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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귀향歸鄕의 여정 “자비로운 아버지를 닮아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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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5-03-30 조회수4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5.3.30.장미 사순 제4주일(Latare주일) 

 

 

여호5,9ㄱㄴ.10-12  2코린5,17-21  루카15,1-3.11ㄴ-32

 

 

 

귀향歸鄕의 여정

“자비로운 아버지를 닮아가는 삶”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

 슬퍼하던 이들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오늘은 “즐거워하여라(Latare)” 입당송 첫 라틴어 문자대로 래타레 주일이라 부르는 사순 제4주일입니다. 또 기쁨을 상징하는 장미색 제의처럼 장미주일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부활축제의 기쁨을 앞당겨 맛보는 주일이자 역시 귀향의 기쁨을 미리 체험하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그대로 집을 떠난 또 하나의 작은 아들인 우리의 귀향을 축하하는 미사잔치처럼 생각됩니다. 주님을 만난 기쁨을 노래하는 시편 34장 화답송도 흥겹기 한이 없습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좌우간 오늘 미사잔치에 참석하신 분들!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향의 기쁨을 맘껏 누리시길 바랍니다. 어제 영문 주석을 읽으며 한 단어에 완전히 사로잡혔습니다. “homecoming(귀향;歸鄕)”이란 말마디가 참 반가웠습니다. 즉시 강론 제목을 “귀향의 여정”이라 정했습니다. 

 

제1독서 여호수아기에서 보듯이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귀향의 여정중 길갈에 진을 치고 예리코 벌판에서 파스카 축제를 지낸 다음날 그땅의 소출을, 누룩없는 빵과 볶은 밀을 먹으니 그대로 귀향의 기쁨을 미리 체험합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역시 코린토교회 신자들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한 귀향의 기쁨을 고백합니다. 귀향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에게 신선한 활력을 제공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거룩한 사순시기,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를, 귀향의 기쁨을, 하느님의 의로움을 체험하는 이 복된 미사잔치 은총이 귀향의 여정중인 우리에게 샘솟는 활력의 원천이 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잃고 지내는지요! 고향이란 말만 들어도 마음이 설렙니다. 고향을 찾는 마음, ‘고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homesick at home)’ 역설적 존재인 사람들입니다. 고향을 찾듯이 영혼의 고향인 교회를 수도원을 끊임없이 찾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되찾은 아들의 비유이자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라 부를 수 있는 복음은 늘 들어도 샘솟는 감동과 영감을 제공합니다. 자비로운 하느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정말 잘 들어나는 복음중의 복음, 순복음입니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자비로운 아버지, 큰 아들, 작은 아들 모두가 나를 비춰주는 거울같은 분들입니다. 

 

돌아갈 고향집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돌아갈 본향의 고향집은 궁극의 희망이자 목적지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향집을 잃고 무명의 존재가 되어, 존재감없이 자녀다운 품위를 잃고, 길을, 희망을 잃고 익명으로, 되는 대로, 함부로, 막 살아들 가는지요! 아버지의 집을 떠나 방황하는 작은 아들은 바로 나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 극한 상황중에 있던 작은 아들에게 구원의 섬광처럼 떠오른 아버지가 계신 고향집이었습니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절망의 좌절상태에서 용기를 내어 벌떡 일어나 아버지가 계신 고향집을 향해 귀향의 여정에 오른 작은 아들입니다. 귀향할 아버지의 집이 없어 절망중에 목숨을 끊는 이들도 참 많을 것입니다. 마지막 희망의 끈, 귀향할 아버지의 집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살아 있는 한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향의 여정중임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의 오매불망, 노심초사 작은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대로 우리를 기다리는 자비로운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작은 아들을 환대하는 아버지의 환호가 감동자체입니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마시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바로 이것이 자비로운 아버지의 마음이자 모습입니다. 자비로운 아버지를 만나 본래의 존엄한 품위를 되찾은 작은 아들입니다. 이어 베풀어진 즐거운 잔치는 그대로 또 하나의 작은 아들들인 우리의 귀향을 축하하는 이 거룩한 미사잔치를 닮았습니다. 아버지의 관대한 조치에 불평하며 항의하는 편협하고 옹졸한 큰 아들의 모습 또한 우리 어둔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반면교사가 되는 작은 아들, 큰 아들 모두가 우리 인간의 보편적 모습입니다. 격한 감정으로 아버지에게 항의하는 큰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호소가 감동적입니다. 오늘 복음의 결론 같은 다음 말씀은 복음의 큰 아들은 물론 교회에서 모범적 신자생활을 하는 큰 아들같은 이들에게 크고 긴 여운을 남깁니다. 바로 자비하신 아버지의 진면목입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한다.”

 

여전히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복음입니다. 오늘 사순 제4주일 다해 강론을 제가 “하느님의 기쁨”이란 제목으로 최초로 한 것은 1989년 3월5일 부제때이고, 무려 36년이 지난 오늘도 제가 전혀 변한 것 같지 않으니 순간 깊은 좌절감도 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참으로 고맙게도 예수님은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통해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진면목을 보여주셨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빼다 닮은, 우리들이 닮아야 할 영원한 삶의 모범인 아버지의 외아드님 예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새삼 우리는 사랑 공부에 늘 영원한 초보자에, 늘 새로운 시작뿐임을 깨닫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자비로운 아버지를 닮아가는 우리 ‘귀향의 여정’, ‘예닮의 여정’에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6,36).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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