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신부림 강론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나요? 카테고리 |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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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진오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31 조회수4,067 추천수0 신고

8월 31일 화요일 서철 바오로신부님의 오늘의 묵상입니다.

'이렇게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의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길은 죽을 때까지 걸어야 하고, 죽어야 비로소 완성됩니다. 예수님의 ‘세례’와 ‘죽음’이 대비되듯이, 이 사랑의 길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그 사랑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완성하고자 끝까지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길이 죽어야 완성된다는 묵상이 그것도 비로소 완성된다면 사랑의 결과는 죽음으로 이해해야 하는건지 문의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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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윤식 (big-llight) 쪽지 대댓글

    찬미예수님! 박진오님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예, 당연히 신부님 강론에 의문을 가질 수 있고, 필요시 그 내용을 신부님과 공개 또는 비공개로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해석이 참으로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의 해석이라고해서 꼭 하느님의 참뜻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신부님의 강론은 오랜 신학교 생활에서 터득한 교리와 오랜 경험과 묵상의 결과에 의한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여겨지기에, 우리네 평신도의 생각보다는 하느님 뜻에 더 부합할 것이라는 확신만은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8월의 마지막 묵상글에서 바오로 신부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길은 죽을 때까지 걸어야 하고, 죽어야 비로소 완성됩니다.'라고. 그렇습니다. 사랑은 일회성이 아닙니다. 영원무궁 죽을 때까지 해야만 합니다. 그렇디고 지금 사랑때문에 '순교'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분의 첫째 계명인 '하느님과 이웃 사랑'을 하자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

    2021-08-31 추천(0)
  • 이정임 (rmskfk) 쪽지 대댓글

    찬미예수님! 박진오님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사실 우리들의 삶의 길은 언제든지 변화할 수도 있지만 변질될 수도 있는 가능성 또한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잘 살았는지에 대한 평가는 죽은 후에 가능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번 뉴스에서 전자 발찌를 끊고 두 명의 여성을 살해한 사람의 경우를 예를 들어 보면, 그 사람이 교도소에 있었을 당시에는 기독교인으로 아주 열심히 잘 살겠다고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드러난 결과는 그렇지 않은 걸 보면서, 사랑의 길은 죽을 때까지 걸어가갸 하는 길이고 죽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길 맞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길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되는 것으로 십자가의 죽음은 타인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영적으로 무질서한 나는 계속 십자가에 못 박아 죽고, 새로 부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은 일회성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걸어가야 하는 길이고 죽음으로써 완성되는...

    2021-09-01 추천(0)
  • 이승현 (snghyun2) 쪽지 대댓글

    찬미예수님!박진오님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잘은 모르지만 저의 생각을 달아보겠습니다. 묵상이 일종의 문학이라고 한다면, 윗글에서의 '죽음'은 육체의 죽음 보다는 다른 것을 상징하고 비유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은 희생을 의미하고, 그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이지만,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시작입니다. '죽음'이라는 표현이 나왔다고 너무 무서워하시거나, 허망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 보입니다.

    2021-09-10 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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