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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가르치셨던 카파르나움의 그 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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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02 조회수3,156 추천수1

[복음의 그때 그 자리] 가르치셨던 카파르나움의 그 집은?

 

 

“그분에게는 집이 없었습니다. … 집을 가진다는 것은 한 가족에게 있어서 사회적 안정과 어떤 힘의 소유를 뜻합니다. 왜냐하면 집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진정 그의 왕국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집이 없다는 것은 결코 주인이 될 수 없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무력한 위치에 놓이는 것입니다”(김수환,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113쪽).

 

폐허는 말이 없다. 누군가 손 내밀어 그를 흔들어 깨우고 그와 함께 머무르면 그는 옛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갈릴래아 호숫가 북단의 ‘텔 훔(Tell Hum)’이라는 언덕을 처음 발굴한(사실상 도굴) 이는 미국인 에드워드 로빈슨이었다(1838년). 1866년 영국인 찰스 윌슨이 그곳에서 회당 유적을 일부 발굴한 뒤 그곳을 카파르나움이라고 주장하였고, 프란치스코 회원들은 그 주장을 새겨 들었다. 프란치스코회는 성지에 대한 남다른 열망을 간직했던 사부 성 프란치스코를 본받아 성지에서 주님의 발자취를 찾고자 애썼다. 그들은 1894년에 현지의 베두인에게서 텔 훔 언덕 일대를 사들였다.

 

1920년대 진행된 발굴에서 오르페리 신부는 성 베드로의 집으로 추정되는 유적지를 발굴하였다. 1968년부터 1985년까지, 그중에서도 1978-1982년에 프란치스코회의 비르질리오 코르보 신부와 스타니슬라오 로프레타 신부가 본격적으로 발굴하였다. 그 지역에는 거주민이 없었기에 성지 발굴상 가장 철저하게 발굴한 본보기가 되었다. 지상에 드러난 카파르나움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0세기에 이르는 역사를 들려 주었다.

 

 

예수님께서는 왜 카파르나움으로 가셨을까?

 

신약성경에는 예루살렘이 가장 많이 등장하고, 카파르나움도 열여섯 번 나타난다. 신약성경은 두 곳을 모두 ‘폴리스(polis)’, 곧 도시(성읍)라 부른다(마태 9,1; 마르 1,33; 루카 4,31 참조). 일찍부터 성벽을 갖추었고 예수님 시대에 인구 2-3만 명을 웃돌았던 예루살렘이야 당연히 도시로 불릴 만하다. 하지만 인구 천에서 천오백 명 정도의 빈한한 어촌을 왜 도시라 불렀을까? 실제 규모는 다른 도시에 훨씬 못 미치지만 거기에 몸담았던 분, 그곳을 당신 ‘자신의 도시’(《성경》에서는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 마태 9,1)라 부르신 분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르코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로 돌아오셔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때 그분께서 활동 거점으로 삼으신 곳이 카파르나움이다. 많은 사람에게 더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려면 예루살렘이나 그것과 맞먹는 규모인 갈릴래아의 큰 도시(이를테면 ‘갈릴래아의 빛나는 장신구’라 불린 인구 삼만 명의 세포리스나 티베리아스)를 선택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분께서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래아, 그곳에서도 제일 북동쪽의 카파르나움을 택하셨다. 예루살렘 성전을 가장 거룩한 중심지로 보았던 당대 유다인들의 사고 체계에서 카파르나움은 가장 변두리이고 덜 거룩한 곳이며, 사방이 이방인 거주 지역으로 둘러싸인 국경 마을이다. 게다가 그곳 주민들은 복음을 듣고 숱한 기적을 체험했으면서도 말씀을 믿고 회개하지 않았다(마태 11,23-24; 루카 10,15 참조). 그분께서는 왜 그곳을 택하셨을까?

 

[성서와 함께, 2010년 4월호, 이용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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