나라가 선교활동 없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하느님을 받아들이게 된 건 한글과 옹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조선 시대 옹기는 요즘으로 보면 플라스틱 용기 같은 생활필수품이었다. 그랬기에 어느 고을에서나 쉽게 옹기점을 만날 수 있었다. 즉 흙과 땔감을 구할 수 있고 몸을 부릴 수 있는 옹기장이만 있으면 쉽게 생활 기반이 될 수 있었다. 거기다가 옹기를 팔기 위해 전국을 누빌 수 있어서 천주교인끼리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는 수단까지 되어주었다. 그러니까 옹기점은 천주교인들에게 안성맞춤이었고 이익도 꽤 크게 남았기에 공동체 터전이 되어주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가장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지점은 옹기에 새겨진 표식이나 문양이다. 알게 모르게 십자가나 물고기, 밀떡처럼 천주교를 상징하는 문양이나 표식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나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하여 정해박해 터인 덕실 옹기촌을 누비고 다녔다. 당시에 나는 무릎을 다쳐 비탈진 곳은 손을 짚고 기어 다녀야 했지만 눈을 부릅뜨고 다녔다. 그러니까 옹기 파편들의 기운으로 소설도 쓰고 「옹기에 그린 십자가」라는 그림책도 출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전국의 가톨릭 전시관에는 옹기가 아닌 청자나 백자 또는 분청사기가 전시된 경우가 있다. 곡성성당의 가톨릭 역사관도 마찬가지였던 까닭에 개관을 앞두고 나의 오지랖으로 주변 분들께 이와 관련해 말씀드리고 다녔다. 청자나 분청사기는 옹기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고, 유약과 불을 들이는 온도가 다르다고. 그뿐만 아니라 옹기는 하층민인 옹기장이들이면 누구나 구워낼 수 있는 생활용품이었지만 청자나 분청사기·백자의 경우는 나라에서 관장하는 관요나 지방요로 천주교인을 억압하는 주체들이었다고. 하지만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옹기터 교우촌 조상님들이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다가 까무러칠 것만 같아 숨이 막히기도 한다.

우리나라 조선 옹기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잿물 유약으로 구워낸 오지 그릇이다. 옹기는 한국 천주교의 역사이며 박해의 상징이다. 즉 옹기는 한국의 정신과 문화가 깃들어 있기에 국가유산으로 등재가 시급해 보인다. 설령 국가유산으로 등재되지 않을지라도 한국 천주교 역사의 증언자 역할을 이보다 잘해낼 기물이 어디 있겠는가.

더 확장해보면 로마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공동묘지 동굴인 카타콤바, 한국의 카타콤바가 바로 옹기가마인 것이다. 천주교인들뿐만 아니라 비신자들에게도 큰 영감을 줄 묵상의 장소가 될 것이다. 사심으로는 2027년 정해박해 200주년을 맞는 곡성의 덕실 옹기 교우촌에 옹기 전시관이 세워지고, 옹기가마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더욱 욕심을 낸다면 성 다마소 1세 교황이 카타콤바 순례를 장려한 것처럼 2027년 한국을 방문하는 교황님이 한국의 카타콤바, 옹기 가마터의 순례를 장려한다면 정해박해에 커다란 영성이 깃들 것으로 본다.

난 옹기에서 하느님 모습을 본다. 하느님이 우리를 흙으로 빚어냈듯이 옹기장이들이 흙으로 빚어낸 옹기는, 하느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