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리]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곳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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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9-02 | 조회수3,267 | 추천수1 | |
[복음의 그때 그 자리]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곳은?
“이 바닥 판(모자이크)을 만든 보타의 아들 탄훔의 아들 요세와 그의 아들들을 기억하고 경의를 표하며, 그들 모두에게 복이 내리기를, 아멘.” (카프르 칸나에서 발굴된 비잔틴 시대 이전의 ‘아람어 명문’에서)
1997년 12월 29일 성지 프란치스코회 장상인 이냐시오 마치니 신부는 바티칸 방송을 통하여 카프르 칸나의 발굴지에서 돌로 된 물동이를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이 물동이는 성당 유적의 주랑 안뜰에서 발굴되었는데, 연대를 기원후 1세기까지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 물동이는 예수님께서 첫 표징을 행하셨던(요한 2,1-11 참조) 현장의 물독과 연관되었을까?
요한 복음서만 유일하게 전하는 카나 마을은 늘 ‘갈릴래아 카나’로 소개된다(요한 2,1.11; 4,46; 21,2 참조). 그것은 아마도 현재의 레바논 쪽에 있었던 아세르 지파의 카나(여호 19,28 참조)와 구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곳은 1998년에 레바논 관광청이 발표한 카나와 연관되는데, 나자렛에서 80km 넘게 떨어져 있어 복음의 현장에서 너무 멀다.
그런데 오늘날 갈릴래아 카나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곳은 두 군데다(나자렛 북쪽으로 1.5km 지점에 있는 ‘아인 카나’는 덜 유력하다). 하나는 나자렛 북동쪽으로 5km 지점에 있는 카프르 칸나(Kafr Kanna, Kefr Kenna)이고, 다른 하나는 나자렛 북쪽으로 14km 지점에 있는 키르벳 카나(Khirbet Qana, ‘키르벳’은 ‘폐허’라는 뜻의 아랍어)이다. 그 가운데 오늘날 순례자들이 찾는 곳은 카프르 칸나이다. 그곳에 그리스 정교회 성당과 가톨릭 성당(1881년 건립)이 나란히 있고, 성당 안에는 두세 동이들이 물독까지 있어 성경의 현장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순례자들은 그곳에서 혼인 잔치를 강복하고 기쁨을 더해 주신 주님을 기억하며 혼인 갱신식을 행한다. 매년 주님 공현 둘째 주일에는 주님의 첫 기적을 기념하는 축제가 거행된다. 그렇다면 그곳이 정말 요한이 말한 그 카나일까?
고고학은 말한다
히브리어로 ‘카나(qana)’는 ‘갈대’를 뜻한다. 갈대가 자라려면 습지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에는 비 올 때와 우기 직후에 넷토파 골짜기의 키르벳 카나에서 갈대를 볼 수 있다. ‘지붕의 마을’이란 뜻의 카프르 칸나에서는 갈대와 연관된 현상을 찾아볼 수 없다.
1965년에 키르벳 카나에서 발견된 한 동굴 안에는 십자군 시대(12-13세기) 순례자들이 남긴 낙서가 남아 있었다. 그곳을 성경의 카나로 여기고 찾아온 신자들이 흔적을 남긴 것이다. 1998년 여름 미국 고고학자인 D. 에드워드와 P. 리차드슨은 카나 산기슭의 100m 높이 언덕 키르벳 카나를 본격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했다. 이즈르엘 골짜기에 버금가는 비옥한 넷토파 골짜기에 위치한 그곳은 기원전 오천 년경부터 기원후 17세기까지 거주한 촌락이었다. 가장 번성한 시기는 로마 시대부터 비잔틴 시대였는데, 헬레니즘 시대에 마을 형태를 갖추었다. 특히 기원전 1세기, 하스모네아 왕조 후기부터 유다인 농촌 마을의 전형적 특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냈다. 그것은 돌무덤과 정결례를 행하는 욕조와 돌 항아리에서 잘 드러난다. 마을을 지나는 간선 도로도 없었고, 1차 유다 항쟁 때 로마군이 그곳을 그냥 통과한 것으로 보아 그다지 큰 마을이 아니었다. 큰 방(10×15m)과 여러 작은 방으로 이루어진 복합 건물은 최근에 2세기의 회당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비잔틴 시대의 성당 같은 특별한 종교 유적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프란치스코회에서도 1997년부터 카프르 칸나를 발굴하여 5-6세기의 비잔틴 성당을 발굴하였다. 바닥 모자이크는 3세기의 것으로 추정했지만, 로마 시대(기원전 63-기원후 300년)의 중요한 유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즉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 마을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이스라엘 문화재위원회에서 카프르 칸나에서 서쪽으로 600m쯤 떨어진 케렘 알 라스 일대를 발굴하였다. 그 결과 그곳이 예수님 시대에 제법 큰 유다인 마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돌로 된 커다란 물독의 파편도 발굴되었다.
[성서와 함께, 2010년 6월호, 이용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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