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 제2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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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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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3-17 | 조회수76 | 추천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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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주간 월요일] 루카 6,36-38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지난 주 평일의 복음은 ‘대당 명제’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최소한’의 규정을 그마저도 겨우, 마지못해 실천하는 모습을, ‘남들도 다 그러는데뭐’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따라하지 말고, 하느님께 사랑받는 자녀이자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특별한 존재로서 계명의 근본정신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오늘 복음은 그 가르침을 마무리하시면서 우리에게 하시는 엄중한 권고의 말씀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이 말씀은 그저 자비를 베풀라고 명령하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왜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그리고 하느님께 받아 누린 그 자비를 어떻게 베풀어야 하는지 그 방법을 깨우쳐 주시려는 겁니다. 우리가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이유는 자비로운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먼저’ 조건 없이 한 없는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도 이웃 형제 자매에게 ‘거저’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자비를 어떻게 베풀어야 할까요? 그 구체적 방법에 대해 예수님은 네 가지 동사로 설명하십니다. “심판하지 마라”, “단죄하지 마라”, “용서하여라”, “주어라”. 앞의 두 가지는 자비의 소극적인 실천으로써 적극적인 측면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이웃에게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웃을 비판하거나 단죄하려는 마음부터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된다”고 말씀하셨지요. 팔짱을 낀 채 째려보아서는 그 사람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가 잘 되기를 바라는 긍정적 지향과 호의를 가지고 보아야 그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내 안에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그 사람의 행동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건 ‘법’이 할 일입니다. 그 사람의 속마음과 의도를 판단하고 단죄하는 건 ‘하느님’이 하실 일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남을 심판하고 단죄하는 게 아니라, 그를 본보기 삼아 나 자신을 깊이 성찰하여 잘못을 식별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일입니다.
뒤의 두 가지는 자비의 적극적인 실천으로써 하느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먼저 한 없는 자비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도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내 이웃 형제 자매들에게 기꺼이 자비를 베푸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내 안에 ‘담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하느님을 ‘닮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에게 은총과 사랑을 충만하게 내려 주시지요. 여기서 주의할 점은 우리가 ‘되질하는 그 되로 돌려받는다’는 점입니다. 이는 우리가 먼저 자비를 베풀어야만, 베푼만큼만 은총과 복을 주시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조건부로 사랑하시는 까다로운 분도 아니고, 받은 만큼만 돌려주시는 속 좁은 분도 아니지요. 우리가 이웃에게 기꺼이 베풀고 나누어서 생긴 ‘빈 자리’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사랑을 담는 ‘그릇’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눈치보거나 아까워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베풀고 나누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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