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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여호수아와 스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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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02 조회수3,441 추천수1

[성경과 문화] 여호수아와 스켐

 

 

“그때에 여호수아는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위하여 에발 산에 제단을 쌓았다. 그것은 주님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명령한 대로, 곧 모세의 율법서에 쓰인 대로, 쇠 연장을 대어 다듬지 않은 돌들을 쌓아서 만든 제단이었다”(여호 8,30-31).

 

 

국제구약학회에서 있었던 논란

 

1986년 8월 예루살렘에 위치한 히브리 대학교의 한 강당에서 이스라엘 고고학자 아담 제르탈(Adam Zertal) 박사가 스켐의 에발 산 중턱에서 여호수아 시대의 제단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3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국제구약학회의 성서고고학 분과모임에서 제기된 이 폭탄 선언은 곧 치열한 논쟁으로 이어졌고, 유럽 학자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성서고고학계의 최근 경향은 여호수아 시대의 역사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보았고, 또 성경의 언급이 너무나 신앙 고백적이고 상징적이어서 현장에서 그대로 발견되는 유적이 거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다수 전문가들은 스켐의 에발 산에서 여호수아 시대의 유적이 발견되리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로마 대학의 알베르토 소진(Alberto Soggin) 교수는 강단으로 올라가 제르탈의 주장을 상식상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그리고 제르탈이 말하는 제단 유적은 근처 농부들이 만든 망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성서학자 소진 교수가 신경질을 내며 너무나 강하게 말했기에 한동안 강의실이 술렁거려 더는 순서를 진행할 수 없었다.

 

 

아담 제르탈의 여호수아 제단 발굴

 

제르탈은 1980년부터 스켐을 중심으로 므나쎄 지역에 대해 철저하게 고고학적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던 중 그는 에발 산(해발 940m) 중턱에 위치한 돌무더기 하나를 주시했다. 돌이 많은 산지에서 포도밭이나 올리브 밭을 가꾸기 위해 돌을 치워 모아 둔 돌무더기가 그리 이상할 것은 없지만, 유난히 에발 산의 돌무더기가 고고학자의 눈에 띈 건 바로 근처에 구약 시대의 토기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서고고학의 달력이라 일컫는 토기 조각들은 그 지역이 어느 시대에 번창했던 주거지였는지 시사해 주기 때문에, 주변과 구분되지 않는 흙 언덕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유적지 조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르탈은 1982년부터 2년간 에발 산을 발굴하면서 이 돌무더기 아래에서 철기 I시대(기원전 1200-1000년)에 건설된 제단 구조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변의 길이가 8-9m 정도인 직사각형 제단은 벽의 두께가 1.4m나 되는 매우 견고한 구조물이었다. 이 제단의 한가운데 바닥에는 여러 돌로 만들어진 원형 화로(지름 2m)가 놓여 있었다. 또 구약 시대의 다른 제단과 마찬가지로 동쪽에서 제단 위로 올라가는 경사로가 있었다. 제단 위에서 제물을 불에 사르기 위해 사제들이 올라가는 이 경사로는 길이 7m, 폭 1m 정도였다. 제단 주위에는 거룩한 장소임을 구분하는 돌로 쌓은 울타리가 있었고, 한쪽에는 출입구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원형 화로에 담긴 흙과 재 사이에서 여호수아 시대의 토기 조각과 동물 뼈가 많이 출토되었다. 짐승 뼈에 대한 분석 결과 짐승들은 섭씨 400-600도 정도의 불에서 태워졌고, 그것은 소, 양, 염소, 사슴 등으로 밝혀졌다. 그중 사슴을 제외하고는 모두 레위기에 등장하는 대표적 희생 제물이다. 원래 희생 제사는 가축의 도살권을 가진 사제가 특정한 장소에서 가축을 잡은 후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토막 내어 장작불에 굽는 행위인데, 이 과정에 어떠한 형태로든 제의 요소가 첨가됨으로써 고대 종교의 핵심 행사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제단이 여호수아 시대의 것이라는 증거는 발견된 토기류의 70%가 ‘목이음 항아리(Collar Rim Jar)’라는 점이다. 물이 부족한 산악 지대의 이스라엘 민족은 멀리 떨어진 샘에서 한꺼번에 많은 물을 긷기 위해 큰 항아리가 필요했는데, 항아리의 몸통과 아가리를 분리하여 만든 다음 목 부분을 이었다. 그래서 그것이 정착 시대(기원전 1200-1000년) 토기의 특징으로 분류된다. 이집트 라메세스 2-3세 시대(기원전 1279-1153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양식의 스캐럽 도장도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 구조물의 연대가 더욱 확실해졌다.

 

* 김성 님은 협성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이자 같은 대학 성서고고학 박물관장으로, 성서고고학과 성서지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09년 9월호, 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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