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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노아 홍수의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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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02 조회수4,457 추천수1

[성경과 문화] 노아 홍수의 흔적을 찾아서

 

 

조지 스미스의 홍수 이야기

 

1872년 가을 어느 날, 30대 초반의 대영박물관 직원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박물관 수장고에 무더기로 쌓인 메소포타미아의 토판 문서들을 하나씩 들추어 내고 있었다. 그는 고대의 쐐기문자로 기록된 내용을 해독하여 종류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손바닥만한 토판 문서의 내용을 읽고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들은 세상에 홍수를 퍼붓기로 결정하였다. 

에아 신이 신들의 계획을 갈대 집에게 말했다.

집을 부수고 배를 만들어라! 

재산을 버리고 생명을 구하라!

모든 생물의 씨앗을 배에 실어라!”

 

그것은 바로 구약성경의 창세 6-9장에 등장하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의 첫 부분을 연상시키는 대목이었다. 신들이 홍수로 인간 세상을 멸하려고 계획을 꾸몄는데, 그들 중 에아 신이 몰래 성경의 노아로 여길 수 있는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에게 이 비밀을 알려 주었다. 그 노인은 명령대로 배를 만들었고 모든 동물과 식물뿐 아니라 솜씨 좋은 기술자들도 함께 태웠다. 이 방주야말로 지구상 어느 곳에 도착하더라도 새로운 인류 사회를 창출해 낼 수 있는 ‘문명의 요람’이었던 셈이다. 엿새 동안 장대비가 퍼부었고 일곱 째 되던 날에 비가 그쳤다. 니시르(Nisir) 산에 도착하자 우트나피쉬팀은 마른 땅을 찾기 위해 비둘기와 제비, 그리고 까마귀를 차례대로 날려 보냈다.

 

그런데 아쉽게도 흥미진진한 홍수 이야기는 토판이 원래 크기에서 절반 정도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그 결말을 알 수 없었다. 당시 함께 있었던 박물관의 동료들은 ‘조지 스미스’라 불리는 이 청년이 기쁨과 흥분에 사로잡혀 갑자기 책상 위로 올라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고 증언하였다. 내용을 충분히 연구하여 정리한 스미스는 그해 12월 3일, 런던에서 개최된 성서고고학 세미나에서 자신이 해독한 문서들을 토대로 <칼데아인들의 대홍수>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문제가 된 이른바 ‘홍수 토판 문서’는 1852년 고고학자 호르무즈 라쌈(Hormuz Rassam)이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니네베에 있는 아수르바니팔 임금의 도서관을 발굴해서 수집한 토판 2만 4천여 개 중 일부였다.

 

스미스는 홍수 이야기의 끝 부분에서 약 열일곱 줄이 누락되었음을 공표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전해 들은 당시 영국의 최대 일간지인 런던의 <데일리 텔레그라프>지는 나머지 부분을 찾는 데 포상금 1천 기니아를 내걸었다. 스미스는 당연히 이 모험을 자처하여 1873년 기나긴 여행 끝에 티그리스 강변의 모술에 도착했고, 고대의 니네베로 여겨지는 쿠윤직(Kuyunjik) 언덕을 발굴하기 시작하였다. 발굴한 지 닷새째 되던 날, 그는 온 영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대홍수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스미스는 즉시 발굴 후원자인 <데일리 텔레그라프> 신문사에 이 소식을 전보로 알렸고, 대홍수 이야기의 잃어버린 부분을 발견했다는 기적 같은 소식은 1873년 5월 21일자 신문의 1면을 장식하였다. 스미스는 한 달 동안 발굴한 결과, 모두 384개의 토판 문서를 수집하여 영광스런 귀국길에 올랐다. 비록 그는 1876년 두 번째 탐사 도중 열사병으로 쓰러져 이국 땅 시리아의 알레포에서 36년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지만, 항상 신화로만 여겼던 창세기의 대홍수를 현장의 기록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성서고고학 연구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영광을 누렸다.

 

 

수메르의 여러 도시에서 발견된 진흙 퇴적층과 대홍수

 

대홍수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는 수메르의 여러 도시에서 발견된 진흙층에서도 밝혀졌다. 영국의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Leonard Woolley)는 1922년부터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알려진 이라크 남부 지방의 칼데아 우르 지역을 발굴하여 땅 속 깊은 곳에 두꺼운 진흙층이 파묻혀 있음을 발견했다. 울리는 이 진흙층의 연대를 기원전 3천5백년경으로 추정했고, 수메르 신화와 창세기에 언급된 대홍수의 증거로 규정했다. 진흙층 아래에서 발견된 1미터 깊이의 주거지가 대홍수로 파괴됐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이 우르에서 집을 짓고 살고 있는데 대홍수가 밀려왔고, 그 결과 3.5미터 두께에 달하는 진흙이 쌓였다는 것이다. 과연 이 진흙층이 노아 홍수의 고고학적 증거가 될 수 있는가? 그런데 문제는 우르뿐 아니라 인근의 슈루팍, 키쉬, 라가쉬, 우룩 등지에서도 홍수로 인한 진흙층이 발견되었고 그 연대가 모두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터키 아라랏 산의 방주 이야기

 

한편 1900년대 이후 비행기와 비행선의 개발과 함께 터키 동부에 위치한 아라랏 산에서 배같이 생긴 물체를 봤다는 조종사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소련과 미국의 인공위성 사진에도 이 지역에서 배와 같이 생긴 타원형의 물체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일 년 내내 흰 눈으로 덮인 높은 산에서 어떻게 배가 발견될 수 있는가 의심하기도 했지만, 이런 소문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자 수많은 탐험가들이 아라랏 산 등정을 시도하였다. 1955년 프랑스의 탐험가 페르낭 나바라(Fernand Navarra)는 해발 5137미터의 아라랏 산에 올라가 해발 4천 미터 지점의 얼음 구덩이에서 검은 역청이 칠해진 1.5미터짜리 나무 조각을 가져왔다. 정확한 연대를 측정하기 위해 그것은 유럽과 미국의 여러 연구소로 보내졌고, 탄소 동위원소 측정 결과 모두 기원후 7-8세기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나바라는 1974년에 자신의 모험담을 《내가 손으로 만진 노아의 방주》라는 책으로 펴냈다.

 

* 김성 님은 협성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이자 같은 대학 성서고고학 박물관장으로, 성서고고학과 성서지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09년 1월호, 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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