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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혹시 "비교와 대조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 ??? 카테고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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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삼용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09 조회수737 추천수2 신고

일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조규만 주교님 아래 글중에는 분명하게 "대조"라 되어 있습니다.
<"비교"와 "대조"의 차이>는 naver를 검색하면 나옵니다.
 

<<이하 아래 인용문 중에서>>
"또 유스티노 교부는 당시 하와와 성모 마리아를 대조하면서 이방인 티폰과 성모에 관한 논쟁을 벌인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명함으로써 인류를 하느님과 등지게 했지만,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 말씀에 순명함으로써 하느님과 관계를 회복시켰다는 것이다. 유스티노 교부의 대조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새 아담, 혹은 둘째 아담이라고 표현하고, 성모를 새 하와, 혹은 둘째 하와로 표현하기도 한다.

<< 이하 인용문 전체 >>

[조규만 주교의 성모님 이야기] <14> 마리아의 동정 출산은 하느님 기적

 

 

가르침과 성덕에 있어서 모범이 되고 교회 교리를 정립한 고대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을 교회는 ''교부'' 혹은 ''교회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교부학에서 교부는 8세기까지 교회에 가르침을 준 주교와 사제들을 주로 지칭한다. 그래서 토마스 데 아퀴노는 13세기 신학자이기에 교부라고 부르지 않는다. 또 교회 가르침을 올바르게 전해줬다는 정통성을 확보해야 하고, 교회에서 인준을 받아야 하며, 성덕이 출중하고 거룩해야 한다.

 이 교부들을 교회는 지역적으로, 시대적으로 구분한다. 지역적으로는 로마를 중심으로 문헌을 라틴어권에서 남긴 이들을 라틴 교부라고 부르고, 그리스권역에서 활동한 교부들을 그리스 교부 혹은 동방 교부, 시리아어권 교부들은 시리아 교부라고 부른다. 시대적으로는 서기 100년께에서 300년 사이를 초창기, 300년에서 450년까지를 중기 혹은 전성시대 교부들, 450년에서 700년까지를 말기 혹은 쇠퇴기 교부라고 부른다.

 당시 교부들 이름을 보면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이들이 많다. 유스티노, 이레네오, 이냐시오, 안아티오키아의 이냐시오, 클레멘스, 치프리아노, 요한 크리소스토모, 다마소, 레오 등이다. 또한 성인은 아니지만 오리게네스, 테르툴리아누스처럼 유명한 교부들도 있다.

 저자는 모르지만 책으로만 교부들 가르침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디다케(Didache)」라는 책은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이라는 말이 있지만, 저자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바르나바의 편지(Letter of Barnabas)」라는 초기 그리스도교 그리스어 저술도 있고, 「솔로몬의 송가(Odae Salomonis)」 같은 찬미가도 있지만 이 역시 지은이를 알 수 없다.

 당시 교부들은 초대 교회공동체에 문제가 생기거나 이단이 등장하면 답을 찾다가 신학을 발전시켰다. 교부들은 325년 니체아공의회에서 성부와 성자와 관계에 대해, 381년 콘스탄티노플공의회에서 성령과 삼위일체에 대해, 431년 에페소공의회에서 ''하느님의 모친'' 성모 마리아에 대해, 451년 칼체돈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결합돼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놓고 논박하고 답변을 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교부는 「에페소교회에 보내는 편지」, 「스미르나교회에 보내는 편지」 등을 통해 성모에 관한 가르침을 남긴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교부는 특히 교부들 가운데 최초로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을 주제로 내세우면서 하느님의 신적 모성과 성모의 동정성에 대해 언급했다. 예수 수난과 죽음이 신비인 것처럼 동정 탄생도 신비로서 사람들에게는 감춰져 있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외경인 「야고보복음」, 「토마스복음」 등에도 동정성에 관한 대목이 있다. 「야고보복음」은 특히 성모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야고보복음」의 내용을 정리하면, 마리아가 3살 때 성전에 봉헌된 이야기를 비롯해 요셉이 사제들로 말미암아 배필로 선출된 이야기, 대사제 즈카르야가 벙어리가 되고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이야기 등이 나타난다.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요셉이 두려워하면서 고민하자 천사가 꿈에 성령으로 말미암은 잉태임을 알려주며 마리아를 보호하는 이야기, 사제가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고 요셉을 문책하고 마리아에게 쓴 물을 먹이면서 결백을 시험하는 이야기, 베들레헴 방문, 동굴에서 출산, 동방박사들의 방문, 동방박사들 이름도 나온다. 어떤 부분은 성경과 겹치고, 어떤 부분은 너무 황당하게 꾸며져 성경에서 제외됐다.

 「야고보복음」 같은 외경을 보고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마리아는 하느님 구원 계획에 의해 미리 선택됐고, 성모가 예수를 잉태한 것은 하느님 은총이며, 마리아 동정성은 하느님 섭리에 의해 요셉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다. 또 마리아의 예수 잉태가 요셉과 관계없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점은 마태오복음이나 루카복음에서도 똑같이 언급한다. 또 출산 때도 동정이 보존됐다는 것은 동정 출산이 하느님의 기적이며 하느님의 행위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 유스티노 교부는 당시 하와와 성모 마리아를 대조하면서 이방인 티폰과 성모에 관한 논쟁을 벌인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명함으로써 인류를 하느님과 등지게 했지만,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 말씀에 순명함으로써 하느님과 관계를 회복시켰다는 것이다. 유스티노 교부의 대조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새 아담, 혹은 둘째 아담이라고 표현하고, 성모를 새 하와, 혹은 둘째 하와로 표현하기도 한다.
정리=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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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삼용 (samuel820) 쪽지 대댓글

    교과서에는 “비교”는 둘을 견주어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이고, “대조”는 둘을 견주어 차이점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축구공과 야구공을 보고 둥글다는 점을 찾아내면 <비교>가 되고, 축구공과 야구공을 보고 크기가 다르고 딱딱함이 다르다는 점을 찾아내면 <대조>가 됩니다. 또하나 검색한 바로는 – “대조”의 뜻을 크게 두가지로 나누면 1. 서로 같은지 다른지 검토한다는 의미가 있는데요 이 의미로 사용 될 경우는 비교와 동의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장부를 대조한다. 장부를 비교한다. 둘 다 쓸 수 있는 말이구요) 2. 두번째는 서로 다름을 의미합니다. 이 둘은 서로 대조된다. 라고 쓰일때는 서로 다르다는 뜻

    2012-08-09 추천(0)
  • 이삼용 (samuel820) 쪽지 대댓글

    이므로 비교와 동의어가 될 수 없습니다. 결론은 비교와 대조는 1번의 뜻일 경우는 동의어이나 2번의 뜻일 경우는 서로 그 의미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더 상세정보는 naver에서 검색할 수 있음)

    2012-08-09 추천(0)
  • 박윤식 (big-llight) 쪽지 대댓글

    이삼용님, 정말 좋은 의미의 '용어'를 들추어 주셨군요. 이래서 믿음의 세게는 복잡하면서도 정말 단순한 것 같군요. '혹시 "비교와 대조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 그래요. 그 속에 소생도 포함되어 있겠죠. 소생 이제 누가 미워해도 '그분만'을 보려합니다. '새'가 붙는 사람들은 이제 눈을 때렵니다. 그 '새' 때문에 그분만을 보는 눈이 자꾸 감기더군요. 그분 계명 사랑만 보렵니다. 비교와 대조의 차이, 그리고 오해, 정말 정곡을 보셨군요. 좋은 지적주시고 좋은 자료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요 위에[베개는 아닙니다. 오해 마세요!] 누구 소생에게 비아양해도 그이를 사랑하는 '새사람'이 되렵니다. 감사합니다. ^^+

    2012-08-09 추천(0)
  • 이삼용 (samuel820) 쪽지 대댓글

    일부 댓글 임의로 삭제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그리고 저도 솔직히 박윤식 형제님과 아주 동일한 의구심을 가졌었고, 이번 기회를 통하여 <아주 우연히> <문득> "비교"와 "대조"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그 의구심을 나름대로 풀어봤기에 이를 확인해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만약 도움이 되셨다면 다행이고, 동의하신다면 저 또한 품고있던 의구심을 풀게되는 것이니 다행이라 생각이 듭니다. 형제님께 <아주 조금이라도> 기분 언짢게 해드렸다면 물론 사과드리고요 ~~! 저의 본심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형제님께서 잘 아시겠지만 ~~~ 좋은 하루되시길 ~~!!!

    2012-08-09 추천(0)
  • 박윤식 (big-llight) 쪽지 대댓글

    이삼용 선배님, 소생은 속좁은 저를 형제님의 글을 통해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열린 공간에서 왜 소생은 그 '우물안 개구리'였나를 발견했습니다. 참으로 부그러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서귀포시 '강정에서의 그 참사'에 한참을 울었는 데, 형제님의 '비교와 대조의 차이, 그리고 그 오해'를 읽고 이런 소생의 가슴을 치는 귀중한 말 한마디에 저는 이제 그 남의 '새'를 소생의 '새'로 탈바꿈을 할 자신을 얻었습니다. '사랑'이라는 그 '큰'것을 가지고요. 그리고 모든 이를 용서해야겠다고 지금 다짐중입니다. 정말 '비교와 대조'의 무의함 속에 그분, 오직 그분만을 볼 생각입니다. 심기 건드렸다면 이해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2012-08-09 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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