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질투[嫉妬]와 시기[猜忌]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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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1-04-15 | 조회수584 | 추천수3 | 신고 |
질투[嫉妬]와 시기[猜忌], 그 말이 그 말이라고 여기면 그만인 그 말을 굳이 따지려니 질투가 시기가 되지 않나 되레 걱정이다. 나의 질투가 시기로 발동하기에 몇 마디 관련자에게 제언한다. ‘질투와 시기’, 아예 따지려면 우리말의 정의부터 짚자. 여러 기준을 이리보고 저리보아도 그 기준이 그 기준이고 그게 그거다. 굳이 따지지 않는 게 맘 편하다. 우리말과 한자[漢字] 사이에 오는 문화적인 혼선이리라.
그렇지만 이 두 용어를 정의해 보자. 이것은 전적으로 소생의 판단이다. 나와 관련된 것이라면 질투이고 관련이 없다면 시기이다. 그리고 사랑과 연결된다면 질투이고 아니면 시기다. 이런 관점에서 발생 시기로 봐서 좋은 의미[사랑이 있기에]가 담긴 것이라면 질투이고 없다면 시기이다. 따라서 하느님에게는 질투뿐이지 시기는 없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지금 성경 이해를 위한 용어 선택을 두고 몇몇 분이 갑론을박한다. 참 좋은 진지한 토론이다. 나는 이 토론을 질투심이 담긴 토론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왜냐면 그 토론의 중심에 하느님 말씀이 있고 하느님 사랑이 있기에. 토론의 내용 또한 너무너무 높은 수준이다. 신학교에서 토론하는 수준 이상으로 소생과 같은 보통의 평신도에게는 한편으로 어렵기도 하다. 그렇지만 성경의 이해와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기에 많은 도움이 되기에 깊은 관심으로 지켜본다. 어쩜 성경에 담긴 하느님 말씀을 두고 사랑싸움하는 몇몇 분의 해박한 논리가 소생의 짧은 성경 경험에 질투심마저 발동된다.
소생의 이 질투심으로 지금 하느님사랑의 말씀을 잘 다듬고자 진지한 갑론을박하는 분께 제안한다. 사랑이 담긴 질투는 좋다. 그러나 이 질투가 사랑이 없는 시기로 가는 것에는 반대한다. 이곳 토론장에는 변하지 않는 하느님 말씀의 진리가 있고 그 진리에는 버릴 수 없는 사랑이 가득하기에 감히 드리는 것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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