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마르코 복음서 다시 읽기6: 제자들의 정체성과 사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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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12-13 | 조회수3,816 | 추천수1 | |
[마르코 복음서 다시 읽기] (6) 제자들의 정체성과 사명
3,13-19 읽기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신 다음,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우리는 마르코 복음서의 등장인물 중에 제자들에 관해 살펴보고 있는데, 이번에 읽을 본문은 3,13-19이다. 이는 ‘예수님을 뒤따르기’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1,16-20과 2,14에 이어 세 번째 본문이다.
① 단락 나누기
3,13은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신 다음”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즉 새로운 공간적 배경으로 ‘산’이 언급된다. 바로 앞 단락인 3,7-12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일어난 일이다. 즉 7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로 시작한다. 한편 3,20에는 “예수님께서 집으로 가셨다”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호숫가(7절), 산(13절), 집(20절) 순으로 이동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3,13-19은 ‘산’이라는 하나의 공간적 배경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문학적 단일성을 가진다.
② 본문 자세히 읽기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는데 여기에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성경에서 산은 하늘의 하느님과 땅의 인간이 만나고 소통하는 장소이다.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소통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문의 산은 탈출 24,4의 산을 연상케 한다. 모세는 시나이 산에 하느님의 백성을 형성하기 위해 ‘열두’ 지파를 모았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열둘’을 세우신다.
예수님께서는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신다. 1,16.19과 2,14에서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에 먼저 ‘보셨던’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기 전에 ‘원하시는’ 이들을 당신께 나아오게 하신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동사의 시제가 미완료라는 점이다. 미완료는 과거 동작의 지속이나 반복을 표현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일정 기간 동안 계속 ‘원하고 계셨던’ 이들 중에서 ‘열둘’을 선택하신 것은 다분히 상징적이고 의도적이다. 이처럼 동사 - - -에서 열둘을 세우시는 예수님의 의지가 잘 드러난다. 즉 열두 지파로 옛 하느님의 백성이 이루어졌듯이, 이제 열둘을 세우시어 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을 모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신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열둘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기를 원하셨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사도는 본디 ‘파견된 이’를 의미하며, 나아가 ‘사명을 가지고 파견된 이’를 뜻한다. ‘열둘’의 사명은 14-15절에 명시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신 목적은 종속 접속사 - -가 두 번 이끄는 두 개의 목적절에서 잘 표현된다. 첫 번째 목적은 '- - - - - - ', 즉 ‘그들이 그분과 함께 있기 위하여’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음’이 열둘을 세우신 첫 번째 목적이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친교(communion)를 의미하고, 그분과 공동체(community)를 형성한다는 뜻이다.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난 제자들은 그분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친교로 그분을 알게 되고 그분에게서 배우게 된다. 예수님과 만난 제자들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고, 그들도 친교를 나눈다. 이렇듯 예수님과 제자들은 공동체를 이룬다. 따라서 ‘예수님과 함께 있음’은 제자 됨의 의미, 곧 제자들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신 두 번째 목적은 ‘그들을 파견하기 위해서’이다. 열둘은 먼저 그분과 함께 있기 위하여 세워졌다. 그런데 그것은 파견으로 연결된다. 파견은 열둘의 ‘사명’을 의미한다. 사명은 뒤이은 두 개의 부정사를 통해 표현되는데, 첫째는 ‘선포하기’이고 둘째는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기’이다. 이처럼 열둘은 선포하고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 파견되며, 그것이 제자들의 사명이다.
3,16-19은 열둘의 명단이다. 그 명단은 마태 10,2-4과 루카 6,14-16과 사도 1,13에도 나온다. 그 네 명단을 비교해 보면, 사도들의 이름과 순서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네 명단의 공통점은 시몬 베드로가 첫 사도라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이라고 소개된다.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사도는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야고보와 요한이다. 여기서 첫 세 사도는 본명과 함께 별명이 소개된다. 성경에서 이름이 바뀌는 것은 특별한 소명을 의미한다. 그리고 네 번째 사도는 안드레아이다. 여기서 열둘의 첫 네 사도는 1,16-20에서 처음 부르심을 받은 네 제자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 소명 사화에서 ‘예수님을 뒤따르기’의 탁월한 모범인 시몬, 야고보, 요한, 안드레아가 열둘 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성서와 함께, 2010년 12월호, 송창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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