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주님 물음에 준비된 우리의 답은 / 연중 제33주간 월요일(루카 18,35-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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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11-17 | 조회수5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 물음에 준비된 우리의 답은 / 연중 제33주간 월요일(루카 18,35-4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가시는 길에 예리코를 지나실 때, 누군가가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라고 알려준다. 이 군중의 소리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큰 소리로 외쳐댔다. 그의 아버지가 ‘티매오’라고 알려진 것만으로도, 그는 아마도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음을 짐작할 수가. 비록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나자렛 예수님이라는 그 소리에 막무가내 그렇게 크게 외쳐 됐다. 아마도 바르티매오는 예수님께서 여러 지역에서 많은 설교를 하시고 병든 이를 치유하신다는 귀동냥을 수도 없이 듣고는 그분이 구세주임을 단단히 믿었을 게다. 그래서 그는 감히 자비를 요청하고 있다. 주위의 눈초리는 아예 안중에도 없이, 예수님께 무조건 베풀어 달라는 것이다. 많은 이가 제발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더욱더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거듭거듭 외친다. 바르티매오와 같이 요청만하면 우리 예수님은 그냥 가만히 버려두지 않으신다. 그가 온 힘을 다하여 요청하는 것을 아셨기에. 그래서 예수님은 가던 길 멈추시고는 ‘그를 불러오너라.’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그분께서 당신을 부르시네.’라며 알린다. 그분 부르심은 대단한 영광이요, 행운이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예수님의 치유의 은사를 이미 받은 게 틀림없다. 그는 쉽게 다가갔다. 예수님이 그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하고 물으시자, 그는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는 부름에 그렇게 준비되어 있었다. 눈먼 장님이었지만 보고 있었고, 앉아있었지만 언제라도 달려갈 서 있는 거지였다. 예수님이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이르시니, 그는 곧 다시 보게 되었다. 새롭게 눈 뜬 바르티매오는 하느님께 감사드림은 물론이고 실제 예수님을 따른다. 그것도 고통과 수난을 향해 길을 가시던 예수님의 그 길을. 우리도 티매오처럼 준비된 삶을 꿈꾸며 갈아가자. 그러나 실제로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니면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지는 않는지 성찰하자. 이렇게 간절한 청에, 하느님은 응답하신다. 무엇을 달라고 요청하지 않아도, 우리 요구를 들어주시고자 기다리신다. 물론 언제 어디서나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길 바라느냐?’라고 물으신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 막바지에 소경을 고치셨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두고 ‘나자렛 사람 예수’라 했지만, 티매오는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라고 고백하며 자비를 청했다.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진정 깨달아 아는 눈먼 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입을 막았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자신의 믿음을 고백했다. 결국 눈먼 이만이 참으로 눈을 뜨고 구원을 얻었다. 사람들은 외형적으로 눈을 달았지만, 예수님을 알려하지 않은 눈먼 이나 다름이 없었다. 사실 우리도 예수님의 물음에 언제라도 확실한 준비를 하고 있어야만 한다. 이 준비를 가지는 게 믿는 이의 기본적 삶이리라. 거지 장님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가 예수님 자비로 다시 광명을 얻었듯이, 우리도 평소의 그 믿음으로 그분 은총을 기도로 받아야만 할 게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라며, 이 시각에도 그분께서는 물으신다. 이 끊임없는 물음에, 우리는 준비된 답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리하면 그분께서 은총으로 들어주실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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